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예정된 후회라 할지라도

지후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예정된 후회라 할지라도


“ 가게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당장은 돈이 많이 들어와도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장담해?

600 명 중에 2,3명만 주는 추천서야. 안 아까워? 왜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해?

남들은 다 못 받아서 안달이야.

일단 원서만 내보자. 오늘까지 원서 마감이야. 시간 없어.

내가 일찍 퇴근하고 하고, 대전에 얼른 갔다 올게.

지금 출발하면 원서 접수할 수 있으니까, 추천서랑 필요한 서류만 나한테 줘. “

“ 아니야. 이게 내 운명인 것 같아. 내가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너무 막막해져.

이게 내 길인 것 같아. 고마운데, 그만 하자. “


“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 가게는 나이 들어서 해도 되고,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은 지금 아니면 못해.

내가 오빠랑 가족들 사이를 갈라놓는 게 아니고, 난 더 공부하는 게 맞다 고 생각해.

나 미국에서 유학하다 우리 집에 일 터져서 한국 오고

공부하던 거 다 포기한 일 지금 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아?

공부할 때 해야 해. 분명히 나중에 후회할 거야.

형부들도 오빠 취업하든, 대학원 가든 둘 중에 하는 게 좋을 거래.

서류들 준비해줘. 내가 알아서 다 할게. “


“ 내가 대학원 들어가면, 엄마, 아빠, 현우 다 힘들어져.

대전에 있든, 취업을 하게 되면 집안일 못해. 가게는 접어야 할 거야. 누가 우리를 신경 써주겠니?

그럼 우리 식구들은 뭐 먹고살아?

몇 년간 돈 열심히 벌고, 열심히 살다 보면 그때 또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고. ”


세희는 통화가 끝날 무렵, 흐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담배가 피고 싶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 괜찮아. 괜찮아. 잘 될 거야. ’ 가슴속 깊이 연기가 긴 한숨과 함께 나왔다.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지도 교수님은 대전에 있는 기술 대학원 추천서를 써 주셨다.

교수님의 추천서는 합격증과 효력이 같다.

대학원 진학보단 차라리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같이 가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셨다.


“ 지후군, 자네 대학교 졸업하면 꼭 대학원 가야 하네,

졸업하고 미국에 내가 근무하는 연구소로 데려가고 싶은데.

동기들처럼 대기업 취업도 좋지만, 자네는 더 공부해서 교수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자네는 학자가 돼야 하네. “


2학년 무렵부터 지도 교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잠도 자지 못했었다.

동기들 선, 후배들 모두 부러워했다.

까탈스러운 교수님이 그런 제안을 했다면 이제 공학자로서의 길은 열리는 거라고

“ 형하고 친하게 지내야겠다. ”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공학자가 되어 해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다.

세희는 대학원이든 미국의 연구소든 어디든 가라고 자기 일인 것 마냥 좋아했다.

연애는 멀리서 떨어져서 해도 된다고, 우리가 인연이라면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교수님의 그 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몰랐으면 몰랐지. 알고는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아버지는 퇴사하셨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더는 근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날카로운 아버지와의 싸움이 잦아지고, 강도도 심해져서 힘들어하셨다.

퇴직금 8천만 원을 받고, 아버지는 회사를 나오셨다.

계속 회사를 다니면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고,

엄마도 퇴사에 찬성하셨다.


‘ 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 ’ 어머니는 힘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사장의 학대 대상이었다.

직원들이 보든 말든, 아버지는 사장의 화풀이 대상 직원이었다.

유능했지만 왠지 미운 직원이었다.

아버지가 낸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기계들은 모두 사장의 것이었고, 회사의 이익이 늘어가면서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사장은 아버지가 필요했지만 그의 재능을 시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절대로 아버지가 회사에 사표를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든 가장들이 그렇듯 그들은 회사에서 해고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아버지는 훌륭한 엔지니어였다.

대학 졸업자는 아니지만, 고졸 출신 아버지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을 사장을 알고 있었다.

공대 대학원을 다니는 그의 아들들은 각종 대회에 기계를 출품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내 아버지의 도움을 받곤 했다.

사장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아닌 나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

아버지는 필요하지만 아들들의 존경을 뺏어간 직원이었다.


그래서 유독 아버지에게 모질 게 굴었는지 모른다.

그 수모들을 겪고도 사표를 쓰지 않는 아버지를 얕잡아 봤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퇴사할 수 없었다.

편두통이 심하고, 위경련이 일어나 밤잠을 설쳤어도 아버지는 다음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했다.

억척인 아내도 열심히 일을 다니고 있었고,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둘이나 있어서

퇴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사장의 아들들이 찾아와 물어보고, 같이 연구하고, 하나의 기계를 발명해 각종 수상들을 했을 때 본인의 일처럼 기쁘고 흐뭇했다고 하셨다. 마치 대학생이 된 듯했다고 하셨다.


‘ 나도 대학에 갔었다면 저 아이들처럼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했을 거야. 저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 ’

술에 취한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아버지의 그 말이 너무나 슬펐다.

