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가자니 왠지 꺼림칙했다.
‘ 가서 안 좋단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차라리 가지 말까? ’
아침부터 뒤숭숭했다. ‘ 그래도 가보자. 혹시 모르니까. ’
지후의 결혼식 날이 잡히고, 용한 점쟁이를 안다는 아래층 여자와 아이들 궁합을 보러 갔다.
아들과 며느리 될 아이의 사주를 내밀었다.
“ 아들이 참 착하네, 속도 안 썩이고 잘 컸겠어. 머리도 좋고 계속 공부하고 있죠? ”
점쟁이는 자기 아들인 냥 씩 웃으며 말했다.
잠시 뒤 점쟁이의 표정이 경직됐다.
“ 허허~~~ 며느리 될 아이의 기가 셉니다.
여자치고 센 편이에요. 자수성가할 타입이네.
아들이 이 여자를 따라가는 사주야.
며느리가 부모복이 없어서 초년고생은 하지만, 중년 이후부터 잘 살 거예요.
어디에 데려다 놔도 잘 살아갈 사람이야.
돈도 제법 모으고, 하고자 하는 건 다 할 거야. 대신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도 세지.
말리지 말고, 하겠다고 하는 거 있으면 냅 둬요. 알아서 둘이 잘 살 거야. “
“ 도사님, 며느리 될 아이랑 우리 가족들 궁합도 한번 봐주세요.”
나는 남편과 현우, 내 사주를 내밀었다.
“ 둘째는 속 많이 썩 엮겠네.
둘째 아들이랑 며느리 잘 붙여놔.
시동생 기운을 여자가 붇 돋아 줄 거야.
누나처럼 시동생을 잘 데리고 살 테니까 신혼집을 본가랑 가까이 얻어줘.
그리고 가능하면 며느리랑 친정이랑 떨어뜨려놔.
친정이랑 붙여 놔야 좋은데, 그럼 자네 집으로 돈이 안 들어와.
시아버지랑도 그럭저럭 괜찮고.
그런데 어쩌지? 다 좋은데 자네랑 며느리가 상극이야.
며느리도 세지만 자네도 세거든. 둘이 부딪칠게 보이네.
괜찮겠어? 그쪽 며느리 고분고분 순종하는 여자 아니야.
아들도 자네 말고 며느리 따라갈 거고, 둘 궁합은 평범한데 자네랑 며느리랑 사주가 조금 걸리네. “
‘ 아차 ’ 싶었다. 순식간이었지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나 혼자도 아니고 아랫집 여자랑 이런 얘기를 같이 듣다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기까지 했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닐 입 싼 여자도 아니고, 아파트 입주 때부터 같이 지낸 오랜 사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 어떻게? 지후 엄마, 이 결혼시킬 거야? ” 아래층 여자는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 이 점쟁이 용한 거 맞아? ” 괜히 인상을 쓰고 말했다.
“ 글쎄, 나도 잘 몰라. 엉터리 점쟁이 일 수도 있지. 내가 용하다는 다른 사람 알아볼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
그 집 아이들 대학 진학, 혼사가 있을 때, 남편 아플 때도 그 점쟁이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래층 여자.
그 여자는 자기가 미안한지 다른 곳을 가보자 했다.
오는 길에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자고 약속했었지만 밥맛이 뚝 떨어졌다.
‘ 내일 다른 곳으로 가보자. 다르게 말할 수도 있으니. ’
입맛이 없어서, 누른밥을 먹고 자려고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속이 얹혔는지 채 끼도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총기 있어 보였고, 처음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살갑게 얘기하는 아이였다.
현우가 잘 따르는 것 같았고, 남편도 괜찮은 듯했다.
“ 껄껄껄 ”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후가 정말 좋아하고, 결혼까지 하고 싶다고 말한 여자애였다.
지후는 여태 것 여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도 없었고, 소개한 적도 없었다.
조용히 만나고, 조용히 헤어지는 아이 었다.
그런데 지후는 이 아이를 만나고 많은 것이 변했다.
잘 웃고, 잘 말하고,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지후를 변하게 한 그 아이가 보고 싶었고, 마침내 얼굴을 보자 그 궁금증이 풀렸다.
그 이후로 저녁도 먹으러 자주 놀러 오곤 했다.
