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목적없는 목표였던, 네덜란드 교환학생 이야기

by 윈디데이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약 8개월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갑자기 왜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느냐를 떠올리면, 사실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그 정도로 즉흥적인 다짐이자 목표이고 추진이었다. 아마 주변 선배들이 교환학생 경험을 추천을 해줬기도 하고, 학비를 한국에 내는데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하니 지원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는 목적 없는 목표가 생겼다. 어쩌면 이게 표류의 시작점이었다.




교환학생에 지원하려면 reading, writing, listening, speaking 네 분야 모두를 평가하는 토플이라는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소문을 듣자 하니 독학은 절대 불가능하고, 강남의 어느 유명 학원에서 몇 달 바짝 하면 된다길래 덜컥 휴학하고 토플학원에 등록했다. 아니 근데 세상에. 고시도 아니고 입시도 아니고 고작 영어 자격 증명 시험인데 이렇게 힘들다니. 대학 입학 후 고작 몇 년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고 그새 하루 온종일 앉아있는 게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면서도 휴학까지 했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점수를 못 내면 어쩌나 압박감도 심했다. 어쨌든 3개월 후, 최초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미국까지 갈 수 있는 점수는 못 땄지만 유럽 학교들에는 지원할 수 있는 점수를 취득했고, 교환학생에도 합격해서 네덜란드의 헤이그대학교라는 곳에서 반년정도를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실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사실 잘 몰랐고, 어디든 좋으니 '해외'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으니 목표는 이룬 샘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현지 음식, 그리고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네덜란드의 상징인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 도시를 누비며, 박물관과 미술관을 투어 하는 등의 일은 나에게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곳의 경치는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그 풍경 속에 잠깐 들어온 불청객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내 일상 속에 뜻하지 않게 들어온 불청객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의 일종으로 우유를 맞을 뻔하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장 보다가도 학교에 가다가도 시시때때로 캣콜링이 들려오기도 하는, 참 갑작스럽고 낯선 일상이었다. 하루는 트램(교통수단)에서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겨우 현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집에 도착했다. '다시 쓰러지면 어떡하지. 그러다 혹시라도 기숙사에 혼자 있는데 잘못되면 어떡하지. 병원은 없고 홈닥터를 불러야 한다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데.' 한참을 불행한 생각에 휩싸였으나, 아무 일이 없어도 매일 지구 반대편 딸내미만 걱정하시는 부모님께는 차마 전화도 못했고 친구들에게 약한 소리 하기도 싫어 그저 혼자 엉엉 울다 잠들기도 했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수업 중에 느끼는 언어 장벽, 현지 친구들과의 거리감, 그리고 나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혼란은 나를 괴롭혔다. 다채롭고 아름다운 경험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한국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은 나와는 달리 이 환경을 본인들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 삼아 활용하고 있으며,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게 보였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질문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나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었다. 사실 어쩌면 예상 가능한 방황이었다. 나에겐 교환학생이라는 목표 자체가 충분히 숙고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8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분명 나를 일깨워주고 성장시켜 준 건 맞지만, 그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동시에 다시 기존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 한국에서 취준생으로 돌아가서 남들처럼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면 정말 내가 원하는 내가 잘하는 나를 필요로 하는 목표와 직장과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가에게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고? 내 마음속의 불안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잔잔한 마음속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장이 생겼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파장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과, 더 큰 요동과 파도를 만들어 어딘가로 휩쓸려 가보는 방법.

나는 이때 후자를 택했고, 귀국 1달만에 미국행 티켓을 끊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