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누구나 그렇다

by 박아나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은 것의 범위는 매우 다양한데,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미모일 수도 있고, 젊음일 수도 있고, 직업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두 다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여기 언급한 것 외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나에게 요즘 가장 동경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돈, 미모, 젊음, 직업 다 원하지만, 전문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나운서로 일했지만 방송에서 활약하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지만 피아노 전문가는 아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나를 찾는 대학이 많은 것도 아니고,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책을 내지 못한 작가 지망생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여기까지인 이유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여러 분야에 대해 광범위하게 관심을 갖고 두루 잘하는 게 미덕이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넓고 얕은 것보다는 좁고 깊은 것이 환영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늦게 피아노도 연습하고, 글도 쓰면서 나의 관심사를 좁혀가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인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 예술과 가까워지는 것은 열정만으로 되기에는 능력 밖의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태어나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꿈꾸지는 못하지만, 지금보다 피아노를 좀 더 잘 칠 수는 없을까요... 사진 :연합뉴스

뉴욕에서 나를 가르쳤던 줄리어드 선생님이 마침 한국에 들어오셔서 지금 나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 -두 선생님은 줄리어드 스쿨 동기고 뉴욕 선생님이 지금의 선생님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과 함께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두 선생님은 대학 시절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도 마치 그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사람처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한 교수님이 “앞으로 10년 뒤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남아 있을 사람, 너희들 중에 한 명 정도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해 학생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는 이야기, 자기만의 개성으로 빛나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뭐가 부족해서 저러지 못할까 고민하며 흔들렸던 자신감, 오디션 준비할 때마다 피를 말리게 힘들었던 기억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말 못 했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columbia 대학, Teachers College에서 연주하는 지혜 홍박 선생님.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Teachers College 제공)

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나운서 생활을 했을 때 느꼈던 고뇌와 많이 닮아있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언젠가 할 수나 있을까, 저 사람에게는 뭐가 있길래 뭘 해도 호감일까. 나와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나를 좋아해 주는 시청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괴로웠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동경하는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아나운서가 되고도 나의 동경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나운서 생활 2년 차즘에는 다른 길을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 채 포기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싫어서 버텼고, 그렇게 또 시간은 지나, 나는 지금 이렇게 피아노 스승님들의 줄리어드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만약 그때 내가 갖고 있는 장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면,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할 시간에 내 장점을 더 발전시키고 부각하는 데 집중했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내 연주가, 나라는 사람이 더 매력적일 수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흔들렸다니까요.” “내가 뭘 갖고 있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어서 더 혼란스러웠을 거야. 나도 그랬어. 그래도 결국은 다들 자기의 길을 잘 걷고 있잖아.”

5월 예술의 전당 독주회 후 관객들과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 빵집 음악회에 참여한 김세희 선생님.

내가 갖고 있는 것. 그래, 우린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나보다는 남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지. 아나운서 시절에도 나는 계속 흔들리기만 했다. 나에게 부족한 예능감을 부러워하며, 어떤 순간에도 절대 긴장하지 않는 담대함을 극도로 원하며, 카메라발이 잘 받는 작고 뾰족한 얼굴이 아니라서 안 되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남이 가진 것을 동경했다. 내가 잘하는 것인 뭔지,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이나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탐구하지도 않았다.

카메라 잘 받는 작고 예쁜? 얼굴에 방송도 빵빵 터지게 잘 하길 바랬던 걸까요. 사진 :뉴스엔

그때 그 시절을 그렇게 흘려보냈기 때문일까. 내가 갖고 있는 것,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다. 그나마 많이 발전했지. 남이 갖고 있는 것에 여전히 관심이 많지만, 나의 것을 찾는 데 애는 쓰고 있으니까.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인 피아노 연주회와 유튜브 채널 만들기는 아마 그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여정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도전!"하고 외쳤으니 가보는 데까지는 가봐야겠지.


그러고 보니 나에게 나름 전문가다운 면모가 있긴 하네. 도전이 전문인가. 나는 겁 없이 퇴사를 하고, 팟캐스트에, 피아노에, 글쓰기에, 유튜브에 도전했고, 도전하고, 도전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도전 전문가가 되었다. 이제는 그 도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잘 채워나갈 수 있는 과정 전문가가 되길 어느새 바라본다.

무한도전의 정신으로... 나중에는 문득 그리워질테니 무한도전하자. 사진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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