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아이를 놓치고, 설렁탕을 먹은 나

세희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아이를 놓치다.



학교 종처럼 정확한 내 생리 주기.

나의 생리주기는 여고시절 반 아이들에겐 달력이나 마찬가지였고, 생리기간 동안 나는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 항상 입었다.

내가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면 아이들은 자기도 곧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생리대를 준비하고, 교복 치마에 생리가 묻거나 교복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를 입고 귀가하는 불상사를 피 할 수가 있었다.

내 생리일은 자신들의 생리 시작일을 예측하는 알람이었다.


그런 내가 생리를 안 한다. 무려 삼일이나 지났다.

‘ 임신인가 보다. 이따 점심시간에 조용히 나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야지. ’

점심시간 임테기를 사서 화장실에 조용히 앉아서 테스트를 했다.

“ 또르르~~” 소변 소리가 유난히 크고, 거슬린다.

“ 으~~~ ” 손에 따듯한 소변이 묻었지만, 그것보다 궁금한 테스트 결과. 1분, 2분, 3분.....


‘ 나와라. 나와라. 나와라. ‘


연한 분홍선 두 줄이 보였다. 그러나 임신 판독선이 기준선보다 너무 연해서

내일 아침에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 아침 첫 소변이 제일 정확하다고 하니까 내일 아침에 다시 해야지.

물을 적게 마시면 더 정확하게 나오려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후와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아기를 가지기로 했다.

맞벌이였고, 절약을 했고, 적금도 매달 부어서 내 집 장만의 돈도 마련해 놓았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는 살 수 있었다. 아이를 가지고 내 집에서 맘 편히 키우고 싶었다.

나는 내 집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 조카들도 이쁘지만 내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


지후도 이제 아이를 낳자고 해서 더 이상 피임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기로 했다.

새벽이 되어 잠을 자고 있는 지후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자랑스레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를 보여주었다.

“ 일어나, 일어나, 그만 자. 이거 봐 바. 오빠가 이제 아빠가 되는 거야. ”

“ 진짜 된 거야? 무지 신기하네, 어떻게 한 방에 되냐? ”


지후는 놀란 눈을 비비고 임신 테스트기를 보고 또 보았다. 눈과 입이 모두 웃고 있었다.

부모가 되는 것은 환상적이고 기적적인 경험이다.

특히나 엄마가 되는 것은

신처럼 생명을 탄생시키고, 내 몸 안에 다른 생명체를 품게 되는 10개월의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10개월 후 그 생명체는 나와 분리된다,

그 생명체와 나는 다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딱 10개월만 나의 몸은 두 개의 생명을 가질 수 있다.

‘ 내가 너이고 네가 나다. ’


이 체험을 하게 될 나 자신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10개월의 경험이 너무 기대되었다.

출산의 고통은 익히 보아 무섭긴 했지만 조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보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을 주는 존재인지.

아직 친정이나 시댁에는 알리지 말자고 했다.

아기집이 확실히 자리 잡고 아기의 심장소리가 힘차게 뛰는 것을 듣고 난 뒤 알리자 했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 그때 하자.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산부인과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생리주기를 확인하고, 초음파를 본 뒤 5주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작은 콩알이 내 배 안에 있었다. 심장소리를 확인해야 하니 2주 후쯤 다시 오라고 했다.

심장소리는 7주 정도에 들을 수 있다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둘만의 파티를 했다.

퇴근을 해서 둘이서 치킨과 맥주, 음료수를 마시면서 서로를 자신을 축하해주었다.

빨리 친정이며 시댁 식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7주가 되기를 기다렸다.


여자의 몸은 신비롭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 바로 다음 날부터 입덧이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약간의 감기 기운, 메스꺼움이 있긴 했지만

입덧이 이런 것인 줄을 몰랐다.

언니들 모두 입덧이 심했는 데 나도 이럴 줄을 몰랐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핑 돌기도 했으며 갑자기 일어설 수가 없었다.

공복인 상태면 더 심했다.

공복이 입덧에 더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 전 침대 머리 위에 비스킷 등을 놓고

아침에 일어나면 누워서 몇 조각을 먹고 일어나야 했다. 그러면 입덧이 덜 했다.

역시나 선배들의 말은 새겨 들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의 선배들은 내게 꿀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온라인 카페 선배들이었지만 그들의 조언과 충고는 절대적이었다.


