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할아버지 근조등은 온 동네를 따듯하게 비추고
"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어떻게? 안돼요.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아버지 안돼요. "
" 영감~ 안돼. 안돼, 날 두고 이렇게 갑자기 가면 안돼. "
" 할아버지, 할아버지 "
경화네 집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울음소리에
하나 둘 셋 경화네 집 근처 집들의 불이 켜지더니 이윽고 온 동네 불이 켜졌다.
경화네 식구들 우는 소리에 온 동네는 새벽잠이 깨어버렸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안 돼.
잘 가시라고 인사도 못했는데. 한 번 안아드리지도 못했는데. 윽윽윽 ~ "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울기 시작했다.
경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야, 너 자다가 왜 울어? "
" 할아버지가 경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우리 할아버지도 아니고, 경화네 할아버진데 왜 네가 울어? "
" 악~ 할아버지 할아버지 "
서럽게 우는 소리에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 현아야, 괜찮아. 할아버지 아무래도 자다가 돌아가신 것 같아.
편하게 고통스럽지 않게 돌아가셨을 거야. "
" 이제 할아버지 다시는 못 보잖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잖아.
나, 할아버지한테 갈래. 할아버지 보고 싶어. "
" 안돼. 현아야. 지금은 안돼. 지금 경화네 정신없어.
정리가 되면 할아버지 보러 가자.
일단 좀 자. 엄마가 다시 깨워줄게. "
기다란 관이 경화 네로 들어가고
할아버지는 한복을 곱게 입고 관 속에 누우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화네 집을 찾아왔다.
동네 사람들 모두 경화네 집으로 들어갔고, 눈이 벌게져서 집을 나왔다.
경화네 식구들 모두 검은색 한복과 양복을 입고
눈이 부은 채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엄마는 경화 네로 가서 요리를 하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나는 엄마를 따라 경화네 집에 계속 있었지만
어른들은 병풍 뒤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관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랑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데
아저씨가 할아버지 주위를 지키고 있어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울고 있는 경화 옆으로 가서 할아버지 대신 경화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이 되자
경화네 집에 근조등이 걸렸다.
근조등은 할아버지처럼 우리 동네의 어둠을 외롭게 밝혀주고 있었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동네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해가 환히 떠있는 오후
경화네 집에서 할아버지의 관이 빨간 천으로 뒤덮여 나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어린아이는 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어서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경화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경화, 선화, 경수
모두 목 놓아 우는 것을 옥상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의 관이 대문을 나가고, 약국을 지나, 동네를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작별인사라고
“ 할아버지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하늘에 가셔서 이제 편히 쉬세요.
나는 한일 약국에는 다시 가지 않을 거예요.
경화가 아무리 내 속을 긁어도 조금 참아볼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시지 말고 하늘나라로 가세요. “
“ 현아야, 착하게 잘 살아라.
엄마 말씀 잘 듣고, 엄마 약 심부름도 잘하고,
지금처럼 착하게 잘 자라라. “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한 참 뒤 할아버지의 가게는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김 약국이 문을 열었다.
한일 약국, 김 약국 둘 다 가지 않았다.
한참이나 멀어도 학교 옆 약국으로 걸어갔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두 곳은 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도 한참 동안 김 약국을 가지 않았다.
선교원에서 돌아온 경화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 경화야, 덥지? 이거 먹어. " 냉장고에서 쭈쭈바를 꺼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경화와 조금 친해져서 집을 오가면서 놀러 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었으니까
경화가 변덕을 부리고 고집을 부려도 어지간하면 참아주었다.
" 고마워. 현아야, 우리 인형 놀이하자.
" 그래. "
" 경화야, 할아버지 보고 싶다. 그렇지? "
" 응, 너도 우리 할아버지 보고 싶어? "
" 미미인형 보니까 할아버지 생각나. "
“ 응? 왜? 왜 네가 미미인형을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나? 왜? ”
“ 어? 어? 그게. ”
모르고 있는 듯했다. 경화는 분명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경화의 할아버지가 이 미미 인형을 사주셨는데
“ 왜? 왜? 니 미미인형 하고 우리 할아버지랑 무슨 상관인데?
