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밝았지만 분명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낮부터 만난 친구 두 명과 술을 마셨다.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트랜디한 메뉴가 있는 술집에서 봉골레술찜에 와인을 몇잔 걸치고 술찜에 파스타 면까지 추가해서 배부르게 먹고 나와 "안녕.", "잘가.", "또봐." 하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걸었다. 5호선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시청역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라선 어느 사람은 격양된 목소리로 "왜 우리한테 뭐라고 하느냐.", "우리는 법을 모두 지켜가며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귀가 떨어지도록 소리쳤다. 취기가 올랐다. 한명 한명 얼굴을 눈에 담진 않았지만 나를 지나치고 내가 지나치는 주변 사람들이 온전히 느껴졌다. 쓸쓸했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부러 슬픈 생각을 했다. 슬픔을 극한으로 몰아 넣어서 가능한 깊게 슬퍼지고 싶었다. 성공적이게도 눈물이 울컥 밀고 올라왔다. 일단 참았다. 눈물이 나오려 한다고 바로 울어버리는 건 왠지 속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몇번은 참고 어쩔 수 없이 우는 상황에 처하고 싶었다. 눈물 한번 흘리는 데도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와 명분이 필요하다니. 몇번이고 울컥하는 녀석을 흘려내지 않으려고 참아내니 목구멍이 아팠다. 그냥 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뺨 위로 흘러 내리기가 무섭게 손으로 훔쳤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우는 얼굴을 보지 못했으면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길 바랐다. 얼굴이 벌개져서 혼자 걸으며 우는 저 여자에겐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하길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