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너만 참으면 되는 일인데

지후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내 아들은 되고, 당신 딸은 안 되고



‘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할 텐데.

그래야 여기서 6시에 출발하고, 버스 타고 갔다가 환승하고 다시~

출, 퇴근 시간이 4시간이면 은서가 너무 피곤할 텐데. ‘ 한숨이 나왔다


은서는 친정이랑 회사가 가까운 일산 쪽에 신혼집을 얻자고 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거나 키우기도 친정이 있는 곳에서 키우는 게 여러 모로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서의 말이 맞기는 하는데

엄마가 일산 처가쪽에 집을 얻는 것을 반대했다.

한번 며느리가 친정 쪽으로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기도 하고

신혼이기도 하고 시댁 식구들이랑 정도 붙일 겸 2년만 같은 단지에서 살자고 했다.


엄마가 아버지랑 좋은 사이도 아니고, 그나마 현우가 집에 붙어 있으면 내 마음이라도 놓을 텐데.

여전히 현우는 밖으로 도는 모양이었다.

엄마에게는 숨구멍이 필요하고 의지할 만한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남편이나 자식들 흉도 보고 한다는데

남들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가족들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외동딸이었다. 삼촌들만 있고 이모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더 외로워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엄마의 말을 하소연을 들어줄 이가 하나는 필요하지 하지 않은가?

‘ 딱 2년만 사는 거야? 아니면 돈을 모아서 차를 사도 되고

도로 주행만 좀 하면 은서가 회사에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야. ‘


“ 은서야, 2년만 여기서 살자.

엄마랑 아빠가 너랑 정을 붙이고 살고 싶으신 것 같아.

딸도 없고, 두 분이 사이가 좋지도 않고,

완전히 가게가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2년만 살고 일산 쪽으로 이사 가자.

우리가 그쪽으로 가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그리고 전세금도 부모님이 마련해 주시는 거잖아.

그동안 돈 모으고 일산 쪽에 작은 아파트라도 사서 마련하면 별말씀 하지 못 하실 거야.

힘들어도 참고, 2년만 버텨보자. “

“ 응, 알았어. 대신 2년 후에 일산으로 집 얻어야 해.

내가 시부모님하고 같이 사는 게 싫은 게 아니고, 난 아이를 낳아도 계속 회사 다니고 싶어.

물론 육아 휴직이랑 다 쓰면 두 돌까지는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는 데

언니들 아이 키우면서 살림만 하고 집에만 있는 게 너무 갑갑해 보였어.

내 새끼가 이쁘긴 하겠지만

아기랑 말도 안 통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애기만 바라보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여러 명이 조카들 가끔씩 돌보긴 했지만

아이 키우는 거 장난 아니야.

그래서 여자들이 산후 우울증이나 그런 거 걸리는 거야. 난 충분히 이해해.


어머님도 넌지시 “ 딸, 아들 손주 보느라 주변에 아줌마들 골병들었다. 폭삭 늙었다. ”

자꾸만 말씀하시는 게 아이 키워주실 맘은 없는 것 같아.

그럼 내가 회사 그만둬야 하는데. 난 싫어.

복직하기도 힘들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경력이 아깝기도 하고

재취업할 때 언니들 경력 인정받지도 못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했어.

그것도 감지덕지하고 다녔지.

너무 아깝더라. 그 시간이, 노력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일산 쪽으로 가면 엄마, 언니들, 조카들 분명히 우리 아기 돌봐줄 거야.

회사 다니면서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난 그쪽이 좋을 거 같아.

하나만 낳을 건데 사촌 언니, 오빠들이 있는 데서 사는 것도 좋고.

아무튼 딱 2년만 사는 거야. 믿어도 되지? “


“ 그래, 걱정하지 마. ”

역시나 은서는 눈치가 빠르다. 엄마 속을 다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래, 2년만 살고 가자. 그때쯤이면 현우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엄마가 일산 쪽으로 집을 얻어 가라고 하실지도 몰라. ‘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 단지에서 신혼집을 얻었다.

은서는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

물론 몸은 피곤해 보였지만 전보다 마음은 더 편안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조카들이 친정 식구들이 보고 싶은 지 주말이면 친정에 가고 싶어 했다.

일산은 호수나 공원 숲이 많아 답답하면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탈 수 있었는데

서울은 그런 곳이 부족하다.

특히나 은서는 나무를 좋아했고, 잔디를 좋아했다.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자꾸 미루곤 했다.


“ 이 하늘 다 내 거야. 내가 최고 부자야. ”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 좋았다.

은서는 파란 하늘을 누워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집 근처 아파트에서는 조각난 하늘만 봐야 했다.

가끔 주말이라도 일산에 가고 싶어 했지만 가게를 나가야 했으므로 나는 갈 수가 없었다.

피곤한 나에게 친정 나들이를 가자고 하는 것도 미안해했다.


차가 있어 은서가 운전을 하면 쉽게 다닐 수 있을 텐데.

은서는 차를 구입하게 되면 그만큼 내 집 마련이 늦어진다고

집을 장만하고 나서 차를 장만하자고 했다.

결혼 전 아버지랑 같이 구입했던 차는 아버지가 거의 사용하셔서 같이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차가 지저분하니, 험하게 쓰니 그런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쓰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타고 4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없고

은서는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가끔 가게에 따라 나와 일을 돕기도 했고, 본가에 가서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오는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과 사이도 좋은 것 같았다.