그 아이는 동생이 없어서인지 지후 없이도 현우랑 슈퍼도 가고. 커피도 마시러 가고, 누나처럼 잘 챙겼다.
현우도 그 아이를 잘 따랐다.
둘이 있어도 살갑게 “ 어머니, 어머니 ” 하면서 얘기도 잘하고, 손도 야무지고, 괜찮은 아이였다.
‘ 그런데, 뭐라고? 나와 지후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다고? 그건 안되지, 절대 안 되지. ’
‘ 망할 놈의 여편네, 괜히 거기를 가자고 해서. ’ 속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누워있지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했다.
분주히 서서 집안을 걸어 다녔다.
지후는 방에 없었다. 늦는다고 하더니.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 세희랑 같이 있나 보네. ’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안 들어와? 너 세희랑 있니? 결혼식 아직 올리기 전이야.
늦게 다니지 말고 어서 들어와. “
“ 어, 알았어. ” 지후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 빨리 내일이 와서 다른 점쟁이를 만나러 가야겠다. ’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이 스님은 굿도 하라는 소리 안 하고, 돈도 밝히지 않는 분 이래.
내가 전화번호 알려 줄 테니 가봐. 오늘은 내가 같이 가주 질 못할 것 같아. “
아랫집 여자는 껄끄러운지 전화번호만 알려주었다.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길음으로 향했다.
마음이 초조했다. 다시 또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심장이 떨렸다.
‘ 설마 아닐 거야, 어제 그 점쟁이는 엉터리일 거야. ’ 마음을 다잡고 방문을 열었다.
‘ 이게 웬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인가? ’
어제 그 점쟁이랑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랑 며느리 사이의 굿을 하라는 것이었다.
지후랑 그 아이는 떨어지지 않을 테니 며느리와 나 사이의 살을 풀어주는 굿을 하는 게 좋을 거란다.
부적은 안 통할 거고, 그 아이의 기운을 눌러주는 이름을 받아왔다.
이제부터 새 이름을 부르고, 쓰라고 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미신을 믿는 한심한 여편네 취급을 했다.
‘ 몰래 굿을 할까? 아니야, 지후랑 그 아이를 떨어뜨려야겠다.
타고난 성격이란 게 있는데 그까짓 이름으로 어떻게 눌러지겠어?
선봐서 다른 좋은 아이 찾아 결혼시키면 되지, 5년이 넘게 연애했는데 개들이 쉽게 헤어질까?
아니야, 지후는 내 말을 잘 들을 거야. 영 마음이 찝찝하다. ‘
“ 지후야, 잠깐 얘기 좀 하자.
엄마가 어제, 오늘 용하다는 점 집에 가서 너랑 세희 궁합을 보고 왔는데
너네 결혼 안 하는 게 좋겠다는데. 나도 안 했으면 좋겠다.
너랑 너무 안 맞아서 네가 죽을 수도 있고, 불구자가 될 수도 있데.
결국엔 이혼할 거라고. 같이 살 수 있는 사이가 아니래.
너 잘 생각해봐. 나는 이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
지후는 무척이나 놀란 듯 보였다.
“ 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 밤새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잠을 못 잔 이는 나와 지후 둘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지후는 아무 말이 없었다.
“ 엄마, 나 결혼할래. 세희랑 결혼할래.
5년 동안 연애하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 이런 애를 만날 자신도 없어.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때 해결하면 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질 자신이 없네.
반대하지 말아 줘요. 그리고 그 사람들 말 믿고, 헤어지는 거 웃겨. “
지후는 단호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 뭐가 웃겨? 이놈아, 그 놈팡이 말이 맞았네. 나를 두고 그 아이를 선택한다더니. ’
갑자기 지후에게 화가 솟구쳤다.
“ 세희는 이번 일 몰랐으면 좋겠어요. ”
“ 그래 , 알았다. ” 나도 지후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지후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밥을 잘 먹지도 않았고, 얘기도 하지 않고, 웃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지후랑 말을 하지 않았다.
지후를 이해되면서도 나를 거역하는 것 같아 순간순간 노여움이 올라왔다.
지후의 얼굴이 까칠한 것이 본인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듯했다.
남편은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그냥 결혼시키라고 했다.
‘ 그래, 내가 왜 그 사람들 말을 믿어? 그냥 시키자. 지들 인생이니까 잘 살겠지.