대학생이 되고 싶어 했던 한 남자가 광부가 되어 가족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살아가야 했다.

과수원에서는 농부가 돼야 했고, 서울로 들어와서는 노동자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가장이 되었다.

두 아이들과 아내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을 내가 이루고 싶었다.

물론 아버지의 꿈만을 위하여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가 재미있었고, 특히나 남들은 어렵다고 포기하는 수학, 물리학, 전기학 등은 원탑이었다.

“ 아버지, 퇴직금으로 조그만 가게를 해서 돈을 버시는 건 어떠세요?

독서실을 오픈하는 거예요. 제가 수학이나 과학은 자신 있으니 개인이나 그룹과외도 하고

질문이 있는 학생들은 제가 지도도 해주고 인테리어를 잘해놓으면

아버지가 받으셨던 월급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수업이 없는 날이나, 수업 끝나는 데로 와서 일 할게요.

현우도 취업을 못하고 거의 6개월 정도 놀고 있으니 야간은 현우가 일하면 될 것 같고

제가 없는 동안은 엄마랑 아버지가 번갈아 일하고 관리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어떠세요? “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소일거리를 드리기 위한 제안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찬성하셨고, 고마워하셨다.

우리 식구들은 독서실 개업에 모든 신경을 썼다.

아버지의 퇴직금 전부가 들어갔고, 우리 가족의 생사가 걸려있었다.


독서실을 열고 두 달도 되지 않아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우리 독서실에 다니는 중, 고등학생들의 성적이 올라가자

학생들, 부모들 모두 찾아와 등록을 원했고, 대기자만도 백 명이 넘어갔다.

매일 밤 온 식구가 모여 앉자 매출을 정산할 때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1년 여가 지나자 월세를 내고 운영하던 가게를 사게 되었고

다시 1년 여가 지나자 옆 사무실까지 매입해서 독서실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계속 늘어만 갔다.


부모님은 무척 좋아하셨고, 더 이상 싸우지도 않으셨다.

“ 화목 ”이라는 단어가 우리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와 좋고, 두 분이 싸우지 않아 좋고, 현우가 일을 해서 좋았다.

독서실의 한 달 수입은 동기들의 연봉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잠이 들 때면 어떤 허전함이 들 곤 했다.

특히나 동기들이나 선, 후배를 만나면 그 허기는 더욱 심했다.

그 기분을 굳이 가족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웃는 모습이 그저 좋았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대학원 진학과 대기업에 취업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고민하는 나에게 조심스레 독서실을 계속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 네 친구들 연봉보다 지금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직장 다니는 게 쉽지 않아.

회사 생활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아버지를 봐.

일 다니시면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우울증도 심해지셨고 몸도 피곤하고.

젊어 장사해서 돈 버는 것도 괜찮아.

현우도 공고 나와서 자격증도 없고, 다닐 직장도 없고, 걔가 어디 들어가서 남의 비위 맞추고 붙어 있을

아이니?

당장 생활비며 연금에 보험금, 아파트 관리비, 돈 들어갈 일이 산더미인데

아버지 퇴직금은 이미 가게에 다 들어가 있고

네가 손을 떼면 그 돈 날릴 게 뻔한데.

그냥 계속하는 게 어떠니? 가게가 두 개니까 하나는 너 주고, 하나는 현우 주고

나중에 제일 좋은 건 다 너 줄게.

지금은 그래도 나중에 네가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 살 거야. “


엄마와 아버지는 강요는 안 하셨지만 마음이 무거워만 갔다.

부모님의 말도 일리가 있었고, 이제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은 장남인 나였다.

내 살길만 찾아 떠나는 것은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오직 세희만이 반대하고 나섰다.

대학원이든 취업이든 둘 중 하나 결정하라고 가게를 계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대했다.

오히려 미국에 교수님을 따라가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부모님이랑 현우는 나중에 챙겨도 늦지 않을 거라고, 지금은 일단 본인 인생만 보라고 했다.

‘ 세희는 나랑 헤어져도 상관없나 보네. ’


서운한 마음도 들긴 했지만, 그녀가 어른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가 나를 가장 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네, 그렇게 할게요. ” 나는 부모님의 제안을 수락했다.

‘ 예정된 후회를 할 지라도 지금은 지금 당장은 이 길을 가야 한다. ‘


원서 마감 시간을 그렇게 넘겨버렸다.

6시를 향해 가는 시곗바늘을 나는 계속 쳐다봤다.

원운동을 하는 초침 바늘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시계가 6시를 넘기자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단 느낌이 들었다.

세희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나에게 왔다.

나의 얘기를 다 들은 세희는 그 이후 더 이상 대학원이며 취업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그저 “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란 말만 했다.

“ 그래, 잘 될 거야. 잘 풀릴 거야. 마음이 착한 사람은 하늘이 길을 열어주게 마련이야. ”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니, 결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 나는 잘 살 수 있어. 그래서 우리 식구 모두 다 잘 살 거야. 지금의 이 선택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

나는 주문을 걸 듯 나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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