엄마, 아빠도 편안해하셨고 엄마는 이야기 친구가 생겼는지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어려움 없이 우습고 재미난 얘기를 하는 은서를 좋아하셨다.

독특하고 솔직한 유머감각을 가진 은서와 있으면 나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궁합이 안 좋다고 했던 점쟁이들은 모두 사기꾼들이라고 괜히 이름값만 날렸다고 후회하셨다.

밥도 자주 먹고, 왕래가 잦았다. 모처럼만에 찾은 평화였다.


‘ 우리 집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 나는 은서에게 고마워했다.

현우만 정신 차리고 일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 같았다.

엄마도 은서에게


“ 너는 큰 며느리야. 현우가 모자란 면이 있어도 네가 잘 감싸주고,

나중에 현우가 결혼해서 동서가 들어와도 이런저런 말은 하지 말고. ”


은서는 웃기만 할 뿐 별 말은 없었다. 그렇게 잠잠하게 지나기만 해도 좋았다.


강원도 여행을 가기로 한 토요일 새벽.

출근해야 할 현우가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현우가 오랫동안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 아가씨와 현우의 결혼을 반대했고 그 길로 현우는 집을 나가버렸다.

물론 가게에도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고

전화도 없었다. 잠수를 탄 것이다.


우리가 계획했던 강원도 여행은 그날 새벽 갑자기 취소가 되었다.

일주일 후에 마음 정리를 다 했는지 현우가 까칠한 얼굴로 돌아왔다.

현우가 나한테는 아니어도 형수한테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좋으련만.

사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폭발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 은서야, 네가 현우를 이해해줘라.

현우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니? 결혼하려고 했던 아가씨인데.

마음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을 거야.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줘. “

“ 아니, 난 도련님 이해 못하겠는데.

이건 엄연히 직장 생활이야. 툭하면 지각에 무단결근.

나와서도 아르바이트 마냥 설렁설렁. 제대로 일하는 거 같지 않던데.

그냥 도련님 대신 직원을 뽑지 그래.

도련님 때문에 자꾸 피해 받는 거 난 싫어.

내 생각에 도련님이랑 일하는 동안 계속 속 썩을 것 같은데.


아버님은 모르시고, 어머니는 딱하게만 보시고, 오빠는 그냥 두는 것 같은데

이거 도련님한테 하나도 도움 안 돼.

나중에 혼자 어떻게 살아갈 거야? 부모님은 돌아가실 텐데....

오빠가 도련님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 거야?

그리고 도련님 지금 태도를 봐.

형한테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니?

그것도 안 하잖아.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그건 기본 매너인 거야. 가족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게 있는 거야. “


“ 너는 참 선 좋아한다. 왜 그렇게 너는 선에 집착하니?

가족이면 편하고 다 위로해주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 아니, 그건 아니지.

어머님도 그래. 내가 말은 안 했지만

도련님이랑 연애한 그 아가씨 왜 반대하는지 알아?


그 아가씨가 시골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하면서 서울 생활을 한 게 싫으시데.

그 아가씨랑 연애만 하고 결혼은 하지 말라고 반대했다더라.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든가.

4년이나 동거한 거나 마찬가진데.

내 아들은 동거하고 헤어지면 되는 거고, 그 아가씨는 내 아들이랑 동거 한 여자라 결혼은 하면 안 되는 거네.

결혼은 못하고 이 남자 저 남자 계속 동거만 해야 하는 아가씨네.

그렇게 따지면 영원히 그 아가씨는 결혼 못하는 거야.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거야.

어머니한테 솔직히 그 날 정 떨어지더라.

내가 믿고 존경하고 의지할 분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너무 실망했어.

나 엄마랑 둘이 살 때

형부가 모녀가 둘이 살면 나중에 결혼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처제 결혼 전까지 언니 내외랑 사는 게 보기 좋을 거라고 한 거

그땐 왜 형부가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그런 거였어.

형부는 알았던 거야.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무지 고마워. 형부한테.


나는 그 아가씨가 왜 이렇게 불쌍한 건지.

마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이렇게 더 화가 나는지 몰라. “


“ 그 아가씨가 네 동생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어머니한테 정 떨어진다는 소리가 뭐야?

우리 엄마고 그래도 어른인데 그렇게 말을 하면 내 기분이 나쁘지. “


“ 우리 엄마는 그런 말 안 해. 그렇게 경우 없는 행동은 안 해.

그리고 만약 우리 엄마가 큰 오빠 결혼할 때 그런 식으로 말했으면 난 엄마랑 대판 싸웠을 거야.

속물이라고. 그리고 우리 식구 중에 도련님처럼 무책임하게 사는 사람은 없어.

내 동생이면 벌써 반쯤 죽었어. “

“ 뭐? 속물이라고? 너 진짜 말 그렇게 할래? ”

은서는 더 약을 바싹바싹 올렸다. 본인이 내 약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가씨가 자기인 양 감정 이입을 했는지

그 아가씨의 언니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해가 안 갔다.


‘ 누가 모르는가? 엄마의 말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그래도 알면서도 덮어야 할 때가 있고, 어른이기에 참고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


은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해야 했다.

특히나 강자가 약자에 고약하게 구는 것을 몹시나 혐오한다는 것을 연애시절부터 익히 봐왔다.

골치가 아팠다.

현우와 엄마 은서 사이에 끼어 있을 내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 은서야, 네가 좀 참으면 안 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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