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처음 알게 된 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각. 오늘만 이야기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에 이끌려 들어갔다. 글 제목과 무색하게 우리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연락을 이어갔다. 이렇게 몇날며칠을 야밤에 남자친구도 아닌 이성과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데 안 사귀어도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화를 자주했고, 심지어 내가 답장을 안 하면 카톡을 또 보냈다. 순서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공허해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남자는 그러면서도 나와 자기는 이성관계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 인간 대 인간 관계임을 은연 중에 상기시켰다.
남자는 내게 자기네 집 문서까지 찍어 보낼 기세였다. 자기가 먹는 것, 보고 있는 것, 그리고 특히 집 내부 사진을 자주 찍어 보냈다. 현관문 안쪽에 동물 일러스트 엽서를 나란히 붙여 놓은 사진, 냉장고 문짝에 마그넷을 붙여 놓은 사진들.
"저 귀엽고 아기자기한 거 엄청 좋아해요."
"여행가서 들른 소품샵에서 산 것들이에요."
귀했다. 내가 귀여워하는 종류의 것들을 똑같이 귀여워 하는 남자.
남자는 동탄 아파트에 혼자 살았다. 사택이냐고 물으니 약간 어이없어 했지만, 그래도 아니라고만 대답하고 다음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간에서 동탄 자가 보유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자기네 티비가 82인치라며 거실사진도, 탄산수를 항상 구비해둔다며 연예인 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깔끔히 정리된 냉장고 속도, 자기가 지지고 볶고 요리한 음식 사진도 찍어 보냈다.
우와. 부러워요. 우와. 잘해놓고 사네요. 우와우와. 하기 바빴다. 혼자 잘 해놓고 잘 해먹고 사는 그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그집에 들어가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순간 연락도 사진도 반갑지 않았다. 질투 같은 감정이 튀어 올라왔다. 나는 6평 오피스텔 단칸방. 조용한 밤에는 옆집 오줌누는 소리까지 들리는 닭장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내 인생이 별일없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동탄신도시. 방이 몇개씩 되는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때때로 친구들을 집에 불러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친구를 남는 방에 재우기도 하는 남자에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묵직한 열등감을 느꼈다.
남자는 내게 실없이 '방이 남으니깐 와서 게스트하우스처럼 자고 가도 된다.', '설거지는 하고 가야된다.' 라고 농을 던졌다. 솔직히 미친척 들이밀고 처들어가고 싶으면서도 설거지 시키는데 내가 왜가요. 라고 장난처럼 대충 둘러댔다. 괜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놀러 가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사고칠 것 같은 걱정보다도 집이 내 생각만큼 좋을까봐 걱정이었다. 거기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그려져서 싫었다.
질투라는 건 보통 동성에게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나보다 예쁘면서 돈 많이 버는 여자, 말랐는데 수상하리만큼 가슴이 큰 여자, 많이 먹어도 배가 납작한 여자. 항상 내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은 같은 여자였는데. 왜였을까. 나는 왜 그 남자에게 질투가 삐질삐질 식은땀처럼 흐르고 불편했을까.
좋아해서였다. 좋아하는데 난 그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심술이 났다. 내가 그라면 굳이 나같은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라서. 남자는 자긴 경제력 있는 사람 좋다고 한 적도, 은연 중에라도 날 무시한 적도 없었다. 날 단한번도 평가한단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게 고도의 무시로 느껴졌다. 그만큼 단한번도 나를 자기가 만날 여자로 고려한 적이 없다는 걸 안다.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이런 눈치까지 있었으면 더 싫었을 테지만 그는 자꾸 우리집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 역시 너를 친구로만 여기고 있으며, 상황 상 지금 당장만 6평 오피스텔 사는 여자인 것처럼 집 내부 사진을 몇개 보내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남자는 이게 진짜 궁금했던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몇시간 뒤에 '깔끔하게 잘꾸몄네요.'라고 답장 했다.
그렇게 의미없는 연락을 몇번 주고 받다가 연락을 안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시간이 더더 길어지자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 앞으로도 연락 할 일 없는 사이로 분류됐다. 카톡을 열면 항상 상단에 자리잡고 있던 남자와의 대화방이 이제 이런 저런 카톡방에 밀려 한참을 떠내려갔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대화방이라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건데 뭐가 거슬렸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화방나가기를 눌렀다.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내가 뭔짓을 해도 나를 좋아할 것 같지도 않은데 이따금씩 불편한 감정만 안겨주는 남자가 일상에서 사라져서 시원하다. 내가 살고 싶은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남자가 없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