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 때문에

by 소이

"전화가 오는 걸 어떡해."


너는 장난 반, 곤란함 반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책임이 심한 말이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 연인과 분명 연락하지 않기로 했고, 차단하라고 하니까 알겠다고 해놓고 또. 부러 심각한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아 날씨얘기 하듯 말한 게 잘못이었나. 항상 그런식이었다. 믿고 싶은 사람 마음 이용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너와 헤어지고 내가 전여친이 되어보니 전여친이 왜그렇게 너한테 전화를 걸어댔나 단번에 깨쳤다. 너는 전여친의 연락을 필요 이상으로 잘 받아주는 남자였다.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잘했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박대 당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은 금새 '다행이다.' 라는 감정으로 바뀌었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전여친에게도 이랬겠구나 싶어서.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묻자, 조금 연락하는 사람은 있다고 해다. 자세히 물으니 얼마전에 소개팅을 했고 벌써 네 번을 만난 사이란다. 네 번이나 만났는데 그게 조금 연락하는 사람일 리 없다. 분명 나 이전에 만났던 사람에게도 내 존재를 임의대로 축소해서 말했을 게 분명하다.

네 번이나 만났는데 왜 안사귀냐, 소개팅으로 만난거면 세 번째 만남 때 사귀는 게 국룰 아니냐고 하자, 편하지가 않다고 했다. "너만큼 안 편해."라고 말한 건 아닌데, 나는 그렇게 또 받아들였다.


미련 뚝뚝 흘리며 오밤중에 전남친에게 전화해서, 소개팅한 여자랑 왜 안사귀냐고, 나한테 희망 되는 말이 한 음절이라도 나올까 싶어 통화음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날 잊지 못해서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왜 이 지랄일까. 왜이렇게 널 놓지 못할까.


나는 너가 인기 많은 남자라는 걸 증명하는 여러 여자, 여러 전여친 중 한명. One of them. '여자들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너의 주장을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근거로는 죽어도 사용되고 싶지 않아 정말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소개팅녀 말고 나랑 다시 만나."라는 말을 뱉음과 동시에 대실패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네 음성을 가만히 듣는 내 얼굴은 어땠을까. 존나 슬픈 표정이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네가 만났던 여자들과 다르고 싶었지만 그저 똑같고 평범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잊는다. 평범하기 때문에. 예상 가능한 보통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염색을 하면 미용사가 의도한 대로 컬러가 잘 나오고, 감기약을 먹으면 약발을 잘 받아서 거짓말같이 감기가 똑 떨어진다. 얼마나 다행인가. 보통 사람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라는 말에 기가 막히게 적용 받는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한사람만 사랑하지 못하며,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그리워하는 것. 그런 거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런거는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다. 평범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종종 웃기도 하며, 주변에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시간이 다 해결해주더라고요.'라고 현자처럼 말한다. 평범한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잊는다. 나는 기필코 새로운 사랑을 또 찾을 거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나만 특별하게 널 못잊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또 널 잊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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