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7 정확한 육감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영자 이야기
정확한 육감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정문 출입구 쪽 동이면 거리도 적당할 것 같았다.
오가다 불이 켜져 있으면 아이들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 굳이 전화를 할 필요도 없고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나 서로 왕래하기도 쉬울 것 같았다.
부동산 사장이 신혼집은 보통 17평이나 19평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적당할 듯했다. ‘ 이따 저녁에 지후가 들어오면 얘기를 해야지. ’
“ 엄마, 우리 신혼집 일산 쪽에 얻고 싶은데 ”
“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얻으려고 했는데, 왜 은서가 친정 쪽에 얻고 싶데? ”
“ 응, 아무래도 은서 직장도 가깝고, 나는 출퇴근 시간이 여유가 있는데
은서는 8시까지 출근이니까 여기서 다니려면 6시에는 나가야 해.
그럼 5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힘들 것 같아서. “
“ 그래, 은서 직장은 그렇긴 한데, 너도 가게 나가야 하잖아.
연중무휴에 24시간 돌아가기도 하고, 갑자기 가게 나가야 할 일도 생기고.
직원들 관리며 갑자기 연락도 안 되는 때도 있고
오래된 건물이라 저번에 화재 났을 때랑 정전됐을 때 얼마나 놀랐니?
아빠가 신경을 쓰나,현우한테 믿고 맡길 수 있기를 하니
은서가 일산 쪽에 꼭 얻어야겠다니?
시집왔으니까 우리 집 분위기도 익히고, 얼굴도 자주 보고해야 정도 드는데.
이쪽에서 얻으면 안 될까?
한번 일산 쪽에 집 얻으면 아마 거기서 계속 살아야 할 걸. “
“ 그렇긴 하지. 아버지도 그렇고, 현우도 아직 정신 못 차렸고. ”
“ 지후야, 일단 2년만 여기서 살자. 그리고 나중에 이사를 가도 되잖아.
그리고 은서 직장 다니는 거 아이 가지면 계속 다니기 힘들어.
나는 아기 생기면 그만 다니고 애기나 잘 키웠으면 좋겠어.
아기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너는 그래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키웠는데......
현우는 내가 일하느라 너무 어릴 때 떼어놔서 그러는지 공부도 안 하고 자꾸 말썽만 피우고
나는 현우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나다니는 게 꼭 내 탓인 것 같아
계속 마음에 걸린다.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해.
그리고 은서 직업이 공무원이나 교사 은행원도 아니고, 그렇게 좋은 직업도 아니잖아,
솔직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애나 키우고 살림이나 하라고 해.
그냥 이 근처에서 엄마랑 이렇게 얼굴 보고 살자.
내가 아빠랑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 거 너도 알잖아?
그나마 장사가 잘 되니까, 요새 아빠가 잔소리도 없고 살만 하다.
손주까지 태어나면 얼마나 좋아시겠니? “
“ 알았어, 일단 은서랑 다시 의논해 볼게. ”
“ 참, 너 내가 은서 직장 그만두길 바란다는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마라.
아직 그런 말은 할 필요도 없어.
그냥 2년만 여기서 살자고 해. 그리고 친정 쪽으로 이사 가자고. 알았지? “
계획대로 아이들 신혼집은 우리 단지 아파트에 얻어주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같이 저녁을 먹고, 반찬거리나 김치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하고 자주 왕래했다.
은서도 불편하지는 않은지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사서 놀러 오곤 했다.
남편도 좋아했고, 지후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진 것 같았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아이었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내숭과는 아니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남편과 며느리는 사이가 좋았다.
경우도 바르고, 어디 가서 책 잡힐 아이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경우가, 사리가 너무 분명한 듯했다.
좋을 땐 좋지만 아니다 싶으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 가족들한테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벨이 울렸다.
지후였다. 강원도로 여행 간다고 새벽에 출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걸 보니 또 현우가 안 나온 게 분명했다.
“ 엄마, 현우는? 어디 갔어? ”
“ 왜 가게로 바로 출근했을 텐데. 안 나왔데? ”
“ 아, 진짜 우리 오늘 강원도로 여행 가기로 다 예약해놨는데. 어디 간 거야? ”
“ 못살아. 못살아. 아우 속 터져. 내가 못 살겠다, 진짜
말도 마라. 그 사귀던 애랑 헤어지고 정신을 못 차린다.
술 처먹고, 어디 가서 자고 있겠지.
결혼한다고 조를 때 그냥 결혼시킬걸, 이렇게 속 썩일 줄 알았으면 그냥 시켜버리는 건데.
내가 어지간만 했으면 시켰을 텐데. 그런 애가 뭐가 좋은 지
그리고 너 은서 앞에서 자꾸 현우 흠 자꾸 잡고, 혼내지 마라.
걔는 남이야. 남. 현우는 네 동생이고.
왜 자꾸 현우한테 뭐라고 하니? 애 기죽게.
네가 자꾸 현우한테 뭐라고 하면 은서가 현우 우습게 봐. 업신여긴다고.
넌 네 동생을 니 처가 우습게 보는 게 좋아? “
“ 아니, 은서가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현우 때문에 은서 보기 창피해.
걔가 나이라도 어려? 벌써 28살이야. 이제 정신 좀 차려야지.
언제까지 엄마, 아빠 그늘에서 살 거야?
책임감도 없고, 그렇게 저하고 싶은 데로 다 하고 살고.
