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아픔과 마주하다

정신과에서 풀지 못한 나의 문제가 상담센터에서 해소된 것에 대해

by soiemoie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 자신만의 격동의 시기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당시 정신과 의원이라는 곳에 처음 방문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도 아직도 그 겨울의 차디찬 공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유명한 병원을 예약하는 게 오래 걸리지 않을 만큼 정신과에 방문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굉장히 강했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반항적인 기미가 보이면 "미쳤다, 정신병자네"라는 말은 서슴없이 했으면서 정작 병원에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외면했다. 아마 때려서 키우는 게 비싼 진료비를 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에 민감한 부모님 앞에서 정신적 아픔이 있는 자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렇게 나는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정상인인 척 연기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야 겨우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기대감에 차올라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병원에 들어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까지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진료가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이름이 불리고 들어간 진료실은 공기조차 차가웠던 병원과 달리 무척이나 따뜻했다. 15년이나 지났지만 책상의 위치와 내가 앉아야 할 의자, 나무 화분과 책장, 침대 그리고 적막은 여전히 기억이 난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 빼고. 희미한 기억을 되새겨보면 40대 초반의 남자였던 것 같고, 안경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를 보던 차가운 눈빛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는 나에게 방문의 이유부터 치료의 목적을 확인했다.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그는 반문만 했다. "왜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본인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그때마다 나는 답변할 수 없었다. 나는 원인을 알고 싶었고 전문가로부터 앞으로의 대한 해결책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몰아세우는 그 질문에 지레 겁을 먹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내게 깊은 숨을 몇 번 내쉬었다.



그는 나를 가두는 내 생각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히려 나에게 원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



한 번만의 만남으로도 그 의사에 대한 만남은 두려워졌다. 그의 입에서 계속 나오던 한숨 소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기질의 나를 신경 쓰이게 했다. 그 적막함에 울리던 그의 말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에 신경이 더욱 곤두서졌다.



그는 종이에 몇 글자를 쓰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약을 처방해 준다는 말과 함께 진료를 끝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기대감에 부푼 시간은 10일도 더 된 것 같은데 진료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기에.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온갖 내 삶의 방식이 부정되고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게 맞구나, 모든 게 내 탓이구나. 난 무엇을 위해 버티면서 살아온 것인가.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져 왔다.

처방전을 받고, 약을 받으러 가는 그 순간까지도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저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찌저찌 정상인인 척 살아왔다.



여전히 불안하긴 했다. 후에 몇 번의 죽음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차후 이 얘기에 대해 서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인생도 어떻게 흘러 흘러 살아가지고 있다.

이제 곧 만으로 33살이 된다. 지금의 나는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형적인 일반적인 가정에서 줄곧 지내온 마냥 살아온 척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사람과 다대일로 대화하는 것은 어렵다. 눈을 마주치는 것은 어렵다. 대화를 이어가는 게 힘들다. 종종 안정제를 먹어야 진정할 수 있으며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 나에게 온갖 새로운 자아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에 같은 팀원 중 하나가 회사에서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받고 나서 후기를 공유해 줬다. 회기가 짧지만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인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몇 번을 망설이다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나는 지난날의 잊었던 아픔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겨내게 된 과정을 다시금 되새겨 여기에 남겨두려고 한다.

나처럼 고통을 감춘 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