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항복의 사인은 이미 보냈다
세희 이야기
항복의 사인은 이미 보냈다.
“ 꼭 그렇게 이 옷, 저 옷 예복이라는 그것들을 모두 사야만 해? 도저히 이해가 안가.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가게에만 있는데 왜 그런 비싼 양복들이 필요해?
내 형편 빤히 알면서. 그 돈 벌려면 모으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
서러웠다. 나의 맘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맘에 드는 옷을, 비싼 옷을 척척~~ 골라대는 지후가 놀랍기도 하고 너무 야속했다.
새벽 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고, 야근을 하고, 주말이면 과외를 하고
그렇게 벌어서 모은 피 같은 돈을 떡볶이 사먹듯, 지갑에서 쉽게 꺼내야 했다.
“ 결혼 준비할 때는 원래 싸움이 잘 일어난다.
따지지 말고,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눈치 보게 하지 말고 다 사주고 해 줘라.
그러다 혼사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너도 네 마음대로 안 되면 무섭게 달려드는 그 성질 좀 죽여야 해. “
엄마는 전화로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옆에서 한 숨을 쉬곤 나를 타일렀다.
‘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
“ 처음이자 마지막인 장남의 결혼, 좋은 것만 주고받고 싶다. ”
시어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고, 우리 집은 내가 막내지만
그 집은 개혼이라 남들 시선이 있으니 할 건 다해야 한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초호화 혼수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장만하고 싶었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사고, 살면서 살림을 늘리는 재미도 있으니까
형부와 언니들은 모자라면 보태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신세는 지고 싶지 않았다.
지후는 양복이며 코트, 한복, 와이셔츠, 넥타이 모두 최고의 것들로만 골랐다.
백화점의 점장과 직원들은 모두 우리에게 굽신거렸고, 그는 그것을 즐기는 듯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지후는 항상 브랜드 옷만 입었다.
식구들 모두 집에 없는 틈을 타 놀러 가 보면, 그렇게 잘 사는 집도 아닌 그저 평범한 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어머니는 지후에게 항상 좋은 옷을 입히셨다 했다.
철마다 백화점에서 신상품이며, 가장 좋은 옷을 직접 골라 입혔다고 하셨다.
대학생일 때도 지금도 그는 엄마가 사 온 옷을 입는다.
과 동기들과 선, 후배, 친구들,주변 사람들은 농담으로 “부르주아, 부르주아 ”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 일단 옷은 잘 입고 다녀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아.
좋은 옷은 감도 좋아서 오래 입고 질리지도 않아.
너도 정장도 좀 입고, 잘 입고 다녀. 맨날 청바지에 티셔츠 왜 자꾸 그런 옷들만 입어?
주말에 나랑 옷 사러 가자. 내가 사줄게. “
“ 오빠는 옷보다는 브랜드를, 그 옷을 입는 본인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난 그런 옷 입을 필요 없는데. “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생일이나 기념일, 받아야 할 이유가 아니면 선물은 받지 않았다.
특히나 옷 선물은 받으면 기분이 그 닥 좋질 않았다.
그의 취향과 선택에 나를 맞추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나의 취향도 인정하라고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자고 말하면 “ 알았다 ” 고 했다.
5년여의 연애기간 동안 크고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헤어질 정도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 정도의 남자면 괜찮았다. 지후는 약지 못한 남자였고, 의리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건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사라지고 온전히 “품성” 만 남는다는 것을 나는 뼈속 깊이
인지하고 있었다.
빈털터리로 나와 엄마만 남겨지자 2년여의 연애 기간이 없었던 것처럼
“ 헤어지자. 너는 아무래도 결혼 상대는 안 되는 것 같아. ” 하며 일방적인 이별을 선언한 그놈이랑은 달랐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많은 남자.
나도 잘난 것은 없다 생각했으며, 서로 보완해 나가면 잘 살아 나갈 수 있고
책임감 강한 가장, 다정한 아빠가 될 거란 확신이 그를 배우자로 선택한 이유였다.
그런데 혼수, 예복, 예단, 예물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 더 이상은 “ 그와 나” 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취향은 부모님의 취향이었고, 집안의 취향이었다. 그에게처럼 따져 물을 수가 없었다.
