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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Jan 23. 2021

달리기를 기대하며

“  여보세요,  영어 선생님이시죠?  "

”  아~  네,  안녕하세요.  “

“  저,  영수 엄마 소개로 전화했는데요.

   이번에 중학교 입학하는 남학생인데 수업을 받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가능할까요?  “

“  네, 수업을 시작하려면 테스트를 봐야 해요.  

   올 때 철수가 공부했던 교재도 가지고 와주세요.

   실력이 공부했던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아요.   

   결과를 보고 진도를 결정할 거예요.  

   기초가 잡혀있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할 수도 있어요.  “

“  네  ”     


다음 날  철수와 어머님은 그 동안 공부했던 교재를 가지고 방문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결과를 보니

기초가 전혀 잡혀있지 않았다.  머리가 잠시 아득해졌다.  zero이다.  

철수는 초등 기초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이가 어리면 시간이 있으니 차근차근 가르치면 되지만 나이가 많으면 나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기초 없는 고학년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안 받는 선생도 학원들도 있다.

돈 보다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가르치다 진이 빠져버린다.


초등학생들은 어려 뭘 모르고,  고등학생들은 입시가 급해 무조건적 복종을 하지만 중학생들은 예민하고 반항심도 강한 천둥벌거숭이라 가르기기 쉽지 않다.


가르치기 쉬운 순서를 매기자면     

상위권 => 최상위권

중위권 => 상위권

하위권 => 중위권

개념잡기를 해야 하는 기초과정 아이들이다.     


가르치기 편하고, 성적이 빠르게 상승하는 아이들은 상위권 학생들이다.

그 아이들은 기본이 탄탄해서 학습 공백을 찾아 그곳을 메워주기만 하면 된다.

우등생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잘 캐치하고 질문한다.

한 마디로 선생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한다.

어려운 부분도 쉽게 이해하고 암기까지 순식간에 달려간다.   

  

우등생들은 토질이 좋은 밭이다.

돌을 골라내고, 군데군데 잡초를 뽑아 주고, 건강한 모종을 심어준다.

물과 적절한 비료를 주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지질히 좋은 밭은 풍성한 곡식을 열매를 맺는다.

나는 지켜보고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걷기만 하면 된다.     


이번 주에 들어온  철수는 황무지와 같다.

게다가 시간까지 없어 걷기는커녕 나는 이 아이를 업고 달려야 한다.

그래도 철수를 포기하지 않는다.

황무지와 같은 시간이 나도 있었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부터 졸업까지 육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달리기가 좋았다.

달리는 동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숨이 터질 것 같은 떨림과 긴장이 있어서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다방구나 이어달리기를 할 때

아이들은 나를 자기 팀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남보다 내가 잘 달린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반 대표와 계주 달리기에 매년 나갔다.

우리 학년에서 나를 모르는 아이가 없었다.     

계주 달리기는 운동회의 꽃이다.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전 학년 이어달리기를 할 때

나보다 앞서 달리던 주자를 따라잡고, 내가 역전을 할 때

스탠드에 앉아있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일어나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른다.

나는 그 소리와 심장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강한 마약이다.     

그 순간을 위해 나는 달렸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화려하게 피고 지는 꽃이지만

그 향기는 화려하고 달콤했다.     


아침 8시까지 학교에 와서 운동장 10바퀴를 달리고, 기초 체력 운동,  종목 운동을 한다.

수업 후 다시 10바퀴 달리기, 기초 체력 운동, 종목 운동

이렇게 3년의 반복적인 시간을 보냈다.

시합이 잡히면 학교 수업은 다 빠지고 한 달간 운동만 했다.     

80년대 운동선수들은 정말 많이 맞고 운동을 했다.

지금의 초등학생인 국민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회에 나가 상을 종종 받아왔던 나는 맞은 적이 없었다.

큰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학교장에게는 가점이 주어진다.

그 당시 육상부 감독과 코치는 정식 교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특수반 담임교사이면서 육상부를 운영했다.

상을 받아오면 교내 육상부는 존속할 수 있었다.          

상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심하게 맞았다.

수상하는 아이들을 때릴 수는 없어서 본보기로 그 아이들은 더욱 매를 많이 맞았다.


나이가 어려도 체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감독은 슬리퍼, 배트, 빗자루, 대걸레  주변 모든 것들을 이용해

아이들의 따귀, 머리, 온몸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

나는 겁을 먹고 옆에서 친구들이 맞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폭력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사람은

그것이 불합리하고 인간답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잘못을 했으니 맞는다는 쉽고 편한 공식에 자신을 대입시켜 버린다.     


맞고 운동을 하는 것이 짐승처럼 느껴지고 치욕스러웠다.

