아파시오나토, 열정적으로.
내가 던진 질문에 누군가를 울게 한 경험이 오랜만, 아니 어쩌면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울리고 싶어서 울렸던 것은 아니었다. 언론인으로서 처음 꿈을 꾸게 된 계기를 물어봤을 뿐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그 질문이 학생을 흔들었나 보다. 당황했을 학생을 위해 봄이라 그렇다고 했다. 그래, 봄이다. 미세먼지가 우리를 뿌옇게 뒤덮었지만, 봄은 왔다.
공기 탓에 밖에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다 보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시간들 덕분에 피아노 연습 시간이 확보되니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쓸데없는 검색을 하거나 공상을 하며 빈둥거리게 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따뜻한 봄 햇살 속으로 외로움이라는 먼지도 함께 날아들어오는 건지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 피아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악기지만, 혼자서 띵동 거리니 뭔가 쓸쓸하잖아.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때마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노 독주회를 가면 연주 시작 전에 무대에 홀로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질 때가 많은데, 여러 악기들과 단원들로 꽉 차 있는 무대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달까.
멘델스존의 그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번호 64. 1악장,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 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 여기서 '아파시오나토'라는 말은 열정적으로라는 의미인데,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매우라는 뜻의 '몰토'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열정적이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아파시오나토'라는 말을 알지 못한다 해도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저절로 깨닫게 된다. 지휘자가 손을 올리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할 틈이 없이 바로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뭐랄까, 당혹스럽다. 요즘 말로 '훅' 들어오는데, 그 '훅'에 '훅' 빠지는 내가 당황스럽다고나 할까. 뜨거운 열정으로 정신없이 몰아붙이다가 이내 잔잔해지며 우수에 찬 듯, 차가운 열정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이런 미치도록 열정적인 선율에 따라 허리까지 꺾어가며 현을 씹어댈 것처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의 모습에서 열정이라는 감정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안에도 이런 미친 열정의 감정이 있다면, 멘델스존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열정과 같은 온도일까.
문득 줄리어드에서 피아노 수업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1대 1 수업이 아닌 그룹 수업이었고, 보통 서너 명의 수강생들이 함께 했는데, 이런 식의 수업은 처음이었다. 전문 연주가가 아닌, 나처럼 피아노를 취미로 치는, 실력은 부족한 아마추어의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어떨까. 사실 그 당시 나의 테크닉은 좋은 편이어서 다른 수강생의 연주를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될수록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차렸다. 음악은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었다. 더듬더듬 속도는 느리지만, 자꾸만 듣고 싶은 연주가 있었고, 화려하게 연주를 끝냈지만 귀에 남지 않는 연주가 있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서툴고 버벅대도 내 감정을 온전히 쏟아부어 표현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마치 로봇처럼 한 글자처럼 틀리지 않는 사랑 고백보다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부끄러워하는 사랑 고백이 진정성 있게 보이는 것처럼.
불행하게도, 나만 모르고 있었지만, 나의 연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인색한, 굳이 말하자면, 로봇 쪽이었나 보다. 이 부분을 연주하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여기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은 어떤 걸까요.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아닌, 내게만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으니까. 그런 질문들이 지겨워지던 어느 순간, 내 연주에 어딘가 큰 구멍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 감정! 그게 비어 있었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나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가. 언뜻 보기에 나는 매우 안정되고 차분한 사람으로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친구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무척 예민하고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평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다. 다만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이 인색한 감정 표현이 사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했고, 답답한 마음은 그때그때 풀어야 됐었는데, 그러지 못한 무게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마음의 병이라고도 불리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나 말고도 주변에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황은 다 다르겠지만, 뭐가 됐든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평소에는 감정 표현에 능숙한가. 카톡을 주고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모티콘들에 어색한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해 보자. 별 뜻 없이 쓴 말에 마침표만 찍으면, 너무 건조하게 쓴 건 아닌가 싶어 느낌표로 바꾸고, 거기다 스마일 이모티콘도 덧붙인다. 좋아도 엄청 좋은 것처럼, 미안해도 엄청 미안한 것처럼 꾸민다. 너도 그리고 나도. 감정 과잉일 정도로 오히려 감정 표현에 풍부한 거 아닌가요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SNS가 아닌 실제로 마주한 상황이라면 어떨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대면해서는 하지 못하고, 눈이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만 그런 척하거나 아닌 척 해왔을지도. 실제로 나는 그랬다. 게다가 이 감정 표현의 문제가 마음의 위기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서도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불편한 상황과 대면할 일이 많이 줄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도 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다. 미세먼지로 며칠 은둔 생활했더니 잠잠했던 감정이 요동친다. 살짝 우울한 쪽이긴 하지만, 예전에 말 못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감정의 표현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다. 여전히 감정 표현이 부족하지만, 피아노 연주를 통해,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나는 솔직하게 나의 감정들을 분출하며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려 애쓴다. 표현하는 나, 표현하는 봄. 이번 봄은 뜨거웠으면 좋겠다. 봄을 타는 김에 확실히 타볼까.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열정이, 아파시오나토, 열정적으로 불타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