지후도 그의 부모님의 말에 토를 달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 일단 하자는 데로 하고, 결혼해서 내가 다 채워줄게. ”
“ 말이 돼? 그게? 아니, 왜 그런 말을 못 해? 우리 결혼이잖아. 내 형편도 다 알 거고
우리 일인데 우리가 결정해야지. 왜 어머님이 시키는 데로 해야 해? “
“ 일단 그냥 해, 그래 봤자 너 좋을 것 없어. 내가 돈 모아놓은 거 있으니까 좀 보태서 준비하자. ”
“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왜, 왜, 왜? ”
밤마다 전화를 하고, 울고 불고, 싸우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지후도 이제 지쳐 가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제발 좀 그만하라고, 그냥 시댁에서 하자고 하는 데로 따르라고
나에게 사정사정하다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서야혼수 문제는 끝이났다.
복병은 반상기와 이불, 예단이 들어가는 날이었다.
“ 결혼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과 잘 살고, 시부모님께 잘 하겠습니다. ”
( 예비 며느리가 시부모님께 정성스레 쓴 손 편지는 후한 점수를 받는다는 친구의 충고에 급하게 작성)
라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지후와 나는 시댁으로 향했다.
사철 이불과 반상기, 은수저세트 해야 한다는 건 다 샀으므로
짐이 한 가득이였고, 나는 기세등등했다.
시부모님은 침대 이불세트까지 다 마련했는 지라 무척이나 흡족해하셨다.
저녁식사후
시아버지는 모임이 있다고 외출하시고
그도 친구들의 갑작스런 호출로 나의 양해를 받고 나가게 되었다.
시어머님과 둘이 있어도 그다지 불편한 사이는 아닌지라 같이 저녁상을 치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
“ 결혼식 당일에 엄마가 혼자 혼주석에 앉을텐데.
작은 아빠나 엄마들이 왜 혼자 앉아 있냐고 분명히 물어 볼 것 같아서 내가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혼했다고 하면 분명히 왜 이혼했냐고 이것저것 물어볼테고
귀찮고, 말 나올게 분명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자.
그리고 내가 지후랑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태환이랑 태주, 그 집 며느리들 다 명문대 출신인데
지후 대학교 합격했다고 했을 때도 왜 sky 못갔냐고 얼마나 내 속을 뒤집었는지?....
내가 아주 그 때 생각을 하면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명절이나 제사 때만 보는 사이니까, 그 집 며느리들도 별 말 없는 아이들이니까 괜찮을 꺼야. “
“ 네, 알겠습니다. ”
' 어머님은 괜찮지 않을 테지만 나는 괜찮지않아요, ' 나는 나에게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빠랑은 왕래도 없고, 사이도 좋지 않으니 죽은 사람이 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출신 대학을 속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서울 소재의 대학은 아니었지만 지방의 괜찮은 대학이었고 취업도 잘 해서 꿀릴 것도 없었다.
'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분명 친척들끼리도 사이도 좋고, 잘 지낸다고 했는데.‘
‘ 아~ 명절이나 제사 차례때 나는 그냥 암말도 안해야겠다.
거짓말 하느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는게 낫지.
말이 많아지면 실수 할 게 빤하고, 그냥 말없고, 수더분한 며느리로 있어야 겠다. ‘
“ 잘 하고 들어갔어? ”
“ 응, 잘 들어왔지. 그런데 어머님이 아빠도 죽은 걸로 하고, 대학도 오빠랑 같은 대학 출신으로 말 하라 하더라.
작은 아버지댁들이랑 친하다고 하지 않았어? “
“ 친한데, 그냥 말들이 많아, 특히나 작은 아버지들이 유별나셔.
작은 엄마들은 안 그러시는데. 나 대학입학 할 때도 엄마가 많이 속상해하셨어.
그러니까 그냥 하자고 하는데로 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시는 거야. “
“ 그래, 알았어. ”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 명절이나 차례, 제사 모일 때는 다 모이고 잘 지내면서
왜 위로하고, 이해해줘야 할 친척들이 그렇게 얘기하지?
그럼 남보다 더 못한 관계 아닌가? 그런 걸 친한 가족 관계라고 말 할 수 있나? ‘
남한테 말 못하는 흉금이나 상처도 드러내고 맘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사이가 가족관계 아닌가? ‘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물어볼 수 없는 질문들이 늘어만 갔다.
‘ 그래 결혼을 안 할 것도 아닌데. 할 꺼면, 이왕 할 거라면 기분 좋게 끝내 버리자.