운동하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맞으면서 운동한다는 것을 말하면 그만인데

감독이 너무 무서워서 부모님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말하면 고자질을 하는 것 같았고

감독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과 싸우고 부모님을 때릴 것만 같았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사람은 육상부 감독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계속해도

운동을 그만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수상하지 않는 것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지 않는 것 밖에 없다 생각했다.     


운동선수는 승부근성이 강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출발선에 서 있으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던 불편하고 괴로운 감정들은 모두 잊어버린다.

심장이 요동을 치고

총소리에 사슴처럼 튀어나간다.

달리는 동안 바람소리와 내 숨소리 심장소리만 들린다.

결승선에 도달하면 환호 소리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버린다.

사람들의 함성 환호 박수 소리는 고통을 잊게하는 모르핀이다.     


나는 육상을 그만두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른 선수에게 지는 것은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운동을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자존심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여자 선수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기록이 떨어진다.

감독은 내가 사춘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지

우승을 못해도 닥달하지 않았다.

내가 상을 받아오지 않으니 운동장 조회도 뜸해졌다.

반 학기쯤 지나 육상부는 해체되었고 감독은 전근을 갔다.

나는 더 이상 운동장을 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그저 폭력에서 해방됐던 것이 즐겁기만 했다.



    

3년간 운동장만 달리던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나는 멘붕에 빠졌다.

3년간 운동만 달리기만 했던

모든 과목이 막막했고 특히 수학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학의 기초가 전혀 없던 터라 선생님이 설명을 해도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단과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응용문제는 전혀 손도 대지 못했다.

시간은 없고 성적은 좋았으면 좋겠고

마음이 급했던 나는 수학 문제와 풀이과정을 암기해버렸다.

간신히 중학 수학은 넘어갔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나는 수학을 포기했다.  내가 바로 수포자였다.


그나마 내 자존감을 살린 과목이 영어였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알파벳을 암기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어를 처음 시작했다.

시작점이 같았던 영어

동시에 출발해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왠지  공평하다 느꼈다.

영어가 가장 재미있었고 특히 영어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다.

국어와 암기과목도 그럭저럭 따라주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최애과목은 영어였다.

  


루틴

반복되고 규칙적인 운동을 삼 년간 해왔던 나는 성실함과 인내가 장착되어 있었다.

공부를 못하지만 착하고 열심히 하는 질문하는 아이

선생님들은 나를 참 예뻐해 주셨고 내 빈 곳을 메워주셨다.

운이 좋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까지 사귀게 되어

그 애들도 내 약점을 보강해주었다.

점점 성적이 향상되면서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었다.       

빈곳을 찾을 때마다 나는 손을 들고 도와달라 말했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황무지같던 내가 주변 사람들로 인해 점차 비옥해져갔다.



           

철수에게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기초 개념을 설명해주고 확인하고 다시 설명 다시 틀리고 설명

잡초를 뽑고 땅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고 거의 개간이다.

내 몸을 갈아 철수를 가르쳐야 한다.    

      

“  어머님, 철수야,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려면

   초등 기초과정부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기초 단어 모르고,  문법도 처음부터 해야 하고,  영작이랑 독해도 해야 해.  듣기는 괜찮아서 다행이고요.  “

“  네  ”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엄마의 눈치를 살살 살핀다.

“  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     


각오는 했지만 엄마의 표정은 당황스러움과 근심 짜증 온갖 감정으로 뒤섞여 어두웠다.     


“  철수야,  겨울 방학이니까 시간이 있어.  

   여태까지 잘 놀았으니까 이제 열심히 하자.

   중학교에 입학해 수업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거야.

   아이들 대부분이 영유를 다녔고, 어학원을 계속 다녀서

   선생님들은 그 아이들을 기준으로 잡고 수업을 하셔

   그래서 쉬운 설명은 패스할 거야.  3월까지는 기초과정을 꼭 떼어야 해.

   입학하면 시험이 많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보통 정도는 하자.

   내가 내주는 숙제 잘하고 열심히 따라오면

   4월쯤에는 중간 정도의 수준이 될 거야.

   방학 동안 열심히 하면 2학년이 될 때는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어.  그러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해.  

   내가 내주는 숙제 다 하고 힘들어도 참아야 해.  

   할 수 있을까?  “

“  네  ”

“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  ”

“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

“  네,  저도 철수랑 같이 해보고 싶네요.   

   시간이 없으니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요.  “    

 

철수에게는 시간이 돈이다.

교재를 마련하지 못하고 복사를 해서 그 날 저녁부터 당장 시작했다.     


“  철수야 여기서 주어가 뭐지?  동사가 뭐지?  목적어가 뭐지?  이 문장이 무슨 뜻이지?   “     


질문을 한다. 철수는 대답을 하다.     