너, 그 인형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
“ 어, 그게 너네 할아버지가 사주셨는 데.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
“ 왜 우리 할아버지가 너한테 인형을 사줘? 왜? 왜? 왜?
그 인형 가져와. 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으니까 그거 내 거야. “
“ 아니야, 그거 내 거야. 할아버지가 나 가지라고 하셨어. ”
“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으니까 내 거야.
내 거 내놔. 내 거야. 내 거꺼. “
“ 아니야, 내 거야. 분명히 할아버지가 내 거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내 거야. ”
지지 않으려고 뺏기지 않으려고 나도 악을 썼다.
갑자기 “ 휙~ ” 경화가 내 머리를 잡아채고 발로 내 배를 차기 시작했다.
질 수 없다. 절대 내 인형을 뺏길 수 없다.
나도 경화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댔다.
“ 악~~~ ”
“ 네가 먼저 놔. ”
“ 싫어 , 네가 먼저 놔. ”
서로 놓지 않고 머리채를 흔든다.
비명이 난무하며 발이 공중에서 허둥댄다.
내가 경화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있고, 덩치도 좋은 데 질 싸움이 아니다.
그러니 경화가 내 머리채를 잡고 시작한 것이다.
한 번도 말싸움이나 몸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더군다나 미미인형은 절대 뺏길 수 없다.
할아버지가 주신 인형이니까. 마지막 선물이니까
경화가 내 머리채를 잡던 손을 놓았다.
어차피 질 싸움이니 자기편이 필요했고
경화의 커다란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도 손을 놓았다, 눈물이 나왔지만 절대 울지 않았다.
울면 진 거다. 그러면 인형을 뺏길 수도 있다.
서럽게 우는 경화의 울음소리에 마침 마실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경화 할머니가 양산을 집어던지고 뛰어오셨다.
“ 할머니, 할머니 현아 인형 가져와. 저 인형 가져와.
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사 준거야. “
경화 할머니가 나를 노려보신다.
“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저 사주신 거예요. 저 가지라고 했어요. ”
“ 할머니, 가져와. 현아 인형 가져와. 내 거야. 내 거. 내 인형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 주셨으니 그것도 내 거야. ”
“ 아니야. 내 거야. 내 인형이야. ”
경화 할머니가 순간 내 팔을 잡으셨다.
“ 현아, 너 경화 머리채 잡았지? 경화 배도 찼지? ”
“ 경화가 먼저 내 머리채 잡고 흔들었어요. 배도 차고 ”
“ 네가 우리 경화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
할머니가 갑자기 내 머리채를 잡았다.
갑자기 경화가 쏜 살같이 우리 집으로 튀어 들어간다.
‘ 안 돼, 인형이다. 인형. 내 미미 인형을 가지러 우리 집으로 간다.
대문을 닫고 나왔어야 했는 데. ’
“ 할머니 놔주세요. 이 손 놔주세요.
다시는 경화 안 때릴게요. 제발 놔주세요. “
“ 네가 뭔데 우리 경화를 때려? ”
“ 할머니, 제가 잘 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
“ 경화 할아버지가 사주셨으면 그것도 경화꺼지.
그냥 가져다주면 될 일이지. 왜 이렇게 경화를 괴롭혀. “
“ 아니에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 거라고 하셨어요.
제 인형이에요. ”
어느새 경화의 손에는 내 미미인형과 옷들이 들어있는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 경화야, 그거 내 거야. 그거 내 거야. 제발 돌려줘. ”
“ 아니야, 이거 니 꺼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주셨으니 이것도 내 거야. “
경화가 방 안으로 들어가 큰 검정 가위를 들고 나온다.
“ 싹둑싹둑 ”
미미의 머리카락이 탐스러운 금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긴 생머리가 까까머리가 되었다.