원래 준비하다가 많이 들 싸운다고 하더라. 이번만 참으면 되겠지. ‘
‘ 이름도 바꾼 마당에 이 까짓게 뭐가 대수라고? ’
그렇게 나는 “나”를 설득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피로해진 “나” 는 회유하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27년간 부르고, 불린 내 이름 “세희”를 단숨에 “은서”로 갈아치운 것은
혼인 성사를 위한 “복종”이었고, 나는 이미 항복의 “싸인”을 보내버렸다.
그렇게 백기를 든 이 마당에, 고집스럽게 내 주장을 내세운다고?
‘ 저건 하고, 이건 못하고 하면 하고, 말면 말지. 너무 우습지.
모순이다. 모순, 모순 덩어리. 우스꽝 스럽다. 우스꽝 스러워. 그냥 가자. 가. 가버리자. ’
“ yes ”는 평지풍파를 잠잠하게, 전쟁을 종식시키는 마력의 단어였다.
결혼 준비는 술술~~ 바람을 탄 연처럼 날아갔다.
지후도 더 이상 피곤해하지 않고 다시 웃음을 찾아갔다.
그러나 나는 생기를 잃어갔고, 잃은 척하지 않아야 했다.
결혼의 과정들이 어서 끝나기를, 온전한 그와 나만의 삶이 시작되길 바랬다.
‘ 결혼하면 그때부터 내 생각대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 나는 다짐했다.
“ 아침 10시에 예매한 영화를 보고, 점심으로 분식, 디저트는 커피랑 케이크
쇼핑 후 , 저녁은 돼지갈비, 디저트는 전통 찻집 그리고 귀가. “
“ 야, 너 참 신기하다. 너는 무슨 데이트 코스 조사하니? 아님 누가 계획을 다 짜주니?
어떻게 이렇게 매번 다른 코스를 짜? 점심, 저녁 , 심지어 디저트까지 다?
다 혼자 계획하는 거야? 아님 누가 도와줘? 무슨 책이 있니? “
“ 왜, 불만 있어?”
“ 아니, 불만이 아니라 나는 편하지. 네가 하자는 데로 하면 되니까.
그냥 너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해서 그래. 신기하다. 신기해. “
“ 뭐? 빈정거리는 거야? 뭐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생각나.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다하고 살 거야. ”
지후는 아침에 만나면 그날의 데이트 코스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나를 무척이나 신기하게 바라봤다.
자기는 시키는 데로, 남들 하는 데로 그냥 따라가며 살았는데
“ 너는 어쩜 이리 “ 본인의 욕구 ” 가 잘 떠오르니? “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억지나 무리가 아닌 이상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그의 거절은 타당해서 나도 금방 수긍했다.
대부분 내가 하자는 데로 따라 주었고,
내가 좋아하면 친오빠가 어린 여동생 보듯이 흐뭇해했다.
“ 나는 오빠랑 손 잡고 걸어가면 꼭 엄마, 아빠 찾아 길을 떠나는 오누이 같더라.
무슨 6.25 전쟁 통의 사이좋은 남매 말이야. ”
“ 그런 소리 하지 마. 너랑 내가 왜 오누이야. 지금부터 오누이로 지낼래? ”
“ 아니, 손잡고 걸을 때 그런 기분이 든다는 소리야. ”
걸어 다니길 좋아하는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손을 잡고 걸어 다닌 “그”였다.
속속들이 그와 관련된 변수들이 등장 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와 결혼을 하면 받아들여야 할 그의 일부분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조금 변했을 뿐이었다.
‘ 아니, 그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한 “그”가 아녔을 뿐이었다. ’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 결혼을 하면 “나만의 그” 와 “강 씨 집안의 그” 가 함께 살아야겠지?
그는 지금처럼 나의 지지자가 되어줄까? ‘
나는 그의 집안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을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
그제야 조금씩 불안해지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웨딩드레스를 입고 도망치는 여자들의 장면은 호기심을 자극하는볼거리라고
달리는 그녀들의 모습이 그저 예뻐서 나오는 거라고
진짜로 자기 결혼식에서 그런 여자들이 있다면 그건 “ 바보, 모지리 ” 들이라고
하지만 그녀들은 ‘마지막 기회’ 란 걸 잡은 용기 있는 여자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