출, 퇴근이 문제였다.

일산으로 출근을 하려면 아침 5시에는 기상해야 하는데 지하철역이 가깝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게다가 환승까지 해야 해서 몸이 너무나 힘들었다.


‘ 일산으로 집을 얻었어야 했어. ’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무조건 저녁에 일찍 자야 했다.

임신 7개월 무렵부터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등을 하려면 그전에 부지런히 일을 해놓아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에게 피해를 덜 줄 수 있다.

졸리지 않아도 저녁 9시가 되면 온 집안을 소등하고 눈을 감았다.

지후에게도 퇴근해서 들어올 때는 조용히 들어오고, 소리 내지 말고, 얌전히 자라고 부탁했다.

잠이 깨서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고


그러나 나는 정말 옆에서 기차가 지나가도, 내 동공에 레이저를 쏘아대도 모를 정도로 쓰러져서 잤다.

‘ 기절, 혼절 ’ 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잠만, 잠을, 오로지 자기 위해 태어난 동물처럼 잤다.

잠을 자기 위해 최적화된 사람처럼 오직 잠만을 갈구했다.

버스에서도 자고, 회사에서도 졸고, 점심시간에 밥 먹는 대신 작은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24시간을 잠만 자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리고 공복이면 입덧을 계속했다.

일하면서도 계속 에이스, 버터 코코넛 같은 비스킷을 물고 있었다.


“ 갑자기 웬 초딩 입맛이야? 살찌려고 작정했어? ” 대부분의 직원들은 말했고

출산을 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선배들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레모나 같은 비타민을 챙겨주는 선배

졸리면 휴게실 가서 조금 자고 오라고 내 일거리를 덜어가는 선배

담배 연기나 불쾌한 냄새가 나면 창문을 수시로 열고 환기를 해주는 선배

그들은 정말 귀신같이 내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 임신 ”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 임신 사실을

그리고 예측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이 걸었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회사는 여직원들의 임신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놓고 말을 하거나 퇴사를 권하지는 않지만

임신한 여사원이 계속 일을 하는 것은 동료들에게 민폐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사원들은 출산 무렵이나 임신 사실을 확인하면 퇴사를 하곤 했다.


지금 남아있는 3, 40대의 여자 선배들은 전사였다.

멘탈, 체력, 그리고 든든한 조력자를 구한 강하고 운 좋은 선배들이었다.

출산일이 다 돼서야 출산 휴가를 쓰고, 육아 휴직을 받고, 돌 무렵 복직을 했지만 엄마 직원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은 아기가 아프거나, 갑자기 도우미가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속 편히 일 할 수도 없었다.

그중 원탑은 경리과의 황 부장님이셨다.

황 부장님은 능력도 뛰어나고 인품도 좋아서 따르는 직원들이 많았다.

남녀를 떠나 그녀는 좋은 선배이자, 동료,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장님의 총애도 있었고,

곧 임원이 될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황 부장님이 출산 후 복직을 한 어느 날 아기띠를 업고 출근했다는 전설이 있다.

아기를 돌봐주던 친정엄마가 전날 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고

아침까지 아기를 돌봐 줄 사람을 찾지 못해서 꼭 출근을 해야 했던 부장님은 아기띠를 매고

기저귀, 분유병, 각종 아기 물품 등을 넣은 여행 캐리어를 들고, 기세 등등 출근하셨다고

경리과 부하 직원들이 부장님이 회의에 들어갔을 때 번갈아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였다고 들었다.


황 부장님 아기 돌잔치 때 부하 직원들이 돌 반지 사들고 모두 찾아가서

자신들의 자식이나 조카처럼 아기를 보고 기뻐했다 들었다.

마이크를 들고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다가 황 부장님이


“ 우리 아이는 친정 엄마가 키워주셨고, 회사에 이모, 삼촌들이 키워주셨어요. ”


직원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고 고맙다고 인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경리과 직원들은 모두가 서로를 살뜰하게 챙겼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에도 편하게 일을 했다.

경리과로 부서이동을 원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부서는 오직 경리과 하나였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경리과라는 부서의 특징

사장님의 총애를 받는 황 부장님이 곧 임원으로 승진할 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회사에 피해를 주거나 동료들에게 민폐를 주는 사건이라고 치부하는 직원이 있다면

황 부장님은 인사 고과에서 상당히 낮은 점수를 주셨고, 동료들은 그 직원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케이스를 여럿 봐왔다.