미미 옷이 잘려 나간다. 모든 옷이 다 찢겼다.
드레스도 치마도 바지도 내가 직접 만들어진 내 옷들도 걸레조각이 되었다.
검정 유성 사인펜으로 미미의 얼굴이 새까맣게 칠해졌다.
의자며 가방 운동화 구두
작은 소품, 모든 것들이 경화의 발에 밟혔다.
“ 악~ 앙~ 엄마, 엄마, 엄마 ”
나는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던 경화 엄마가 놀라서 쳐다보신다.
할머니가 내 머리채를 슬그머니 놓았다.
“ 아줌마, 경화가 경화가 내 인형을 다 망가뜨렸어요.
할아버지가 사 주신 인형인데
경화랑 사이좋게 잘 가지고 놀라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인형인데
다 망가져 버렸어요. ”
“ 경화야. 아이고 너 진짜 왜 이러니? 어쩌려고 그래?
내가 속상해서 못 살겠어.
어머니, 어머니도 제발 좀 그만 하세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동네 창피해서 이사라도 가야지.
현아야, 울지 마 아줌마가 미안하다. 아줌마가 미안해.
아줌마가 경화 혼 내줄게. 경화, 너 이 계집애 너 이리 와. “
“ 할머니, 할머니, 엄마가 나 때리려고 그래. ”
경화가 요리조리 숨다 할머니한테 달려간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내 미미인형을 다시 집어 들었다.
“ 이제 그거 가지고 놀면 되겠네. ”
경화는 웃으며 인형을 집어 드는 나를 보고 말했다.
인형을 집어 들고 경화에게로 걸어갔다.
놀란 경화가 뒷걸음질 치다 할머니 뒤로 숨는다.
경화를 향해 내가 쏘아 부치며 말했다.
“ 너는 이제 내 친구 아니야. 앞으로 절대 너랑 놀지 않을 거야.
너랑 다시는 놀지 않을 거야.
너 나한테 아는 체하지 마. 너랑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니까. “
“ 저저저, 어른이 있는 데도
너 한 번만 더 우리 경화 괴롭혀봐. 가만히 안 둘 거야. ”
할머니가 말했다.
집으로 가다 할머니를 휙 돌아본다.
“ 아휴 아휴 아휴~~~~ 내가 못 살아. ”
“ 찰싹찰싹 ” 경화 아줌마가 경화 등짝을 후두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 왜 우리 경화를 때려? 왜 때려? 우리 경화를 ”
할머니가 아줌마에게 소리를 지른다.
“ 엄마랑 할아버지는 나보다 현아를 더 좋아해.
맨날 현아만 착하다고 하고, 현아 닮으라고 하고
나만 미워해. 엄마도 할아버지도 다 미워. 다 싫어.
할아버지 보러 앞으로 안 갈 거야. "
경화의 커다란 울음소리도 들린다.
대문을 닫고 수돗가로 가서 미미인형 얼굴을 닦는다.
비누로 빨래 비누로 퐁퐁으로
때수건으로 수세미로 아무리 닦아도 까만 얼굴은 다시는 하얘지지 않았다.
미미의 큰 눈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모든 것이 담긴 신발 상자에 미미인형을 넣고 뚜껑을 덮었다.
까만 미미인형 얼굴처럼 경화를 향한 나의 마음도 까매졌다.
“ 경화랑 사이좋게 놀아라. ”
할아버지가 하셨던 마지막 부탁도 이제 소용없다.
할아버지와 했던 마지막 약속은 이제 지키지 않을 거니까
경화 할머니를 봐도 인사하지 않았다.
할머니 양산만 보여도, 사각사각 한복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도
먼 길을 돌아가거나 모퉁이에 숨어버렸다.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한 여름
봉숭아에 아기 손톱만 한 꽃망울이 맺히는 여름
경화가 김 동주 손을 잡고 웃으며 집으로 온 날
경화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그날
나는 햇살 선교원에 다녀야 겠다고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