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6 사과하지않는 사람들

세희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태어나서 호기심에 가득 차 골목골목을 걸어 다녔고,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우리 동네

어렸을 적 이웃들은 정이 있고 푸근했다.

고무줄, 숨바꼭질, 다방구, 이어달리기, 해골바가지 놀이

우리는 매일 똑같은 놀이를 하고, 또 새로운 놀이들을 만들어냈다.

동네 아이들은 뛰어난 창작자들이며 발명가였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밥을 먹고, 골목 가운데 서서


“ 얘들야, 나와라 노~~~ 올자. ” 노래를 부르면

“ 경미, 아직 잔다. 이따 놀아라. ” 대답해 주시는 앞집 아줌마도

“ 그래, 알았다. 나~~ 간다, 기다려라. ” 답가를 해주는 친구도

“ 호달이, 오늘 일일 공부해야 해서 못 논다. 내일 놀아라. ” 아줌마가 말하시면 옆에서

“ 앙~~ 엄마, 나도 나가서 놀래. ” 우는 호돌이의 소리도 들렸다.


동네 아이들은 모여들었고, 때 꼬장 물을 흘리면서도 우리는 미친 듯이 놀았다.


“ 동완아, 들어와서 밥 먹어라. ”

“ 경진아, 점심 먹게 들어와. ”

“ 현진아, 밥 차렸다 빨리 들어와라. 밥 먹자. ”

익숙한 외침에 모두 밥을 먹으러 들어가고.

부모님이 일 나간 아이는 제 밥을 찾아 먹으러 스스로 집으로 들어갔다.

인심 좋은 아줌마들은 내 아이가 아니어도 밥을 먹여주셨고,

약속이나 한 듯 점심을 먹고 나면 모두 나와 노을이 질 무렵까지 놀았다.

저녁밥 짓는 냄새가 동네에 풍길 때쯤 허기가 져서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놀아도 놀아도 끝이 없었고 지치지 않았으며,

반복되는 놀이에도 지루함이 없었다.

해가 저물어 집으로 들어갈 때면 아쉬워서


‘ 내일은 이 놀이를 해야지. 아니야, 이렇게 노는 게 더 재미있을 거야. ’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동갑이 아니어도 언니, 오빠, 동생이라도 괴팍하지 않으면 함께 놀았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는 어른들도 있었고,

시끄럽다고 다른 곳에서 놀라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무서운 할머니도 계셨다.

그런 할머니가 무서워 도망가면서도 우리들의 도망감이 재미있어 “ 아~악 “ 웃으며 줄행랑을 쳤다.

나는 그곳에서 대학교 2학년까지 살았다.


갑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시면서

이웃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둘째 언니가 사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일산은 내게 낯설었고 황량한 곳이었다.

인사를 하거나 안부를 물을 이웃들도 친구들도 없었으니까

그저 아침이면 나가고 저녁이면 들어오는 곳이었다.

일산에서 사는 건 오직 언니들과 조카들 형부들 가족들이 있어서였고 점차 동네가 익숙해지면서 이웃들이 생기고 정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조용하고 호수가 있고 숲이 많은 일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후와 결혼을 준비하면서신혼집을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전세 자금은 시부모님이 마련해 주시기로 했고, 살 곳을 정해야 했다.

나는 일산 집 근처에 회사가 있었고 지후가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대방동이었다.

연애할 때는 차가 있어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은 달랐다.

나는 친정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8시까지 출근해야 했고, 차도 없었고, 장롱 면허라 출근은 항상 버스로 해야 했다.

집 근처에 언니들이며 조카들 엄마가 살고 있어서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언니들의 출산 후 조카들이 태어나면 모두들 조카들을 내 자식인양 함께 키웠다.

의무감이 아닌 사랑이고 애정이었다.

언니들의 고통스러운 분만 과정도 모두 지켜보았고

새빨갛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신생아 때부터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함께 했다.


