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오늘은 딴 이야기

by 박아나

몇 년 전에 눈이 갑자기 안 보이면서 쓰러졌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뿐이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던 그 공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오싹함이 되살아나는 기분. 어느 날 명확한 이유도 없이 전염병처럼 눈이 멀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꽤 불안하게 만들었다. 수용소 안에 갇힌 눈먼 사람들의 절규도 힘들었지만, 이 책을 읽는 한동안은 다음날 내가 눈을 뜨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었다.

눈먼자들의 도시.jpg 영화는 못 봤어요. 소설만큼 괜찮나요? 사진:cj엔터테인머트

내 몸의 어디 한 군데 중요하지 않은 데가 없겠지만, 눈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중요한지 잘 알면서 눈을 막 쓰고 있는 내가 내게 미안하다. 예전에는 공부 좀 한답시고 책을 읽으면서 눈을 혹사시켰는데, 이제는 뭘 그렇게 찾아봐야 될 것들이 많은지 스마트폰 작은 화면을 붙잡고 매일 씨름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을 남도 보게 해야 하고, 남이 보는 것을 나도 봐야 되는 세상. 보지 않으면 ‘아싸’가 되고, 보면 ‘인싸’가 되는 세상. 꾸미든, 안 꾸미든 보이는 대로 믿게 되는 세상. 그야말로 우리는 보기 위해 존재한다.

인스타에, 페이스북에, 유튜브에... 볼 게 너무 많죠. 사진 : 캠퍼스 잡 앤 조이

이렇게 본다는 것은,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감사하게도 눈만 뜨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의, 혹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는 말이다.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천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처럼 우리의 시선은 굉장히 다양하다. 말 그대로 보이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때론 그 이상의 것을 보기도 한다. 그것뿐인가.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나는 요즘 사람들의 손가락에 시선이 많이 머문다. 피아노를 친다면 저 손가락으로는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피아노가 아니라면 어떤 손재주가 있을까 상상해 본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영화를 볼 때도 많지만, 가끔은 영화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의미를 찾아 헤맨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삶을 그린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봤다. 1951년에 출간된 이 책은 등장과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읽히지만, 저자인 샐린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그 이유는 샐린저가 은둔 생활을 하며 더 이상의 출판도 거부했기 때문인데, 영화를 통해 그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보기를 기대했던 것은 책을 쓰는 작가의 소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지였다. 요즘 글 쓰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어 뭔가 나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호밀밭.png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에서 샐린저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 사진 :디씨드 제공

나는 그래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수많은 거절을 보았다. 영화에서 샐리저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정말 수없이 거절당한다. 뉴요커지에, 스토리지에 보내는 원고마다 거절이다. 저렇게 보내는 족족 거절을 당하면 다시 글을 쓸 자신이 생기지 않을 텐데, 그에게는 숨길수 없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순간순간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재료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했고, 또 집요했다. 그렇게 세상과 맞서가며 힘들게 만들어낸, 결국 그 자신이었던, 홀든 콜필드는 세상을 매료시켰지만, 소설에서처럼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그에게서 보았던 것은 몇 차례의 퇴학들과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았던 아버지, 계속되는 원고 퇴짜, 그를 떠났던 연인까지, 수많은 거절의 트라우마였다. 그래, 이제 더 이상 거절당하지 않는다. 거절은 내가 한다. 그렇게 세상을 스스로 거절했다.

호밀밭2.png 영화 속에서 책으로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 : 디씨드 제공

나는 거절의 경험이 많지 않았다. 있다 해도 그렇게 치명적일 정도로 나를 괴롭히는 거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제는 거절이 좀 쓰리게 느껴진다. 아프다. 점점 아프다. 그래, 그 어떤 것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샐린저도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수차례 거절당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전에 팔린 그림이 단 한 점뿐이었다. 잠시나마 이런 대단한 분들과 위로를 나누니 행복하네.

반고흐.jpg 오르셰 미술관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사진 : 의협신문

생각하는 게 보인다고 샐린저의 영화에서 나는 거절을 봤고, 솔직히 거절당하는 게 두렵다. 아무리 친절하게 돌려 말해도 거절은 거절이고, 특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거절이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누구도 자신의 내일을 볼 수는 없을 테지만, 나는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글이 샐린저처럼 출판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곧 답이 돌아온다. 이번 거절은 좀 아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프기 싫구나.

매거진의 이전글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