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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Mar 28. 2017

걸인

매일 같이 사람들이 오가는 마을의 다리 위에서 동냥을 하는 사내가 있었다. 민머리에 커다란 화상 자국이 있는 사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고, 코가 문드러졌으며 입술은 크게 뒤틀어진 언청이였다. 귀는 녹아내린 듯 뭉개져 있으나 듣는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또한 사내는 팔이 있으되 손이 없었고,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녹이 슨 갈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갈고리에는 또 작은 깡통이 끼워져 있어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주곤 했다. 거기다 두 다리는 잘려나가고 없는지라 저녁이면 사내가 두 팔로 몸을 지탱해 힘겹게 기어서 다리 밑으로 내려가, 그곳에 지어진 조그만 움막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사내가 그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는지, 다리 위에서 동냥을 시작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고, 사람들은 곧 그가 있는 다리의 풍경에 익숙해졌다.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지주이자 존경받는 학자인 S는 어느 날 우연히 동냥을 하는 사내를 보게 되었다. S는 그날 종일 사내의 모습이 떠올라 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측은지심이 들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끔찍한 장애를 안게 된 것일까? 진정 신이 존재한다면 한 인간에게 저토록 많은 불행을 한꺼번에 안겨줄 수 있는가? 생전의 불행을 사후에 충분히 보상받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S는 노심초사하다가 마침내 결심했다. 자신이 그 사내를 거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 스스로 충분히 거동하고 생활도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저 밥만 먹이는 것이라면 충분히 사내 하나 정도 거두는 것은 S의 재력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을 터였다.     


다음날, S는 하인들을 이끌고 부랴부랴 다리를 향해 갔다. 어김없이 동냥을 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S는 밝은 표정으로 사내에게 갔다. 사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인지 대략 소개를 했다. 사내는 연신 굽실거리며 수줍은 듯 몸을 움츠렸다.     


S는 사내의 어깨를 다독이며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곧 추운 계절이 올 터이니 따뜻한 방을 내주겠다. 삼시세끼 밥은 걱정 없이 먹게 해주겠다.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다. 그저 순수하게 돕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S는 사내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에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아마 이런 호의를 받아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말을 마친 S는 사내에게 당장 제 집으로 가자며 하인에게 어서 이 사내를 업어주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내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어눌한 남자의 말에 S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요?”

“그냥 저...는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가 좋다니? 차가운 바닥에 배를 깔고 자빠져 구걸을 하는 게 좋다는 말이오?”

“좋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싫지도 않습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나리 댁에 가면 다른 욕심이 생길까 무섭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리님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동냥질일지언정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고, 이걸로 충분히 죽지 않을 정도로 먹고는 삽니다.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움막도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에 오면 고깃국도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온돌방도 있소.”

“네네. 압니다. 하지만 저는 말은 할 수 있으나 혀에 지독한 세균이 감염되었다 나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각이 없습니다. 고깃국이나 맹물이나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그냥 매한가지입니다. 그리고 크게 화상을 입은 적이 있는 바람에 온몸의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굳고 말라서 촉각이 둔합니다. 덕분에 추위를 잘 느끼지 못하고 감각도 무뎌서 온돌방이나 더러운 오물 구덩이 속이나 저한텐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이 훨씬 안전합니다. 밤엔 들짐승도 나오고, 감각이 무디다면 얼어 죽을 수도 있지 않소?”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전 꽤 나이가 많습니다. 이제 죽어도 딱히 여한은 없습니다.”

“그럼 아까 그 말은 뭐요? 뭐가 두렵다는 거요? 무슨 욕심이 생긴다는 거요?”

“지금은 하루가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리저리 깡통을 내미는데, 그것이 제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고 온 집중을 다해야 하는지라 그렇습니다. 구걸한 돈으로 먹을거릴 좀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제겐 큰일입니다. 하루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오늘의 목숨에 간신히 풀칠을 해 괴로운 생존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한데 편안하게 나리께서 주는 밥만 먹으며 따뜻한 방에만 있으면 처음에야 좋겠지만 곧 지루해질 겁니다. 시간이 더디게 갈 것입니다. 그럼 그땐 뭘 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느 곳 하나 멀쩡한 곳 없는 제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더딘 하루에 뭘 할지 몰라 질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질식이 분명 허튼 생각을 하게 할 겁니다. 더 큰 욕심을 부리게 할 겁니다. 엉망인 제 몸이 그 증거입니다.”


S는 물끄러미 사내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살아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별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냥 다 똑같이 겪는 인생이었습니다. 나름 큰돈도 만져봤고, 아름다운 여자와 밤도 보내봤습니다. 예상하시는 숱한 불행 또한 겪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고 동냥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지 멀쩡 할 때와 지금의 행복과 고뇌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치열한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니 왜 그렇게 부질없는 것들에 욕심을 부리고 전전긍긍했는지 지금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종일 동냥을 하니 생각할 시간은 많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말씀드린 겁니다. 나태입니다. 지루함입니다. 그것이 욕심을 낳습니다. 갖고 싶은 것 가지고, 벌고 싶은 만큼의 돈을 벌면 기쁨과 행복은 잠시 곧 질려버립니다. 금세 또 할 일이 없어 나태해집니다. 뭔가 또 다른 일을 하고,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그게 곧 욕심입니다. 끝없이 반복될 뿐입니다. 이 지경이 되기 전에 깨달을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지경이 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S는 잠시 그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내 사내를 설득하길 단념했다. 하인들을 이끌고 떠나버렸다. 사내는 여느 때처럼 해질 무렵까지 동냥을 하고, 식료품을 사서 밤이 깊어서야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갔다.     


S는 얼마 뒤, 사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식료품을 사러 가는 길에 마차에 깔려 죽었다는 것이다. 늘상 바닥을 기어 다니니 그런 위험도 피할 수 없었을 터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S는 하인들에게 명령해 사내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주도록 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품은 집으로 가져오도록 했다.     


하인들이 말하길 움막 안은 텅 비어있었고, 먹다 남은 약간의 음식과 물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사내가 남긴 유품은 사내의 손에 끼워져 있던 갈고리, 그 갈고리에 쥐어져 있던 깡통뿐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한 장의 메모를 남겼는데 입술에 볼펜을 물고 썼는지 삐뚤빼뚤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이렇게 딱 한 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마침내 진리를 발견했다.


S는 그가 발견한 진리가 그와 나눈 대화 속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생겼으나 당최 알 방법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야심한 새벽, S는 조용히 집을 떠났다. 막대한 재산과 가족마저 뒤로 한 채, 언제 돌아올 것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렇게 홀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혈혈단신 옷 한 벌만 걸치고 길을 떠나는 S의 주머니 속엔 걸인이 남긴 메모 한 장만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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