‘ 할머니 보단 이모인 내가 더 나을 거야. ’ 하면서 출근한 언니를 대신 해 대학생인 내가 학부모 상담도

대신 가곤 했다.

담임 선생님들은 학부모 상담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는 건 봤어도

어린 이모가 오는 것은 처음 봤다면서 웃으셨다.

나도 담임 선생님과 웃으면서 조카들 얘기를 같이 하곤 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우린 서로를 돌봐주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자식들 조카들을 함께 키웠고, 엄마들이었으며, 자식들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 아이도 자라면 많은 엄마들과 할머니, 사촌 형제, 자매간에서 키우고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 오빠, 신혼집은 어디에 구해? ”

“ 엄마가 독서실 근처 조그만 아파트 전세를 얻어 주시겠다는데. ”

“ 어? 그러면 나는 어떻게 출근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거긴 지하철도 없어서 버스를 환승해야 해.

출, 퇴근 시간은 두 시간은 걸리지 싶은데.

그리고 아이 낳으면 나 혼자 키워야 하잖아. 아이 혼자 키우는 거 무지 힘들어.

어머님이 아이 낳으면 봐주시겠데? 힘들 텐데. 그냥 우리 친정 근처에 구하면 안 될까? “

“ 알았어, 아무래도 일산에서 대방동까지 출근하는 건 무리겠지? 한번 물어볼게. ”

신혼집은 친정 근처 일산에 얻는 것이 가장 나을 듯싶었다.

“ 은서야, 엄마가 대방동에서 집을 얻자는데.

독서실이 연중무휴이고, 24시간 오픈이니까, 갑자기 아르바이트생들이 전화도 안 하고 안 나오는 때도

있거든. 일이 생겨서 가게에 급하게 일이 생길 때도 있어.
일단 집 근처에서 얻으라 하시네. 살아보고 불편하면 그때 이사를 가도 되고

며느리랑 정도 붙이고, 자주 왕래하고, 자식들하고 근처에서 살고 싶으시대. “

“ 어? 그럼 계약한 2년은 거기서 살고, 아이가 생기면 친정 근처로 가자.

혼자 낳아서 기르는 거 힘들어. 만약 어머님이 도와주시면 그땐 살아도 되고

언니들 조카들 낳고 기르는 거 보니까 아이 기르는 거 쉽지 않아. 옆에 누군가가 도와줘야 해. “

“ 그래, 우선 2년만 여기서 살자. 그래야 부모님도 섭섭하지 않으시지. ”


그렇게 우리는 신혼집을 시댁과 가게가 있는 대방동에 얻었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단 둘이 사는 집은 조용했지만 편했다.

마음대로 자고, 눕고, 쉴 수 있었다. 설거지도 미루고 게으름도 피울 수 있었다.

평일에 퇴근을 하면 둘이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볼 수도 있었고

주말이면 여행도 다니고 외출도 하곤 했다.

지후가 말한 그대로 갑자기 독서실에서 야간이나 새벽에 호출이 오기도 했고

직원들이 연락 없이 잠수를 타기도 했다.

건물에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아이들끼리 싸움이 얼어나기도 했고,

이것저것 불편함을 따지는 성인들도 있어 독서실 운영은 쉽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그만 인 나와 달리

자신의 가게나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은 밤, 낮, 휴일이 없었다.

예민하고 철저한 지후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빈틈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더 운영이 잘됐다.

한 사람에 어머니, 아버지, 시동생 현우, 나

이렇게 네 명, 두 가족이 살아가는 일터라 지후는 더 어깨가 무거웠다.

가장 힘든 것은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을 채용하고, 교육시키고,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산으로 운동하러 다니시고 친구 분들을 만나러 다니셨고

청소를 하거나 주변 관리, 돈 관리는 어머니가 하루에 2-3시간씩 하셨다.


