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서 비빔밥 푸드트럭을 운영하다.
내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는 주변의 모두가 취업준비에 한창이었다.
'우리 학번의 OO이 어느 회사에 합격했대!'라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SNS의 알고리즘도 여러 기업의 인턴모집 신입사원모집으로 가득했다. 취업스터디도 정말 많았고, 주변에는 자소서 100개 넣어서 어렵게 붙은 대기업으로 취업했는데 돈도 잘 벌고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선배 동기들의 취업후기들도 많았다. 아직 나에게 맞는 직무나 업계도 못 정했는데 무슨 취업 걱정이냐라고 생각하다가도, 다들 그렇게 운명적으로 점지받듯이 취업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사실 나는 한번 더 다른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지금까지의 나는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내왔지만,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은 매우 부족했다. 목적과 이유 없이 의욕으로만 채우며 보낸 시간들은 나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더 적나라하게는, 학생으로서의 신분이 끝나고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다.
당시에 드라마 '미생'을 굉장히 흥미롭게 봤는데, 이런 대사가 나온다.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빌딩 로비 하나 밟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는 줄 알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대사였다. 그렇게 드라마 속 가상의 인물에게 혼나면서, 나는 실제로 돈을 벌러 가서는 배우면서 시행착오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패기 있고도 쫄보 같기도 한 현실적인 취준생이었다.
어쨌든 나에게 필요한 건 '직업인'으로서의 경험이었다. 수많은 알바를 해오고 해외경험도 해봤지만 내가 본건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선 그저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꼬깔콘을 뒤집어쓰고 보는 세상이었을 뿐이다. 상품의 기획과 제작, 판매 및 마케팅 전략 수립, 현장에서의 고객응대와 관리 등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모두 겪어볼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가설을 세워보고 검증할 수 있으며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을 녹여낼 수 있는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결론은 '장사'였다.
구체적으로는 '낯선 곳에서 익숙한 아이템으로 하는 장사'. 그렇게 나는 '비빔밥유랑단'이라는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대학생팀으로 소속되어, 미국에서 한식 푸드트럭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LA로 출국하게 되었다. 같은 해외경험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미국에 가서 더 큰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각오는 네덜란드에 갔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저 뭐가되었든 '나'에게 좋은 경험을 하고 싶었던 과거와는 달리, '쓸모'가 있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목적이 확실했다.
미국에서의 하루하루는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절박하고 간절했다. 누가 비빔밥 팔러 미국까지 가서 맨날 잠도 못 자고 밤새냐고 하면... 그게 우리였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냥 팔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너무 무모한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 같다. (나는 경험 전엔 전자, 이후엔 후자다)
돈을 쓰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듯이, 판매의 모든 순간에도 이유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우리의 트럭을 보고 '오 신기한 메뉴네?'라고 접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호객, 메뉴, 상품구성, 응대, 장사 시간, 위치, 단골고객 확보, 인지도, 할인쿠폰 등등 우리가 결정하는 모든 것이 한 명 한 명의 지갑을 여는 (혹은 닫는) 이유가 된다. 음식이라는 것도 '문화'의 영역인지라, 문화 수준과 관심사에 따라 다른 이유와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고민하고 검증하기에 '미국'에서 하는 '한식', 게다가 움직이는 '푸드트럭'이라는 특수성은 굉장히 장사에 대한 경험을 쌓기에 적당했다.
인지도가 없는 한식 '비빔밥'이라는 메뉴를 길거리에서 홍보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임무였다. 단편적인 예로, 아시안 푸드에 관심이 있어 중국음식이라도 먹어본 사람에게 추천하는 메뉴와, 완전히 생소하지만 시도해 보려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메뉴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했다.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대에는 LA 최대 비즈니스 지역 실리콘비치에 가서 '건강한 음식'의 메뉴명을 붙여 장사를 하고, 대학생의 하교시간에는 UCLA, USC 등의 대학 근처에서 '든든한 음식'의 메뉴명을 붙여 장사했다.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상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는데, 특별히 '상인'이라는 가게를 지켜야 하는 고객특성에 맞춰 미국에서는 생소한 배달 서비스도 일부 시간에만 운영하고,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벤트도 진행했다. 사회적 가치실현이라는 작은 목표도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매출이 적정선에 도달하면 근처 빈민가에 100그릇을 1달러에 판매한다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판매뿐만 아니라 내부 인력의 구성도 매우 중요했다.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건 직접 비빔밥을 맛있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명의 인원이 영업응대를 하고 몇 명의 인원이 트럭내부에서 요리를 하고 몇 명의 인원이 재고 조사를 언제 해야 최대의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까지 고민하며 나름의 효율적인 SCM 구축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와중에 미국까지 와서 고생하는 이유가 돈이 아니라 성장의 경험임을 잊지 않기 위해, 안정성보다는 공격적인 마인드로 하루하루 다른 메뉴구성과 인력전략을 짜서 운영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 10그릇도 못 팔던 낯선 동양인들이 하는 푸드트럭에서, 일 매출 1000달러 (약 150만 원)까지 기록하는 인기푸드트럭으로 성장했다.
솔직히 이 모든 걸 혼자 하라고 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리 팀원은 총 5명이었다. 패기 넘치는 20대 5명이 미국에서 장사하려고 모이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각자의 전력을 매일 발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최대치가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서, 신규고객을 늘리기 위해서,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정말 많이 대화하고 회의했다. 그 과정에서의 우리의 협업방식은 어때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공동의 목표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되,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결정을 진행하기 위해 스케치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남겨가며 회의하는 방식은 우리만의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장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어떤 과정을 필요로 하는지, 효율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협업의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나의 논리와 생각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것들을 배웠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해답, 자신에 대한 확신,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24살,
나는 외식/식품 마케터라는 첫 번째 직업목표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