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탄산음료, 녹차, 홍차
매운 음식과 밀가루 음식
기름기와 산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과일도 드시지 마세요.
식사 후 30분 정도는 항상 걸으시고요. "
역류성 식도염으로 지난해 9월부터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우리 식구들은 위장이 좋질 못하다.
대학생 때부터 식도염은 달고 살았기 때문에
' 이 주나 한 달 정도 약을 먹고 조심하면 되겠지. '
가볍게 생각했고 4개월이나 약을 먹을 줄은 몰랐다.
잠을 깊이 오래 자지 못했기 때문에 식도염은 더 길게 심하게 지나갔다.
다른 이상이 있는 줄 알고 이비인후과, 심장내과까지 방문했고 검사를 했으나
검사 결과는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과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역류성 식도염
쉽게 생각할 병은 아니었다.
식도염으로 인한 가장 큰 고역은 강한 식욕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뭐든 참는 건 힘든 거다.
식욕이 강하고 식탐이 많은 내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떡볶이와 커피 이 둘이다.
새빨갛게 매운 떡볶이와 향이 좋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하는 것
매일 아침 공복에 연하게 마시던 아메리카노
스벅의 단골이며 하루 5-7잔을 마시는 내 친구는
내가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 이게 커피야? 보리차지? 이걸 왜 마셔?
배만 부르고 화장실만 가겠다. "
" 야, 난 그거만 마셔도 충분해.
그 이상으로 마시면 그 날밤은 잠 못 자. "
친구는 내 커피 취향을 비웃었지만
그 정도의 카페인에 적응하는 것도 20여 년이 넘게 걸렸다.
되도록이면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녹차와 보이차 홍차 허브차 다양한 차를 마셨지만
구수하고 달콤한 향
마신 뒤의 개운함과 약간의 각성과 흥분을 주는 커피는 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 몇 캔을 수시로 들이키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요즘의 청소년들과는 다르게
나의 청소년 시절
커피는 마시면 안 되는 음료였다. 피우면 안 되는 담배처럼
고 3 시험기간에 커피란 걸 커피 믹스를 엄마 몰래 처음 마셨다.
마시자마자 심장이 벌렁거리며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심장은 내 가슴을 튀어나와 내 온몸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느껴질 정도로 맹렬히 뛰고 있었다.
손발이 경련이 된 것처럼 떨리고 찼다.
커피를 마신 목적은 이루었으나 실속은 없었다.
마신 당일 잠은 못 잤으나
카페인에 의한 흥분으로 공부를 했어도
공부를 한 내용들은 기억으로 저장되지 못했고
다음 날 하루 종일 잠을 자서 나는 연 이은 시험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시뻘겋고 매운맛의 쌀 떡볶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도 좋으나 배달 음식으로도 훌륭한 한 끼
내가 가장 애정하는 엽기 떡볶이
딸이 좋아하는 카레향이 나는 매운맛의 신전떡볶이
매울 때마다 중간중간 혀와 목을 달래주는 시원한 쿨피스와 주먹밥
커피와 떡볶이를 먹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4개월간의 투약을 멈추고 이제 슬슬 커피와 떡볶이를 먹으려던 찰나
대장에서 나온 용종 6개가 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일주일간은 싱겁고 슴슴한 식사를 하세요.
커피, 술, 알코올, 담배, 매운 음식은 절대 금식
장염을 일으켜 혈변을 눌 수 있어요.
혈변이 나오면 바로 응급실이라도 가셔야 해요.
한 달 정도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심하세요.
' 그래, 여섯 개나 때넸으니 조심하자. '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주말에 먹을 장을 보러 혼자 나갔다가
'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더는 못 참아.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우유가 들어간 라테는 괜찮을 거야. '
부드럽고 따듯한 라테를 시켜
집으로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보며 마시고
광어회, 연어, 생굴을 사서 남편과 딸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나서 두 시간 후 서서히 불길한 사인이 오기 시작했다.
" 어~ 속이 너무 아파. 위경련 일어나는 것 같은데. "
" 그래? 어떻게 병원 갈까? "
" 지금 가면 응급실이야. 내일 아침에 갈래. "
" 한 달은 조심하라고 했는데. 조심 좀 하지. "
" 어? 뭐야? 점점 아파지는데. 너무 아픈데.
우유라도 마셔야겠다. "
레인지에 따끈히 데운 우유 한잔이면 위가 진정될 줄 알았으나 더 탈을 일으켰고
남아있던 식도염 약을 찾아 급히 먹었으나 소용없었다.
찜질하고 일찍 자야겠다.
현미로 만든 찜질팩으로 배를 따듯이 데우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저녁 9시 벌떡 일어난 나는 화장실로 들락거렸다.
" 화장실 아무도 쓰지 마. 나 언제 갈지 몰라. "
토사곽란
위로 토하고, 아래로 쏟아내고
그 날 아침 먹은 식사부터 저녁에 먹은 굴과 회 커피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배설해냈다.
변기를 끌어안고, 안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달려가고
목구멍은 따가워서 죽을 지경이고, 설사는 끊임없이 나왔다.
물만 마셔도 바로 토하고 아래로 나왔다.
' 아~ 화장실 청소 좀 해 놓을 걸.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을 줄은 몰랐네. 주말에 하려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변기만이라도 닦아놓는 건데. '
그러면서도 껴안은 변기를 놓을 수는 없었다.
그때는 누구보다 무엇보다 변기가 소중했다.
새벽 5시가 돼서야
내 몸안의 모든 것들이 다 나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 장염 ' ' 탈수 ' 두 단어만 떠올랐다.
' 아~~ 장염이 오면 탈수가 온다더니.
정말 그러네. 이게 며칠 계속되면 정말 탈수가 오겠어.
고작 토하는 것, 장염 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몸이 정말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아프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지금의 나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분들의 고통이
더 심할 텐데
무슨 힘으로 글을 쓰는 걸까?
왜 쓰는 걸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
토하는 와중에도
변기를 끌어안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그분들이 떠올랐다.
어느 위인보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그 순간에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분들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성실하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참 웃긴다. 시건방을 떨고 있다.
내가 뭘 안다고?
감히 내가 그분들의 마음을 생각들을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나 상상하고 짐작할 수 있을까? '
브런치에는 몸과 마음이 아픈 작가분들이, 그분들이 쓰시는 글 들이 참 많다.
그분들의 글은 위로와 안식도 주지만
잠시 멈춰 삶 본연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나와 내 주변을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게 중요할까? 넌 어떻게 살고 싶은데?
이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게 나중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어?
후회하지 않겠어?
지금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겠어? '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
잠시 아팠던 나는 브런치 작가님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도 부끄럽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닌데. 뭘, 엄살 피우지 말자. '
아침이 밝아오고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 장염이네요. 굴 드셨어요? "
" 네, 굴이랑 회요. "
" 재철이라 굴이랑 회 많이 드시는데
요즘 굴 드시고 장염으로 많이 오세요.
환자 분은 체기가 있으신 거예요. 해산물에
앞으로 조심해서 드세요. 그래도 또 체하실 거예요. "
" 네 "
미래에 내가 또 체할 거라는 의사 선생님
그래도 다행이에요. 다시 체해도 괜찮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체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는
아프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주변의 사람들을 브런치 작가님들을
작가님들
아프지 않으실 순 없지만 안 아프면 좋겠지만
여러분들의 글들이 어리석은 저를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다른 이들에게도 되돌아볼 시간을 준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작가님들은 아프지 마세요.
계속 써주세요.
작가님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