‘ 이제 쉬실 때도 되셨지. 살살 다니시면서 쉬엄쉬엄 가게 일을 해도 되지. ’


지후와 나는 그렇게 이해했고

시아버지는 전보다 더 밝아지시고 기운을 차리셨다.

시어머니는 큰돈을 벌자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셨다.

어느 집에나 애를 먹이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

시동생 현우

짐작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현우는 이틀에 하루 근무를 했는데 가족들과 함께 일을 해서인지 책임감은 없었다.

술을 밤새 먹고 들어오면 다음날 출근을 종종 하지 않았고, 지각도 잦았으며

말없이 안 나오는 날도 있어 직원 못지않게 속을 섞였다.

쉬는 시간이거나 휴일이어도 현우가 나오지 않으면 지후가 대신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함께 일하면 책임감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현우는 자기 멋대로 였다.

무책임한 아들을 아직도 어린아이인 양 귀엽게 바라보는 시부모님들도 이해가지 않았다.

이해를 하지 못해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현우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 큼 내 남편 지후의 일거리는 늘어간다.

당연히 우리의 결혼 생활에도 지장이 갔다.

그러면서도 현우는 사과하거나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든든한 부모님을 믿고 잘못을 저지르는 학생들처럼 철이 없었다.

현우보다 시부모님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 형, 작은 사장님이 아직 안 나오셨어요. ”
“ 어? 현우가 안 나왔어? 알았어. 내가 나갈게. ‘

은서야, 조금 있다 현우 나오면 출발 하자. 현우가 아직 출근 안 했다네.

전화도 안 받는 다고 하니까 일단 나가서 직원 퇴근시키고 내가 계속 전화해볼게. ”

“ 아니, 도련님은 대체 왜 그래? 툭하면 안 나오고.

일찍 출발 안 하면 고속도로 엄청 막혀. 9시 넘으면 한참 밀릴 텐데. “

“ 금방 오겠지. 내가 전화하면 바로 출발하게 준비하고 있어. “

시간은 이미 9시를 넘어서 10시,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사정을 알고 있어서 전화는 안 했지만 화가 났다.


“ 아직도 안 왔어? 전화도 안 받아? ”

“ 응, 전화를 안 받네, 엄마한테 물어보니 요새 사귀던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힘들어한데.

아마 그래서 밤새 술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자고 있나 봐. “

“ 그게 말이 되니?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들 그렇게 살아.

헤어졌다고 말도 없이 안 나오면 어떡해? 못 나온다고 미리 말을 하던가 해야지.

한 두 번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왜 어머니며. 아버지 모두 혼도 안 내셔? 아들이라도 혼을 내셔야지.

참, 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 안가. 그러니까 그러고 다니지. “

“ 아직 어려, 철이 안 들어서 그래.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 애였데.

그러니까 많이 힘들겠지? 네가 이해해라.

엄마가 오전에 일 보시고, 이따 두시쯤 나오신다고 하니까 그때 출발하자.

점심 먹고 기다리고 있어. “

“ 싫어, 안 갈래. 지금 출발하면 고속도로에서 시간 다 보내고, 저녁에야 도착하는데

그럼 잠만 자고 내일 오후엔 출발해야 하는데 길에서 시간 다 보내.

안 가는 게 나아. 그냥 집에 있을 때. “


한 달여를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었는데 다음으로 다시 미루었다.


‘ 미루어진 여행을 갈 수나 있을까? 간다 해도 재미가 있을까? ’ 이미 김은 다 샜다.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아무도 시동생 현우를 혼내지 않는 것이었다.

지후가 무책임한 현우를 혼내면 오히려 현우의 역성을 들기도 하셨고, 동생을 잘 돌보지 않는 매정한 형이라고도 했다.

형 부부에게 피해를 주는 데도 시부모님은 아들을 혼내지 않으셨다.

내가 없을 때 혼을 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혼을 내는 법이 없으셨다.


