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마라탕도 예외일 수 없다.
처음 먹은 가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마라탕을 처음 먹으러 간 날,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걸까. 얼마나 담아야 하는지 무얼 담아야 하는지, 당면과 버섯 종류는 왜이렇게 많은 건지. 푸주는 뭘로 만든 건줄 알고 저렇게 거침없이 담는 걸까. 맵기단계는 어느정도가 본인한테 적당한지. 어떤사람은 3단계를 하고 어떤 사람은 0.5단계라고 하고. 언제 이렇게 또 나만 빼고 다들.
시간이 흘러 마라탕을 즐겨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가끔 마라탕을 처음 먹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들은 처음인 게 티가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재료 앞에 서서 보통 벙찐 표정으로 서있다. 취향대로 담으면 된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푸주, 목이버섯, 넙적당면... 이런 생소한 재료를 담는다고, 맵기만 정한다고 요리가 된다고? 마라탕집 주방에는 모두 연금술사가 한명씩은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 비기너들은 직원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데, 간혹 재료 담기를 포기하고 집에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휙- 나가버리면 난 또 마음이 안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영영 마라탕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으로 평생 살아가면 어쩌지.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서 마라맛도 모르고 산다고? 마라 보다 더 자극적인 이 세상에서! 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이더라도 직원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집게를 호기롭게 들고 재료를 쭉 스캔한다. 그치만 역시나 렉이 걸린 듯 주춤거린다. 무엇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전혀 감을 못잡는다. 감이 전혀 오지 않는 다는 감정에서 오는 막막함을 너무 잘 알기에 내가 옆에서 막 도와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마라탕 비기너가 큰 결심을 한 듯 플라스틱 보울에 재료를 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또다른 걱정이 자라난다. 너무 많이 담으면 어쩌지, 너무 맵게 먹으면 어쩌지. 처음에는 재료 취향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 이것저것 다 때려넣기 마련인데 생소한 식감과 다 먹지 못할 양에 속이 더부룩해져, 다시는 마라 안먹어! 하면 어쩌지. 그럼 안되는데. 두 번. 적어도 한번은 더 먹어봐야 하는데.
이쯤되면 내가 주문한 마라탕이 나온다. 대충 직원이 추천해준 맵기 단계를 선택하고 계산을 마친 비기너는 내 근처에 앉아서 먼저 나온 내 마라탕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 나는 내 마라탕을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허락해준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맛잇는 표정으로 마라탕을 먹는다. 오늘 만난 마라탕 비기너가 처음의 막막함, 당황스러움을 딛고 마라탕 러버가 되길 바라며. 나처럼.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라탕을 처음 먹은 날, 나는 막막하고 외로웠지만 그날 가게 안 누군가는 날 걱정하고 응원했을지도 모른다고.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