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퀘어

편견의 네모

by ORANGe TANGo

1. 2025년 06월 21일 토요일, 비가 엄청 쏟아붓는 날 <더 스퀘어>를 봄


2. 감독, 각본 루벤 외스틀룬드로 스웨덴 사람.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슬픔의 삼각형>을 연출한 감독. 이 사실을 알고 아 그래서...하고 생각함. 두 영화 스타일이 비슷.


3. 클라에스 방이라는 배우가 크리스티앙이라는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역을 맡음.


4. 개념미술을 소재로 행동하지 않는 지성을 풍자하는 영화라고 위키백과에서 나와 있음.

난 이 말에 동의하지 못했음.


5. 파티장에서 유인원 행위예술을 연기한 배우 테리 노터리는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에서 로켓 역을 맡았다고 함. 어쩐지 잘 하더라.


6. 많은 후기 및 리뷰와 평론가들의 한줄평들을 보았을 때 모두 일관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봄. 이 영화의 주제를 말과 행동이 다른 현대지성인들을 비꼬는 블랙코미디라고 정의함.


7. 나도 영화를 보는 중에는 같은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이내 의구심이 듬. 그렇다면 왜? 주인공 크리스티앙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냈을까?


8. 이 영화는 크리스티앙의 일상을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데, 처음 장면부터 살펴보자면 남성에게 쫓기는 여자를 도와주다 되려 소매치기를 당함. 그리고 노숙인에게 돈 대신 치킨 샌드위치를 사주지만 되려 무례함을 당함. 자신 때문에 억울함을 당한 소년에게 사과를 안 해도 되지만 결국 사과하기 위해 소년의 집까지 찾아감. 이런 모습들을 보고 과연 영화 속 현대지성인들은 말과 행동을 달리 했을까?


9. 마찬가지로, 유인원 포퍼먼스를 하는 남성에게 당할 뻔한 여성을 다수의 관중들이 구해내는 장면이 있음. 그럼에도 모두 이 장면을 보고 여성을 구하지 않는 지성인들이라 칭함. 왜일까? 같은 영화 본 게 맞는지 싶었음.


10. 아무튼 왜 이 영화가 현대지성인을 꼬집는 영화라고 생각했을까? 이유는 간단했음. 영화 속에 나오는 스퀘어의 정의 때문임. 스퀘어는 개념미술의 하나인데, 각자의 조그만 정사각형 영역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신뢰와 돌봄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림. 그리고 이 정의를 말해준 후 길거리에 앉아있는 거지들과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장면을 보여줌. 이런 연출이 영화 주제와 연관하여 관객들에게 혼선과 혼동을 야기함.


11. 감독의 의도일까?


12. "당신의 가방이 미술관 아무 곳에나 놓인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이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 질문임. 모래더미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좋을듯.


13.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관중들을 상대로 유인원 포퍼먼스 장면임. 더불어 좀더 주의깊게 봐야 할 장면은 모래더미 전시 장면과 틱장애인의 욕설 장면, 그리고 폭파되는 금발 소녀 장면으로 간추려 볼 수 있음.


14. 일단 모래더미 전시는 내가 말한 이 영화의 핵심 질문에 가장 근접한 대답이라고 보여줌. 청소부가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청소하는 장면이 블랙코미디임. 다시 말하면 모래더미는 그냥 쓰레기와 다름없음에도 청소부가 치우지 못한다는 점이 웃겼음.


15. 틱장애인의 욕설 장면만 보아도 이 영화가 어떤 의미의 블랙코미디인지 잘 보여줌. 틱장애인은 성희롱급 발언을, 진짜 입에 담지도 못할 발언들을 계속해서 내뱉고 있음에도 위에서 말한 현대지성인들은 장애가 있기에 우리가 참아야 한다라고 말함. 사실 이건 장애인의 보호자가 얼른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함. 뭔가 상식에 맞지 않는 이런 장면들로 나는 영화 속 스퀘어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됨.


16. 사람들은 금발소녀가 폭발되는 장면에 분노를 금치 못함. 왜? 어린 아이가 폭파되는 장면이 끔찍해서? 그저 소녀가 흑발이 아니라 금발이었기 때문임. 흑발이었다면 평등과 배려라는 주제와 맞지만, 금발은 테러와 연관됨. 다시 말하면 상식과 무척이나 어긋나는 영상이기에 분노했다고 생각함.


17. 그렇다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유인원 퍼포먼스를 말해보자. 한 배우가 마치 한마리의 고릴라, 혹은 침팬지를 흉내내며 등장함. 그의 모습이 진짜 동물과 흡사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 이 배우는 점점 포악해지고 마는데. 영화 속 관중도 영화 밖에 관중도 과연 어디까지가 퍼포먼스인지 아리송한 상황까지 도달할 때쯤, 이 연기자가 결국 한 여자를 덮치면서 이것이 행위예술의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됨. 그렇다. 흉내내는 걸 넘어 진짜가 되어버린 배우, 과연 예술인가 아닌가? 흉내까지가 예술인지 아니면 진짜가 되어버리는 것까지가 예술인지? 뭐 어찌됐든 모든 사람들이 진짜가 되는 것에는 불편해 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음.


18. 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스퀘어라는 정의를 내려볼 때임. 스퀘어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이 작은 정사각형은 각자의 편견이라고 생각함. 또는 각자의 상식임. 또는 무의식적으로 강요된 도덕성임.


19. 이를 눈치챈다면 이 영화는 관객을 농락하기 위한 감독의 놀이라고 봐도 될 거 같음. 스퀘어는 배려와 도덕, 미덕, 인류애 뭐 이런 따위의 개념을 앞세워 관객들에게 일종의 편견의 프레임을 씌우고 간간히 거지와 무심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여줌. 그리고 영화의 내용과 무관한 길을 관객들이 가도록 한 후 뒤에서 낄낄거리며 좋아할 감독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개인적으로 좋았음.


20. 더불어, 이 영화도 그렇고 <슬픔의 삼각형>도 마찬가지이지만, 감독의 연출에는 어떤 판타지적인 느낌이 있음. 주인공이 원나잇하는 장면에서 그런 느낌이 드러나는데, 샤워를 하고 나타난 여성이 마치 침팬지로 변한 것처럼 연출함. 이런 감독의 조크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음. 이런 걸 리얼판타지라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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