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직업을 정했다

브랜드 마케터가 되고싶다.

by 윈디데이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방황하는 취준생이었으나, 이전처럼 공고가 뜨는 대로 이력서부터 넣는 방향 없는 취준생은 아니었다. 짧게나마 쌓아온 20대 초반의 경험들을 녹여낼 수 있으며, 나의 성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다. 혼자보단 사람들과의 교류를 하는 일이었으면 좋겠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공대인간인지라, 그 과정은 수치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이고 분석적일수록 스스로의 몰입도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반복적이거나 지루해서는 안되고, 이왕이면 새로운 무언가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길 원했다. 그 가치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유형의 가치와 무형의 가치를 모두 포함해야했다.



그렇게 내가 찾은 직업목표는 '브랜드 마케터'였다.

브랜딩은 한마디로 힘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저 '도구'일뿐인 것들에 상징적인 정체성과 스토리, 시/청각을 포함한 오감의 경험을 통해 '그저 도구'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로 느껴지게 하는 일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브랜드에 매료된 사람들은 차별화된 이미지를 가진 특정 기업의 '충성고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약 10년 전 처음 애플 제품을 썼을 때 어디에서 간접적으로 느끼고 봐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세련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그런 내가 지금도 맥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며 아직까지 아이폰을 사용하는 애플의 충성고객인 것처럼, 브랜딩은 힘이 있다.



어쨌든 나에겐 첫 목표가 생겼다. 사실 주위에 마케터를 꿈꾸는 동기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의 연구직 혹은 연구나 실험을 대신 진행해 주는 업체 등으로 지원을 하는 분위기였다.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는데 막연하게 그런 목표를 가진다는 게 사실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기회가 행운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 이런 류의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분명 '행운 같아 보이지만, 결국 필연적인 노력의 산실이다'라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내 커리어의 전환점들을 잘 들여다보면 분명히 내 노력에 비해 과분한, 오히려 행운이라는 단어를 붙였을 때 마음이 편안한 순간들이 있다.



대학 선배 중 식품대기업에 연구직으로 취업한 선배가 동기에 소속된 외식마케팅팀에서 단기계약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단체채팅방에 공유했다. 당연히 다들 연구직을 준비하고 있으니 마케팅팀 공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정규직 채용도 아니고 1년 단위 계약직도 아닌 단기 계약직이니 사실상 사무보조 알바계약직 정도의 역할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행운같은 기회였다. 주위에서 브랜드 마케터를 본 적도 없는 경험 무지한 학생이자, 돈도 벌고 싶은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계약 형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경험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경험과 수단을 제공해 줄 만한 환경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원서를 제출했다. 몇 장에 걸쳐 늘어놓은 자기소개서의 요지는 이렇다.

'식품공학과 출신이라 업계 지식이 빠싹하구요, 그렇다고 꽉 막힌 공대생 아니에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 왔구요, 학생회며 대외활동이며 사람들과 잘 어울려요. 외식업계에서 알바도 엄청 많이 해봤구요, 푸드트럭을 직접 운영해 본 경험도 있어서 외식업계의 현장의 고민도 고객들의 마음도 잘 알아요. 하지만 쪼끔 안다고 우쭐대지 않을게요. 잡일 마다 않고 잘하는 그런 신입이 될게요!'



면접을 거쳐 감사하게도 식품대기업의 외식마케팅팀에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구구절절 풀어놓았던 나의 셀프브랜딩 요소 중에 가장 그들에게 구미가 당겼던 것은 아마 이거였을 것이다.

'쪼끔 안다고 우쭐대지 않을게요. 잡일 마다 않고 열심히 잘하는 그런 신입이 될게요!'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내가 겪었던 잡일들과 사건들을 들어보면 누구나 이게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직업을 갖추기 위한, 첫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