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인가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었다. 첫인상이 별로인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그 느낌 그대로였고,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던 사람과는 결국 친해졌다. 혈액형별 성격에 흥미를 느끼기도 해서 사람들이 무슨 혈액형인지 나름의 감으로 잘 맞혔다. 그래서 더 믿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마흔이 넘어서 알았다. 사람을 잘 보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믿을 뿐, 진짜 속내는 눈치채지 못했다. 뒷북일 때도 많았다. 남들도 이미 파악한 사실을 본인만 알고 있다고, 꽤 통찰력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던 건데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씁쓸했지만, 뭐 괜찮다. 없는 능력을 있다고 믿어왔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으니까. 아니, 지장이 없었다고 믿어야지.
믿음이 많은 나는 피아노에 대해서도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 대표로 콩쿠르에 나가게 되었다. 예선곡은 슈베르트 즉흥곡 op.90의 4번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연습하고 있는 2번과 자매 같은 곡이었네. 여하튼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자신감 하나는 충만했는데, 학원 선생님을 비롯해 주위의 은근한 기대도 한 몫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한 믿음에는 배신이 따른다. 콩쿠르를 앞둔 어느 날, 서울에 폭우가 내리면서 물난리가 났다. 우리 동네는 물에 잠겼고, 아파트 1층이었던 우리 집도 잠겼다. 물이 빠지고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도 그렇게 안녕이었다. 피아노 연습은커녕 피아노도 없이 콩쿠르에 나간 나는 당연히 예선에서 떨어졌다. 자세한 것은 너무 옛날 일이라 떠오르지 않지만, “됐어요.”라고 단호하게 외치는 심사위원의 목소리와 그래도 대회 나간다고 엄마가 사준 원피스를 입고 철없이 달음박질을 했던 경연장 근처 어느 어두운 뒷골목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아쉬운 콩쿠르의 기억을 붙잡고 싶은 걸까. 지금의 나는 슈베르트 즉흥곡 op.90과 마주하고 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그때 그 곡, 4번을 연습해야겠지만, 트라우마가 있는지 자신이 없어 4번 못지않게 아름다운 2번을 먼저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4번 근처에서 맴돌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도전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2번을 며칠 연습한 끝에 어느 정도 잘 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에 이어 이번 레슨 때도 선생님은 연주할 때 편한지 아닌지 자꾸 묻는다. 손목이나 손가락이 불편한 건지를 묻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가 편해 보이지 않는 걸까.
첫 번째 악상 이후 중간부인 ben marcato부분이 문제였다. 물 흐르듯 가볍게 움직이는 첫 번째 악상의 흐름을 이어받으려고 무리해서 속도를 높였고, 그 결과 악센트를 충분히 붙여 음 하나하나를 강조해서 연주할 여유가 없었다. 메인 선율의 흐름은 이미 사라지고 마음만 급해 손가락만 바삐 움직이니 선생님이 보기에, 아니, 듣기에 몹시 불편해 보였던 것이다. 결국 오른손과 왼손을 각각 따로 치게 되었다. 그것도 장식음들은 다 빼고 아주 기본 선율만. 진도가 웬만큼 나간 상황에서 이런 주문은 굴욕이지만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의 처방은 늘 정확했으니까 믿어야 한다.
오른손으로 천천히 기본 선율만 따라가 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선율이 나를 사로잡는다. 기본 선율, 그러니까 이곡의 뼈대에 해당하는 부분만 연주하는 데도 슈베르트의 곡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치 뼈대만으로 이루어져도 아름다운 파리의 에펠탑처럼. 그런데 나는 이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손가락 운동만 하고 있던 것이었나. 이 곡이 원래 이런 선율을 가지고 있었는지 처음 알았던 것처럼 새롭다. 선생님은 다시 원래 악보대로 다른 선율들까지 함께 넣어 연주하게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들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음들 사이에서 메인 선율은 또렷이 들렸다. 아니 기본 선율뿐 아니라, 다른 음들도 자신이 내야 할 몫의 소리를 냈다. 모든 음들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내가 작곡한 곡 같군.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슈베르트가 들었다면 이러려나.
피아노 연주도, 내가 쓰는 글도, 취미로 배우는 꽃도,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일들에서 기본이 탄탄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험한다. 며칠 전에 꽃꽂이 수업에서 안개꽃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수국이랑 안스리움으로 마무리하는 부케를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안개꽃을 꽂고 수국과 안스리움으로 넘어갔더니 뭔가 아쉬웠다. 수국과 안스리움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안개꽃. 아무래도 안개꽃이 문제였나 싶어 결국 다 걷어내고 안개꽃부터 차근차근 챙기면서 다시 꽂았다. 그랬더니 안개꽃만으로도 느낌이 충만했다. 수국과 안스리움은 그저 거들 뿐. 처음에 느꼈던 부족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름답기만 하다. 역시 기본부터 탄탄하게 챙겨야 했다.
기본이라 무시하고 마음이 급해서 넘어가지만, 결국 그 때문에 발목 잡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의 아찔함. 아니 나중에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느끼는 좌절은 늘 우리 곁을 위협한다. 사람 잘 보는 능력은 물 건너갔지만, 기본부터 챙기는 습관은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마흔넷.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기본을 갖추기에, 딱 좋은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