“  모르겠어요.  ”       


철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창피함과 기가 죽어 자신 없어하는 표정.  무언가를 포기하기 전 모습이다.     


“  철수야 ,  너는 공부를 하려고 나한테 왔지?  

   철수, 너도 알다시피 너는 지금 모르는 게 정말 많아.

   공부를 잘 못하지만,  

   잘하고 싶어 하는 친구를 가르치는 게 내 일이야.

   네가 그동안 공부를 안 했으니 지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네가 나한테 왔으니까

   너는 이제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될 거야.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모두 영어를 잘했다.

   너보다 더 몰랐던 아이들도  잘 했으니까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부모님이 교육비를 주시고 공부하러 온 거니까

   우리 열심히 하자.  돈 버는 거 무지 힘들어.  “     


다행히 아이는 순하고 착했다.

조금만 칭찬을 해주고 격려해주면 잘 따라올 아이라는 게 느껴졌다.

계속 틀리고 있었지만 이제 포기하지도 기가 죽지도 않았다.

반복해서 가르치고 설명하고 도돌이표가 계속됐지만     


“  아,  맞다.  ”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천만다행

성실함과 인내가 있는 아이였다.

이해력은 보통이라도 성품이 좋고 인내력 있고 성실한 아이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다.

힘이 들더라고 이런 아이는 가르칠 만하다.

계속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면 반드시 잘할 아이이다.     


“ 철수야,  너무 잘했어.

  내가 보니 너는 이해력도 좋고,  질문도 잘하네.

  창피해하지 말고 계속 질문해.  질문할수록 더 잘하게 되는 거야.

  숙제만 잘 해오면 금방 실력이 늘게 보인다.

  한 달만 지나면 실력이 늘었다는 걸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

“  네  ”     


한결 밝아진 아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명의 아이를 가르친 것처럼 목이 아팠다.

90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했으니 당연히 아플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목이 땡땡해졌고 오후에는 철수가 수업을 왔다.     


“  철수,  숙제는?  단어는 잘 외워왔어?  “

“  문제는 다 풀었는데,  단어는 암기가 잘 안돼요.  

   시험 보기 전에 다시 보면 안 돼요?  ”

“  응,  선생님 채점할 동안 암기하고 있어  ”     


채점을 하고, 틀린 것을 알려주고 시험을 보고 다시 진도를 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 숙제를 내주는데 철수가 말한다.     


“  선생님,  숙제 좀 더 내주셔도 돼요  ”

“  응?  ”

“  삼 일 후에 오니까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  정말?  ”

“  네  ”     


철수와 함께 숙제를 내 줄 분량을 의논하고 결정했다.  

기특하고 예쁜 철수가 가고 나서 철수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  어머님,  철수가 공부하고 와서 뭐라고 해요?  ”

“  별 말이 없어요.  갔다 와서는 할 만하다고 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더라고요.  

   짜증을 내서 숙제를 확인할 수도 없고  

   선생님,  철수 숙제는 잘 해 왔어요?  “

“  네,  잘 해왔어요.  하겠다는 의지도 있고

   아까 갈 때는 숙제를 더 내달라고 하더라구요.

   기초부터 시작하지만 다행히 이해력이 좋아서 잘 따라오겠어요.  “

“  네,  원래 순둥이였는데 사춘기가 심해지면서 말을

   거의 안 해요.  ”

“  아이가 착하고 순하네요.  끈기도 있고

   철수는 시간이 걸려도 잘 할 거에요.

   믿고 맡겨주셨으니 철수랑 잘 해갈 거에요.

   만약 철수가 공부를 하기 싫어하거나 숙제를 안 해오면

   그 때는 알려드릴테니 그럴 때는 잠시 쉬는 게 좋아요.  

   잔소리하지 마시고,  계속 칭찬만 격려만 해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

“  네,  다행이에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걱정이 덜 해진 철수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큰 주전자에 연근차를 넣고 팔팔 끓였다.

뜨거운 연근차를 연달아 마셨다.     


‘  내일 아침 분명 목이 부을 거야.  

   철수가 와서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힘내서 가르쳐야지

   내가 먼저 그 아이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거야.  ‘     


지금은 철수를 업고 달리고 있지만

언젠내 등에서 내려 혼자 씩씩하게 걸어갈 철수를 상상해본다.     


내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 박수와 환호성을 들은 것처럼

철수도 자신의 달리기에서 찬사와 함성을 들을 것이다.     


황무지 같았던 내 옆에 마음 따듯했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주었던 것처럼

철수에게도 핫팩 같이 따듯하게 온기를 줄 선생님이 친구들이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철수,  그 애 옆에 있을 것이다.     

철수가 달릴 것을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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