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돌아온 일상

by 박아나

두 주 동안 글 쓰기를 멈췄다. 작정하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계획했던 것처럼 중단한 이유를 뒤늦게 생각해 보았다. 일단 베트남 여행과 선생님의 독주회로 피아노 레슨이 없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피아노 레슨을 통해 얻는 것은 피아노를 배우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글쓰기의 영감도 거기서 나왔다. 물론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으면 글을 못쓰느냐고 묻는다면, 설마 그건 아니겠지.

르네 마그리트.jpg 르네 마그리트, 심금(la corde sensible). 당혹감 혹은 붕 뜬 마음. 사진:광주드림

거기다가 요즘 책 출간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뭐든지 첫 도전은 어렵다고 하는데,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어떤 도전보다 감을 잡지 못하겠다. 답답한 마음에 작가 선배님을 만나서, 그것도 무려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만나 조언을 청해 본다. 뭔가 비법을 기대했었는데, 매일 글을 쓰라는 주문을 하신다. 나의 얼굴에 약간의 실망을 감지한 선배님이 지름길은 없다고 강조하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아... 피아니스트가 매일같이 피아노 연습을 하듯이, 작가가 되고 싶으면 매일 글을 써야 되는 건 당연한 것일 텐데,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 매일 글을 쓰고 연습하는 게 비법이지, 다른 게 비법이겠나.

김민식.jpg 선배님의 새 책, 매일 쓰는 습관에서 만들어졌겠죠? 사진 : 위즈덤 하우스

선배님은 그날 몇 권의 책을 권해주셨는데, 그중에서 정상태 작가의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에 나온 폴 오스터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폴 오스터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왜 쓰는지는 잘 모른다며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덧붙여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고, 글 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다고 회의적으로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내 것, 내가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별 거 아닐지라도 쓰고 싶다. 아니 쓰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덤벼들었는데 요즘은 그 호기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연습을 거듭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곡을 만난 피아니스트의 답답함이 이랬을까. 쉽게 말하자면 물 없이 고구마 먹은 것처럼 꽉 막힌 기분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의식되서였을까, 다른 사람과의 비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날이 좋아서 그랬나. 무엇이 나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해야겠다. 답은 정해져 있다. 당분간은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그냥 쓰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출판사.jpg 선배님께서 권해준 책,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사진 : 채널예스

글쓰기를 잠시 내려놓은 사이, 피아노 연습은 그럭저럭 순항 중이다. 모차르트 소나타 12번도 잘 다듬고 있는 중이고, 모차르트 환상곡 3번도 시작했다. 줄리어드에서 배웠던 이미 친숙한 곡이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님이 뉴스에 출연해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다시 꺼내 보았다. 제목처럼 환상적인 느낌을 주려면 갈 길이 멀지만 여기 더 먼 곡이 있다. 문제의 도전곡, 쇼팽의 발라드 1번은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곡인 동시에 한숨이 꺼지게 나오는 어려운 곡이었다. 악보의 첫 장만 가까스로 괜찮고, 그 이후로는 혼란의 연속이다. 서둘지 말고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느긋하게 연습해야겠다 생각 중이다. 이와 함께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 2번도 막 시작했다. 이곡은 초등학교 때 연습했던 곡이라 누구처럼 나에게 충격적인 곡은 아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늘하늘 편안하게 들리도록 치는 게 포인트이자 어려운 점이지만.

임동혁.JPG 5월 7일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듀엣으로 연주했던 임동혁님. 그의 슈베르트 음반을 듣고 있답니다.

답답하게 막힌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일에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네. 피아노 연습은 나름 활기차게 진행 중이니까. 글을 쓰니 내 상황이 점검되어 좋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쇼팽의 발라드가 어려운 거는 당연한 거니, 조바심 내지 말고 느긋하게 피아노 연습을 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글쓰기에 대해서도 이런 유연한 태도를 가지면 어떨까. 마음이 앞서면 마음만 힘들어질 뿐이니 그러지 말자고. 서두르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피아노 연습하듯이 글을 연습하자.

피아노 무대.JPG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듯이, 작가도 마찬가지다.

글 때문에 꽉 막힌 마음도, 머리도, 결국 이렇게 글로 다독인다. 그렇다면, 어쩌면... 내가 글쓰기를 너무 멀게 느끼는 것과 달리, 글쓰기는 내게 가까운 일상이 되어 버렸을 지도. 지금 내 귓가에 들려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처럼 하늘하늘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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