상사에게 찍힌 동료와 누가 친하게 지내겠는가? 당연히 그 직원은 타 부서로 이동을 했다.

황 부장님이 든든하게 지키는 경리과로 임신 중이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사원들은 이동하고 싶어 했다,

나도 원했지만 워낙 대기가 많아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바꿀 수 없으면 적응해야 했다.

나는 책상 위에 과자, 초콜릿, 사탕, 비타민 등을 바구니에 수북이 담아 놓았다.

동료들은 출출하면 내 자리에 와서 자연스레 입덧 억제제를 가져갔다.

가끔 고맙다고 말도 안 하는 얄미운 사원이 있어서 서랍 속에 숨겨놓아도 동료들은 미어캣 마냥 잘 찾아갔다.

지후는 언제 사 왔는지. 과자와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서 내일부터 아버지 차로 출근시켜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당분간 내 몸이 안 좋으니 차를 쓰기로 했다고

앞으로 출, 퇴근은 자신이 책임진다고 했다.

아버지 차를 절대 빌려 쓰지 않는 지후인데, 몹시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리는 음료수까지 사서 들고 갔다.

내 책상 위는 음료수와 먹을거리로 가득 찼다.

하나둘씩 모이다 직원들이 다 와서 먹기 시작했다.

“ 복권이 당첨됐냐? ” , “ 적금 탔냐? ”, “ 무슨 일이야?” 묻는 동료도 있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간식을 먹던 여고시절이 떠올랐다.

즐거웠다. 지금의 이 사람들과 일하고 얘기하고 일 하는 것이

내 배안의 아이 덕분에 지금의 웃음이 있는 것 같아 감사했다.

그렇게 2주 동안 지후는 나의 출, 퇴근길 기사가 돼 주었다.

심장소리는 크고 규칙적이었다.


‘ 7주 된 아기 심장 소리가 이렇게 활기차고 우렁차다니? ’ 모두 웃었다.

‘ 심장아, 뛰어 주어서 고마워. ’ 심장의 존재를 감사하게 느껴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검사 결과를 보고 출산 예정일이며 주의 사항을 알려주던 선생님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 어? 풍진 수치가 왜 이렇게 높지? ”

“ 선생님, 왜 이상이 있나요? ”

“ 산모 풍진 수치가 높아요. 풍진 주사 최근에 맞았어요? 아니면 풍진을 앓고 지나갔나? ”

“ 아, 그게 저희가 계획 임신이거든요. 그래서 임신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치료도 하고 풍진 예방 접종도 했어요. ”

“ 풍진 주사 언제 맞았어요? ”

“ 한 삼 개월 넘은 것 같은데요. ”

“ 저..... 산모님 풍진 수치가 높게 나왔어요.

원래 주사 맞고 3개월 이후면 임신이 가능한데 산모님 경우는 풍진 후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유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이도 어리고 하니 수술하고 금방 아이 다시 생길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시면 수술하러 오세요. “

“ 꼭 유산을 해야 하나요? 기형아나 뭐 건강이 안 좋은 거예요? ”

“ 백 프로는 아니지만 기형이나 다른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혹시나 아기를 배 안에서 키우다가 한참 후에 기형이 발견될 수도 있고,

그때는 수술받기도 힘들고, 산모 분 몸이 힘들어요.

나중에 다시 임신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고, 보통 이 정도의 수치면 대부분 유산을 권해요.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세요. “


의사는 진지하게 유산을 권유하고 있었다. 진찰실을 나오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 바보야. 바보, 바보 멍청이야. 신중하게 했어야지. 팔푼이야, 팔푼이 넌 엄마 될 자격도 없어. ‘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밥을 먹지 못해 입덧은 더 심해졌다.


‘ 이렇게 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 ’

나는 지후와 다른 병원에 예약을 했다.

시험관 아기를 성공하고 최첨단 기술과 기계를 가진 최신식 산부인과 전문 병원

전국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산부인과 의사가 운영하는 개인 병원

모두 두 곳을 예약하고 진료를 기다렸다.

한 달 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른다.

입덧은 점점 심해졌고, 간신히 입덧 억제 주사를 맞고, 수액을 맞으며 버텨 나갔다.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출산한 아이가 기형아 이기도 했고 사산아를 낳기도 했다.

잠에서 울면서 깨어나기도 했다.

