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장남으로 태어난 것은 행운일까 불운 일까?
8남매 중 장남인 우리 아빠
10남매 중 장녀인 우리 엄마
우리 아빠와 엄마 사이에 태어난 1남 3녀 중 맏이 장남인 우리 큰 오빠 민중아
오빠가 장남으로 태어난 건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오빠는 행운과 불운 중 행운
거기에 운을 더해 천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특권까지 누리며 살아왔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빠의 심성이 착하고 유순하다는 것
자신이 아들이라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친할머니와 고모들 작은 아빠들 엄마 아빠의 기대와 사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장녀인 큰 언니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심성을 가진 큰 오빠로 인해
그나마 오빠와 큰 언니 사이에서는 얇은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엄마는 항상 계란 프라이를 큰 오빠 밥 위에 올려주었다.
오빠가 여동생 세 명을 쭉~ 둘러보며
누구를 줄 건지 고민을 하는 것 같으면
엄마는 이런 오빠의 심성을 알고 계란을 건네주기 전 나지막이 말하곤 했다.
" 먹어라. 중아야
네가 우리 집 장남이다.
장남이 건강하고 든든해야 우리 집이 산다.
아빠가 사우디에서 돈 버는 건
우리 집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네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직장에 들어가서
부모 잘 모시고, 집안 세우고, 네 동생들
잘 건사해야 한다. 이제 그만 먹어라. "
" 네 " 오빠는 고개를 숙이고 계란 프라이를 먹었다.
" 나도 계란 프라이 먹고 싶은데 "
계란 프라이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오직 어린 나밖에 없었다.
큰 언니는 자기 몫이 아니라는 걸 어릴 때부터 체감하며 자랐고
그런 큰 언니와 엄마를 보면서 작은 언니도 눈치가 빨라졌다.
오빠는 조금 남은 프라이를 " 아~ 해 현아야 " 하며
내 입에 남은 프라이를 넣어주었다.
엄마는 오빠가 남은 프라이 조금을 내 입에 넣어주는 것은 눈감아 주었다.
늦둥이 막내가 가질 수 있는 소박한 혜택이었다.
아빠가 사우디에서 번 돈을 매달 보내주시면
월급의 반은 7남매 동생들을 키우고 있는 할머니에게 보내야 했다.
할머니에게 돈 부치는 날짜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할머니와 큰 고모 작은 고모 셋이 득달같이 찾아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친정과 왕래를 하거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아빠가 버는 돈을 친정에 보낸다고
흥청망청 쓰고 살면서 남편 등골을 빼먹는다고
엄마를 쥐 잡듯 잡았다.
엄마가 할머니 고모들에게 맞고 욕을 먹는 것을 보면서
어린 자식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빠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언니들과 나는 엄마랑 같이 울기만 했다.
그저 엄마가 불쌍하다고
어서 아빠가 돌아와 어린 엄마를 보호해주길 바라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와 고모들 작은 아빠들은
오직 장남인 큰 오빠에게는 모두 꼼작하지 못했다.
중아 오빠에게 함부로 하면
아빠가 참지 않을 거라는 것
친할머니와 자기들에게 보내는 돈을 모두 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오빠가 점점 자라서 고 2가 되어 성인 남자의 모습이 돼가자
할머니와 고모들은 점점 더 오빠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할머니와 고모들이 폭언과 욕설을 하던 어느 날
큰 오빠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라리고 무섭게 말했다.
"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세요.
한번 더 우리 엄마를 때리고 함부로 하거나 욕을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라고 고모들이라고 더 이상 참지는 않을 거예요. "
아빠를 대신해 오빠가 엄마를 보호하고 나서자
엄마는 그 이후 오빠에게 더 목을 매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큰오빠가 있어 든든하고 좋았다.
큰 오빠는 막내인 나를 귀여워했으니까
큰 언니는 오빠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미워하는 것 같았다.
큰 언니에게 오빠란 미워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빠는 유독 여자에게 약했다.
오빠에게 가장 강한 사람은
엄마 나 작은 언니 큰 언니 순서다.
큰 오빠와 큰 언니는 어떨 때는 동지로
어떨 땐 원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오빠는 오로지 큰 언니에게만 원망의 대상이지
결코 오빠에게 큰 언니는 원수가 될 수 없었다.
오빠는 항상 큰 언니에게 미안한지
영아 언니를 볼 때마다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렸다.
장남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오빠는 부담스러워 무거워했던 것 같다.
철없던 오빠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아이가 사랑을 알아가자 점차 소년이 되어갔고 청년으로 변해갔다.
香 향기로울 향 美 아름다울 미
향미
향기로운 아름다움
오빠의 첫사랑 향미 언니
달콤하고 향긋한 여름 복숭아의 냄새가 향미 언니에게서 진하게 풍겼다고 했다.
언니는 에덴동산의 선악과
이성관계에 숙맥이었던 남자에게 여자란 존재를 일깨워 준 선악과
내재되어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발현시켜준 존재
한 여름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오빠는 누군가를 떠 올리는 듯 복숭아를 잠시 보다
하얀 부분을 신중하게 베어 물었다.