내가 어떻게 키운 내 아들인데. 그 아이에게 뺏길라고,
젊을 때 헤어지고 나면 죽을 것 같아도, 각자 결혼 잘하고 아들, 딸 낳고 잘 살아간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지후도 나중에 그때 결혼을 말려주어서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 그래 맞아. 그럴 수도 있지. ‘
나는 지후와 내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워 사흘 밤을 설쳤다.
“ 세희야, 오늘 퇴근하고 나 좀 볼까? 지후는 몰랐으면 좋겠는데. ”
“ 네,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 7시 좀 넘을 것 같아요. ”
“ 그래 집 말고 도착할 때쯤 전화해. 내가 나갈게. ”
“ 네, 알겠습니다. 도착해서 전화드릴게요. ”
만나서 어떻게 타일러야 그 아이의 마음도 덜 상하고, 내 말에도 따를지 생각하고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녁을 차리고, 상을 치우고 샤워를 했다.
세희의 도착 전화에 서둘러 사거리에 있는 카페로 나갔다.
“ 세희야.
내가 너희들 궁합을 봤는데. 너희 궁합이 너무 안 좋단다.
지후가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될 수도 있단다. 결국 이혼도 할 거고
여하튼 둘이 같이는 못 사는 사주라는데. 지후는 하겠다고 하는구나.
원래 그 아이가 모질지 못하고, 정이 있잖니?
나는 안 했으면 한다. 목숨이 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너도 지후도 둘 다 안 좋을 것 같아.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다. “
“ 저는 하고 싶은데요. 종교도 없고, 그런 거 안 믿어요. ”
세희는 몹시 놀란 것 같았지만 차분해지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한 참을 서로 말이 없다 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어머님, 저희 5년 넘게 연애하면서 싸운 적이 거의 없어요.
둘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이렇게 잘 통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어요.
서로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는 쉽지 않아요.
혹시나 아버지가 없다고, 제 친정이 든든하지 못해서 그러신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없어도 여태 것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거예요.
두 분께 잘할 거고, 현우도 동생처럼 잘 보살필게요.
저를 믿어주시고, 허락해주세요.
부모님처럼 잘 섬기고, 좋은 며느리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
“ 그래, 알았다. 며칠만 더 생각해보자. 그리고 결정하자. 오늘 만난 거 지후는 몰랐으면 좋겠구나.
“ 네 알겠습니다. ” 세희는 말이 없었다.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 그랬구나. 이런 아이였어. 그래서 이토록 이 아이를 좋아했구나. ’
지후가 왜 이 아이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좋아하는지 이해가 갔다.
“ 엄마, 세희는 나보다 어린데 꼭 누나 같아. 막내라고 하는데, 나보다 더 철이 들었어.
처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정색하고 말하더라고.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랑 언니네서 같이 산다고.
친오빠가 아닌 형부랑 살면 자기는 생활비도 내야 하고, 살림도 도와야 하고, 조카들도 돌 봐야 한데.
그래야 언니도 엄마도 형부랑 시댁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데.
세희는 학비도 자기가 벌어서 내고, 주말에도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도 매달 조금씩 보태.
큰돈은 아니어도 매달 조금씩 언니 통장으로 보내.
그렇게 살아도 식구들이 사이가 좋아. 다들 재미있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게 느껴져.
전에 고생한 얘기며, 현재 살아가는 상황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들 덤덤하게 얘기하더라.
보통 사귀고 싶은 상대한테는 그런 거 다 숨기잖아. 그런데 세희는 그런 게 없었어.
자기는 나를 좋아하고, 사귀고 싶은데. 내가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했으면 좋겠데.
지금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좋으면 그때 연애를 시작 하제. “
나는 그때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
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는 없었거든. 정신이 아득해졌어.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들더라. ' 얘를 놓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아이는 다시는 못 만나겠구나. '
말 한 그대로야. 세희는 변함이 없어. 한결같아. 나는 이 아이랑 결혼하고 싶어. “
세희는 과장됨이 없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으며 담백했다. 맏딸처럼 믿음이 갔다.
‘ 이런 딸아이가 있으면 의지가 되겠구나. ’ 기분마저 들었고
‘ 왜 나는 저렇게 당당하게 살지 못했을까? ’ 하는 묘한 열패감 마저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이 아이로 인해 조용하고 잠잠했던 집이 생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 상극이면 오히려 통한다는 말도 잊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