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시계의 밤
1. 감독: 비간(2018). 중국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으로 활동. 1989년생 신예 감독이며, 이 영화는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영화 연출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함.
2. 표면적인 내용은 이러함. 주인공 뤄홍우(황각)가 아버지 장례 때문에 몇 십 년만에 고향 구이저우성 카일리(凯里)로 돌아옴. 과거 사랑했던 완치원(탕웨이)의 행방을 찾기 시작함. 하지만 그녀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그녀가 노래를 부른다는 가라오케(룸 형태의 가라오케가 아닌 야외 무대가 있는 곳)로 가는데.
3. 확실히 쉽지 않은 영화임. 한번 봐서 절대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움. 두세번 볼 거 아니면 처음부터 보지 말길.
4. 기본적으로 영화가 무거운 분위기를 깔고 있음. 시종일관 죽음의 늬앙스도 보여줌.
5. "영화는 가짜, 기억은 가짜와 진짜의 혼합"이라는 대사로 몇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음.
1) 영화 전반부의 내용은 기억(가짜+진짜)의 공간이다.
2) 뤄홍우의 이야기와 초록색 연애소설책의 이야기는 동일하다.
3) 그렇다면 뤄홍우의 이야기는 가짜다. 가짜는 영화다. 영화는 이야기다.
4) 진짜는 제3의 인물이다.
5) 따라서 이 기억의 세계의 진짜 주인은 제3의 인물이다.
6) 기억은 조작되고, 이 기억의 세계는 제3의 인물의 경험과 연애소설 이야기가 혼합되어 있다.
7) 제3의 인물은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는, 가슴에 새 문신을 새긴 소년일 것으로 추측된다.
8) 소년은 폭우 속 산사태로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
6. 정리하자면, 영화 전반부는 어느 소년이 죽기 직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꿈 같은, 혹은 영화 같은 조작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음. 뤄홍우가 그토록 찾아해매던 완치원은 소년이 사랑하던 애인이 아닐까 생각함.
7. 영화에서 여름/겨울, 불(뜨거움)/물(차가움), 영원(고장난 시계)/찰나(일분간 유효한 폭죽) 같은 대조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줌. 머리 위에 켜져 있는 전구는 가장 위에 태양이 떠 있는 절기인 하지의 비유인듯 보이며, 방이 회전하다는 말과 중력과 관련 있는 사과는 지구를 상징하는 듯 보임. 지구는 곧 현실 세계를 뜻함.
8. 그렇게 정확히 영화 절반이 지나 전반부가 끝나면, 후반부는 지구 최후의 밤을 보여줌.
9. 같은 곳이지만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바뀐 가라오케라는 공간은 죽음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함. 주인공 뤄홍우는 완치원과 똑닮은 여자와 빙글빙글 도는 방에서, 예전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샹들리에도 있었지만 현재는 폐허 같은 그 방에서 뜨거운 키스를 하며 영화가 끝남.
10. 전반부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했고, 후반부는 약 60분간 디지털 3D 롱테이크 방식으로 촬영함.
11. 왜 2D와 3D로 나누었을까? 2D는 영화의 세계, 혹은 파편화된 꿈의 공간, 온갖 이야기들이 혼합된 기억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반면 3D는 3차원의 현실 세계를 표방하며, 영화에서는 초현실적이지만 나름 물리적 죽음의 공간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12. 롱테이크 방식 역시 끊김없는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했던 것으로 생각함.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반부에는 시간의 연속성이 부재하지만, 후반부는 실재의 세계처럼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했다고 생각함. 엔딩에서 마치 시계가 돌아가듯 순환하는 카메라 워킹이 이를 잘 대변함.
13.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구 최후의 밤>은 신인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재능이 녹아든 위대한 영화라고 생각함. 이런 영화를 중국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이 아직 중국은 죽지 않았구나를 느끼게 해줌.
14. 반면 한국 감독들은 예술 따윈 개나 줘버려, 돈만 벌면 돼! 뭐 이런 마인드가 만연해져 있어 안타까울 뿐.
15. 마치 SF영화일 거 같은 원제목인 '지구 최후의 밤'은 영화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