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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May 07. 2017

Z

김은 그야말로 철저한 법치주의자다. 김은 정의란 곧 법을 의미하며, 정의로운 판단과 정의로운 심판 또한 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는 애초에 너무도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정의로운 판단을 위한 기준은 존재해야 한다. 법은 아주 쉽고도 명백한 하나의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 법이란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을 위한 하나의 합의이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조직과 국가를 운영하고 지탱하는데 역할을 해온 것이 분명한 만큼 그 어떤 명문규정보다 정의로서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확고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가치관, 이성적 확신은 실제적 행동으로도 뚜렷이 나타나 평소 그의 준법 행동은 타의 귀감이 될 만했는데 특히 철저한 교통법규의 준수에서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김은 운전자가 교통질서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준법의 기초라고 설파하곤 했는데, 자동차를 운전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목적지에 좀 더 편하게, 빨리 가기 위한 어찌 보면 충분히 양해가 가능한 편의를 위해 심한 경우 인간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으로서 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은 시내에서는 절대 시속 60킬로미터 이상으로 주행하지 않았고, 고속도로에서도 규정 속도를 철저하게 준수하곤 했다. 더하여 신호위반이나 음주운전 따위는 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뒤에서 경적을 울리건, 욕을 먹건 간에 김은 개의치 않았다. 확고한 신념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시련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한 결과 김은 10년 간, 무사고라는 영예를 획득했으며 스스로도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10년 무사고가 꼭 호재라 볼 수는 없는 것이 5년 전 김이 임신한 아내를 태우고, 병원에 가는 동안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바람에 아내가 도로 한복판에서 출산을 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운 좋게도 어디선가 의사가 나타나 도움을 주었고, 구급차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해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했으나 이일로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김의 아내는 평소 김의 준법정신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었으나, 이일을 통해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고함에 질려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고 제 사고방식을 바꿀 의향도 없었다. 


자신은 옳은 행동을 했고, 아내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그런 결정을 내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게 전부다. 김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둘은 그렇게 이혼했고 아이는 김이 홀로 맡아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막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야말로 인류적 재앙이라 일컬을 만한 일이 발생했다. 판데믹, 전 인류적 전염병이 창궐했다. 


병명은 알파벳 Z로 명명됐는데, 공기가 아닌 타액으로 감염되는 질병이나 그 감염속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유는 감염된 자들이 이성을 잃고 발광하여, 마치 영화 속 좀비처럼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쥐어뜯고, 물어뜯기며 감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단 접촉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거기다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발광한 자들의 집단폭력에 희생되는 자들도 생겨났다. 기하급수적으로 퍼진 질병은 도시, 나아가 국가를 좀먹고 파괴했다. 인류는 그렇게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됐다.


김 또한 상황은 다를 것이 없었다. 김이 사는 곳에도 Z가 창궐했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난장판이 됐다. 감염된 자들, 그렇지 않은 자들이 뒤엉켜 서로를 물고, 할퀴었으며 죽이고 죽어갔다. 


김은 남쪽에 군대가 마련한 대피소가 있다는 말에 야음을 틈타 딸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발광한 감염자들을 맞닥뜨렸고, 그들의 추적을 받게 됐다. 발광한 감염자들이 끔찍한 괴성을 질러댔고, 그 소리에 다른 감염자들까지 합세했다. 금세 수십 명이 수백 명이 되었다. 김의 딸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좀 더 빨리!”

“으응.”


하지만 속도계는 여전히 시속 60킬로미터를 넘지 않고 있었고, 감염자들은 놀랍게도 자동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추격을 해왔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아빠! 더!”

“응 조금만 기다려, 곧 시내를 벗어날 거야.”


그렇다. 김의 자동차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김이 자신의 신념, 준법, 시내에서의 제한속도 60킬로미터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감염자들은 점점 더 속도를 올려 차와의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빠!!!!!!!!!!!!!!!!”


딸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이 갑자기 차를 세웠던 것이다. 차는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정확하게 정지해 있었고, 전방의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 김은 긴박한 와중에도 신호를 위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숭고하고 헌신적인 준법정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호가 너무 길었다. 


어느새 뒤따라온 감염자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감염자들은 연신 차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창문을 두드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김의 딸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고 다리사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김은 안절부절못하고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식은땀만 줄줄 흘려댔다.


감염자 하나가 장도리 같은 것을 들고 오더니 뒷좌석의 창문을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졌다. 파편이 뒷좌석에 앉아있던 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딸은 더욱 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감염자 하나가 깨진 창문 사이로 팔을 뻗어 딸의 머리채를 잡았다. 김이 화들짝 놀라 뒷좌석 쪽으로 가려고 몸을 홱 돌리는데, 안전벨트에 덜컥 몸이 걸려버렸다. 김이 부랴부랴 안전벨트를 푸는 사이 감염자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 김의 딸을 창밖으로 끌어내버렸다.


다음 순간, 너무도 끔찍한 광경이 김의 눈앞에 펼쳐졌다. 김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력적 행위에 의해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과정을 목도했다. 김은 아버지로서의 분노보다는 시각과 청각에 작용하는 너무도 강렬한 엽기적 자극에 압도당했다. 경악한 김은 패닉에 빠져 부들부들 경련했다. 김의 두뇌 속 생리작용을 관장하는 부위 또한 그러한 충격 속에 순간적으로 기능을 잃어버렸다. 김은 배설을 했다. 차 안에 앉은 채로 오줌을 싸고, 똥을 누었다. 지독한 냄새가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밖에서 난리를 치며 뒷좌석의 깨진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려던 감염자 하나가 미친 듯이 다시 몸을 뺐다. 그러더니 바닥에 쓰러지더니 한참 동안이나 구역질을 하며 뒹굴었다. 막 몸을 집어넣으려던 감염자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몇 번을 그런 일이 반복되더니 일순 감염자들이 발광을 멈추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색한 동작이지만 감염자들은 모두 공통적인 행동을 하며 물러섰다. 하나같이 코를 틀어쥐고 있었다. 제 코를 후려치는 자들도 있었다.


김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김의 후각도 정상작동을 시작했다. 김 또한 얼굴이 노래지는가 싶더니 구역질을 시작했다. 김은 그렇게 구역질을 하면서도 안도했다. 어쨌거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은 천천히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고약한 악취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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