오빠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언니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후 계속 언니만을 좋아했다.
언니도 오빠를 처음 본 순간 멈칫했다고 했다.
향미 언니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언니였다.
오빠는 한 번도 언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 적은 없었다.
언니도 오빠에게 고백을 하지는 않았다. 고백을 할 필요는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태어난 후였다.
오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태어나면서
우리 집에는 나를 구경하러 오빠 반 여자 친구들이나 동네 언니들이 놀러 오곤 했다.
엄마는 오빠의 친구들이 놀러 오면 센터에서 배운 샌드위치나 햄버거 간식 등을 푸짐하게 내주면서
오빠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매번 말하곤 했다.
간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여자 아이들에게 갓난아기란 귀여움 그 자체였다.
서로 먼저 안아보려고, 아기의 얼굴을 만지려고 작은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실 갓난아기는 좋아하는 남학생의 집에 놀러 갈 수 있는 적당한 핑곗거리이기도 했다.
오빠는 그중 향미 언니가 놀러 오는 것을 반색하며 맞았다.
수줍어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강아지가 어미개를 보는 듯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언니가 놀러 온다고 하면 오빠는 귀가하자마자 꽃단장을 하고 나에게도 가장 예쁜 옷을 입혀달라고 했다.
향미 언니는 나를 자주 업거나 안고 다녔고, 언니 주위에는 항상 오빠가 있었다.
언니는 나를 사이에 두고 오빠와 셋이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오빠와 언니에게 사랑의 오작교였다.
오빠는 이른 아침 언니의 집 앞에서 언니가 나오길 기다리며 함께 등교했다.
학교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언니가 나오면 자신도 그때 나온 척 언니와 함께 등교했다.
그리고 둘의 등교 시간은 점점 더 빨라졌다.
어렸을 적 언니는 그저 얼굴이 예쁜 여자 아이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제법 여자 티가 나면서 중학교 형들이 언니를 구경하러 초등학교 교문 앞으로 떼를 지어 구경을 오기도 했고
학교의 총각 선생님들은 유난히 언니를 예뻐했다고 했다.
동그랗고 작은 얼굴에 하얀 피부 눈코 입이 오밀조밀하니 귀여운 얼굴이고 볼에 복숭아 빛이 연하게 돌았다.
가슴이 나오고 엉덩이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허리는 잘록해 보여 아가씨처럼 보이기도 했고
키가 크고 늘씬해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실제로 길에서 향미 언니에게 반한 남자 고등학생이 언니를 쫒아와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언니의 큰 오빠에게 빗자루로 맞을 뻔했다고 했다.
언니 위로 두 오빠들은 언니가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거나 통금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항상 언니를 마중 나왔다. 애지중지 키운 귀한 딸이었다.
오빠도 큰 키에 덩치가 좋았고 변성기를 지나 목젖과 수염이 나오면서 제법 총각티가 났다.
게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모범생에 성격이 순하고 착해서
딸 가진 동네 아줌마들은 오빠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곤 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안 향미 아줌마는
처녀 총각이 되어도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으면 사돈 맺어도 되겠다는 농담을 엄마에게 건네곤 했고
엄마는 웃어넘겼지만, 언니는 엄마의 성에 차지 않았다.
엄마는 얌전하고 순한 성격의 여자를 좋아하는 데
언니는 반대의 성격으로 활발하면서도 끼가 많은 타입이었다.
언니는 얼굴은 예뻤지만 모범생은 아니었으며 티브이에 나오는 탤런트나 가수처럼 연예인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아저씨와 오빠들은 여자가 연예인은 절대 안 된다고
대학교에 진학해서 취직을 하거나 시집을 일찍 보낼 것이라고 했다.
언니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 기획사나 스타를 키워 준다는 매니저를 몰래 찾아가려고
몇 번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화가 난 아저씨는 언니의 긴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싹둑 잘라버리고 한 동안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예쁜 여자는 남자 손을 타서 팔자가 드세진다고 엄하게 단속했다.
자라면서 오빠는 언니와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니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어 가끔 언니네 대문을 서성거렸다.
아저씨와 오빠들은 오빠에게는 호의적이어서 언니와 오빠가 잠깐 만나는 것을 눈감아 주곤 했다.
하지만 언니는 연예인을 향한 꿈으로 들떠있었고 샌님 같은 오빠를 답답해했다.
오빠에게서 언니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각자 여중과 남중에 진학하면서 얼굴을 볼 기회가 더 없어졌고
오빠가 언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오빠는 버스보다 언니를 더 기다렸다.
언니는 항상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는데
오빠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오빠를 아는 체하지 않았고
오빠는 그것을 알면서도 매일 아침 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를 마치면 오빠는 정식으로 언니에게 프러포즈해서 연인으로 발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언니도 언니의 식구들도 모두 둘의 교제를 허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