‘ 여행을 못 간 형, 형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닌가? ’ 그러나 그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시아버님은 현우의 잦은 무단결근이나 지각은 모르는 듯했고,

어머니도 며느리나 큰 아들에게 미안한 기색은 없으셨다.

친정 식구들은 사과할 일이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곤 했다.

나이나 손위 관계를 불문하고 사과하는 것은 암묵적인 ‘ 룰 ’이었다.

손아래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가족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이가 어리거나 손아래 사람은 상대적인 ‘ 약자 ’이다.

그래서 상대적 강자인 연장자나 손 위 사람은 “사과하는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친정 식구들은 피해를 주거가 상처를 주면 반드시 사과했고, 용서받았다.


신혼 초 부부싸움을 하다가 지후는 본인의 잘못임에도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 가족끼리 뭘 그런 걸 하냐? ” 고 그는 얼떨떨해했고,

" 나는 반드시 받아야겠어.”라고 했다.


그는 사과하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나는 사과의 행위가 수치스럽기보다는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가 더 수치스러웠다.

점차 그는 사과하는 방법을 익혀갔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사과”를 잘하는 남자가 되었다.


‘사과’는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방법이었다.

함께 살다 보면 가족 내에서도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일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고의로 의도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은 용서하기 어렵지만

의도 없는 말, 실수, 행동은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애정 하는 하나의 표식이다.

그래야 반복되는 실수에도 상처에도 치유받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 사과 ’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서로 간에 사과를 주고, 받은 경험들이 없는 듯했다.

부부간, 부모 자식 간. 형제간

모든 관계에서 주고, 받아야 할 “사과”가 이 집에는 없었던 듯했다.


‘ 모두가 완벽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살았던 것인가? ’

아니었다. 시댁의 식구들은 권위와 서열의 갑옷을 입고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 대충 이해하고 말겠지? 가족끼리 뭘 그런 걸 가지고 일일이 따지고 그래. 우리가 남인가? ”

“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괜찮아져. ”

“ 그래서 네가 뭐 어떻게 할 건데? ”


무심함이든 무뚝뚝함이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를 불편하게 했다.


‘ 마음속에 상처들이 많이 쌓여 있겠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편한가? 자존심이 상한가? 오히려 더 불편하지 않나? ’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의문스러웠다.

전에 지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너네 식구들은 편안해 보이더라. 자연스럽게 보여.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그런 것도 아니면서

소소하게 재미난 얘기하고, 서로 웃기고, 수다 떨고, 그런 거 보면 신기했어.

‘ 이런 게 가족일까? ’ 하는 생각도 들었고

처음 본 나를 전에 알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유머스럽게 대하는 것이 좋았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서로 얘기도 잘 안 하시고

나만 어머니랑 얘기를 잘하는 편이야. 엄마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서 많이 힘들어하셨어.

나도 완벽주의 아버지가 갑갑했고

사실은 아버지 흉을 같이 봐서 둘이 친한 건지도 몰라.

어머니는 내가 아니면 아버지 흉을 볼 사람이 없거든

현우는 식구들이랑은 말이 없는 편이고

부모님은 일 다니시느라 현우를 잘 돌보지 못했어.


내가 5살이나 위이기도 했고, 두 분 다 일 나가시면 엄마는 둘이 먹으라고 상을 차려놓고 나가셨지.

그래서 부모님들은 현우를 더 안쓰러워하는 것 같아.

나보다 현우를 더 예뻐하는 것 같아. 현우한테 미안하니까.

나는 당연히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장남이어야 했어.

현우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말썽을 부려도 어리고 불쌍한 막내인 거지.

같은 잘못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니어도, 모두 다 내 책임이었고 내가 혼나야 했어.

그래서 현우가 밉기도 했어. “

지후의 마음에도 상처가 있었다.

시부모님. 지후, 현우 모두에게 상처가 쌓여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행복하고 부러워 보여도 모든 집들은 저마다의 문제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다만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 와 정도의 차이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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