엄마랑 아빠가 싸고 도니까 걔가 더 그런 거야. 혼 좀 내. “
” 혼을 내면 그놈이 내 말을 들어먹니? 아휴~ 진짜 내가 속이 터져서.
아무튼 너는 은서 보는 앞에서 현우 혼내지 마.
혼을 내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
은서가 들어오고, 좋은 일도 많았지만
자꾸 지후와 현우가 부딪치기 시작했다.
물론 현우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전에는 그런 일이 있어도 지후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자꾸 지후의 잔소리가 많아지고 심해지니, 현우는 형을 피하는 것 같고 더 밖으로 도는 것같았다.
‘ 그렇게 잔소리를 하니 그렇지. ’
결혼을 하고 더 이상 동생을 감싸주지 않는 지후가 야속하기도 했고
은서가 현우를철없는 동생 보듯이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은서 성격에 분명히 집에서 지후한테 뭐라고 하는 게 분명했다.
‘ 그걸 그렇게 꼭 따지고 들어야 하는지. 지 친동생이라도 그럴건지 .’
남편이 현우가 그러고 다니는 거 알면 분명 노발대발할 텐데.
아주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얼마 전 저녁에 은서와 집에 둘이 있던 날이었다.
요즘 현우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고 너무 답답해서 며느리한테 하소연을 했다.
동네 아줌마들한테 내 자식 흉은 보기 싫었다.
“ 현우가 만나는 그 애, 나는 정말 맘에 안 들어.
얼굴은 이쁘고, 키도 적당하고, 직업도 피부 관리사에 다 괜찮은데,
애가 춘천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 생활을 한 지가 오래더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혼자 했다면 얼마나 남자가 들락거렸겠니?
나는 그런 애 며느리로 받기 싫다.
그래서 내가 현우한테 그랬지.
걔랑 연애만 하라고,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그랬더니 아주 이 난리를 치는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런 애랑은 결혼 못 시킨다. “
“ 맞아요. 어머님, 그런 여자애를 어떻게 며느리로 맞을 수가 있겠어요.
도련님이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어머님, 너무 속상하시겠어요. “
나는 은서가 이렇게 나를 위로해 줄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 어머님, 그런데 도련님이 그 여자 분이랑 사귄 지가 4년이 넘어가지 않나요?
수시로 집에도 안 들어오고, 지후 씨랑 연애할 때도
도련님이 그 아가씨랑 연애하면서 집에 자주 안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그 아가씨 집에서 자기도 하고 그랬을 텐데.
거의 동거를 한 셈이에요. 도련님이랑 그 아가씨는 법률적으로 사실혼 관계예요.
애초에 그럼 도련님이랑 그 아가씨를 떼어 놓든가 하셔야 했는데.
이제 와서 헤어지라고 하면 떨어지기 힘들어요. 애들도 아니고
그 아가씨랑 연애만 하고 결혼은 하지 말라는 건....... 좀 그래요.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선 듣기 좀 그런 말이에요. 왠지 그 아가씨가 좀 딱하네요.
오래 연애했고, 서로 좋다고 못 헤어지겠다고 하면 많이 좋아한다는 건데
그냥 결혼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은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민망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 내가 괜한 말을 해 가지고. 내 입이 방정이다. 방정. ’
“ 너도 자식 낳아봐라. 니 아들이 그런 여자애랑 결혼한다고 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니? ”
이 말이 입속에서 나오려다 다시 쑤욱 삼켜버렸다.
그 말까지 하면 내가 더 우스워질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분위기가 냉랭하고, 조용해지자
“ 어머님 제가 말실수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
여자들이 많은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여자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돼요.
피곤하실 텐데 그만 주무세요. 도련님 들어오시겠죠.
제가 지후 씨한테 도련님이랑 얘기 잘해보라고 할게요. “
그리곤 자기 집으로 갔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이었다.
‘ 옳은 말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 무조건적인 내 편을 들어주는 가족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편과 아들들 틈에서 살아온 사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딸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은서가 그래 주길 바랬다. 그러나 은서는 딸 같은 아이는 아니었다.
‘ 지 동생 아니라고. 남이야, 남. 남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
서러운 맘도 들었다. 형이고 형수고 누구 하나 현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 내가 죽고, 남편이 죽으면 현우는 어찌 사나? ’ 싶기도 하고
‘ 다시는 며느리 앞에서 현우 흉을 보면 안 되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그 아이랑 있는지 전화도 받지 않고, 안 들어오는 현우, 밖으로만 도는 남편.
유일한 내 편이었던 아들 지후는 은서와 살고 있었다.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네. ’ 갑자기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 딸이 있어야 했어. 쟤를 며느리가 아닌 딸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쟤도 남, 남인가 보다. ’
그러다 문득 상견례 자리에서 사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우리 세희가 좀 냉정한 편이에요.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을 들어주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는
아이예요. 저한테도 그랬고, 당장은 냉정하다. 섭섭하다.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세희 말이 맞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식이고 막내딸이지만 세희랑 의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
궁합을 보러 가서 점쟁이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 며느리가 자네랑 좀 상극이야. 부딪칠 거야. 둘 다 강한 성격인데 당연히 부딪치지. ”
은서와 나는 모녀 관계가 아닌 고부관계이다.
‘ 네가 옳은 말만 하는 며느리라면 나도 바른말만 하는 시어머니로 살아야지.’
앞으로 은서랑 부딪칠 일이 잦아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정확한 육감은 축복이자 저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