내가 울면 지후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울다 세수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출근을 했다.


우리에게 희망의 얘기를 누군가가 해 줄 거라고 우리는 기다렸다.


기적도 희망도 없었다.

두 곳 모두 수술을 권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내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해서 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


“ 세희야, 너 밥은 먹었어? 잠은 잘 자? ”

“ 아니, 밥을 못 먹겠어. 잠도 자질 못해. 자다가 자꾸 악몽을 꾸고 , 눈물이 나와. 지금도 자꾸만 눈물이 나와. ”

“ 하아~~~, ” 민주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너 잘 생각해봐.

이제 겨우 두 달 지났어. 아기가 태어나려면 팔 개월 남은 건데.

너 남은 그 시간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데.

넌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

남은 기간 동안 네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맨날 우는 데 건강한 아이가 나오겠니?

만일 낳는다고 치자.

풍진으로 인한 기형은 외형적인 기형보다

성장 발육이 부진하거나 난청, 지능 저하, 이런 드러나지 않는 기형들이 많아.

아이를 키우면서 너는 많이 마음 조리고 살아가야 할 거야.

그 세월을 너는 그렇게 살아갈래? 니 나이도 어리고, 애기 주수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냥 유산하고 다음을 기약하자.

내가 만약 너라면 난 그렇게 할 거야. “


똘똘하고 영리하고 매정한 내 친구 민주

민주는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 그래, 맞아. 민주 말이 맞아.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


나는 어쩌면 민주의 ‘ 수술하자 ’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스스로 대답할 수 없어

민주의 입에서 ‘ 유산 ’이란 말이 나오길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는 눈물을 닦고, 더 이상은 울지 않았다.

“ 수술 하자. ” 지후에게 말하고 우리는 동네 산부인과에 토요일 수술 예약을 했다. 지후도 아무 말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 여전히 입덧과 어지러움은 심했다.

‘ 아기가 보내는 마지막 인사인가? ‘

‘ 나를 죽이지 말라달라는 부탁이자 항의 인가? ’

나는 아무 말없이 지후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다.


“ 잘 생각했어요. 나이도 어린데 아기 금방 생길 거예요. 걱정 말고 한 숨 자요. ”

‘ 무엇을 잘 생각했다는 거지? ’ 대답 대신 눈물이 흘렀다.

바지를 벗고, 산모용 치마를 입고,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벌렸다.


“ 하나, 둘 , 셋...... ” 다섯을 세기도 전에 잠이 쏟아졌고, 다른 침대에서 잠이 깼다.

지후의 부축을 받고 나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설렁탕 집이 보였다.

“ 배고파, 나 배고파. 저거 먹을래. ”

“ 그래, 들어가자. ”

우리는 설렁탕을 시키고, 기다렸다. 뜨거운 설렁탕이 뚝배기에 나왔다.

따듯한 국물이 맛있었다. 깍두기가 맛있었다.


“ 맛있네.” 나는 웃으며 지후를 바라봤다.

“ 그래, 맛있다. ” 지후가 웃었다.

“ 입덧이 사라지니까 배가 고프다. 아기가 없어진 게 정말 맞나 봐.

사람은 동물이 맞네. 나도 동물이고. “

나는 아이를 지우고 30분도 되지 않아 설렁탕에 밥을 말아먹는 동물이다.

엄마도 아니었고, 엄마도 아니다.

눈물 한 방울이 설렁탕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 방울, 세 방울 자꾸만 설렁탕이 싱거운 지 국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후가 보지 않게 얼른 눈물을 닦았다.

수술을 하니 입덧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어지러움도 메스꺼움도 일순간에 없어져버렸다.

내 배안의 아이도 모든 것들과 함께 없어졌다.


‘ 아가야, 나를 용서하지 말아라. 나를 용서하지 말아라. 나를 용서하지 말아라. ’


나는 설렁탕을 꾸역꾸역 다 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고 열이 났다.

한 밤 중에 나는 지후의 등에 업혀 응급실로 실려갔다.

한 달여를 먹지 못하다 급하게 먹은 설렁탕에 체하고 만 것이다.

사라진 아기가 자기를 죽이고, 설렁탕을 먹은 엄마에게 준 벌이라고 생각했다.


‘ 아기를 죽이고 설렁탕을 먹은 나를, 오늘을 기억해. 그래야 다시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거야. ‘



나는 그렇게 내 첫 아이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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