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아, 숙영아 뭐 하니?

by 옥상 소설가

친구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내 슬픔을 나눠 등에 지고 가지는 못하더라도

딸인 너에게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

엄마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공부라는 걸 하게 됐어.

음~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친구였어.

아마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사귄 친구들이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엄마는 어쩜 공부를 하지 않게 됐을지도 몰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동네와 다른 곳에 중학교를 배정받아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같은 버스를 타게 되면서 서서히 그 아이들이 우리 동네에 사는 걸 알게 되었지.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어.

운이 좋게도 그 친구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었어.

착하고 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었어.

근묵자흑

엄마가 그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공부라는 걸 하게 된다.

주말이면 같이 도서관도 다니고, 독서실도 다니고

그 친구들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고, 공부를 못한다고 무시하지 않고 참 친절했어.


중학교 1학년 첫 시험 중간고사를 보게 됐는데

오십 명이 훌쩍 넘는 반 아이들 중에서 엄마는 14등을 했다. 깜짝 놀랐어.

14등 높은 성적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그런 등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공부는 나와 상관없는 먼 단어라고 생각했어.

사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싶어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같이 다니고

그 애들 옆에 앉아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되었는데

내 밑으로 사십여 명의 아이들이 있는 게 신기했어.

‘ 어? 하면 되겠는데. 할 수 있겠는데.

나도 하면 친구들처럼 잘 할 수 있겠는데 ’


엄마는 욕심이 생겼어.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지.

그다음 시험인 1학기 기말고사는 9등

2학기가 돼서는 7등, 5등 점점 등수를 올려 나가게 되고 칭찬을 받고 그러다 보니

성적을 올리는 게 재미있어졌어.

반에서 제법 공부를 한다는 아이들에 속하게 되면서

아이들, 선생님들에게 인정도 받았지.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아이들과 다른 반이 되었지만

계속 가깝게 지내면서

나를 가르쳐줬던 친구들과 경쟁까지 하게 됐어.

‘ 배울 게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면 좋겠구나.

친구로 지내면서 가까이하면 그 사람의 장점을 내가 배울 수 있고 닮아 가는 장점이 있구나. ‘


나는 점점 친구의 중요성을 알게 돼서 배울 점이 있는 아이들을 골라 사귀기 시작했어.

그 중 성적이 친구를 사귀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됐지.

같이 어울리고, 공부하고, 놀다 보면 저절로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거든.

반 등수와 전교 등수를 올리는 게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어.



그런데 한 참 성적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던 내가

우리 반 꼴찌 아이를 좋아하게 됐어.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아이 였는데

우연히 짝이 되어 이 주간 그 아이 옆에서 지내다

그 아이에게 홀딱 반해버린 거야.

심형래

너는 전혀 모르는 사람. 개그계의 레전드


우연히 심형래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했어.

슬랩스틱 코미디언 심형래

엄마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심형래를 가장 좋아했지만

심형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를 유치한 개그맨이라고 했어.

그런데 숙영이는 나와 생각이 같았어.

“ 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웃긴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

“ 심형래 ”

“ 어? 정말? 너도 심형래야? ”

“ 응 ”

“ 뭐? 뭐를 제일 좋아했는데? ”

“ 변방의 북소리, 동물의 왕국, 내일은 챔피언 그 중에 압권은 뭐라 해도 영구야 영구야지. ”

“ 뭐? 정말? 너도 영구가 제일 좋아? 나도 심형래 개그 중 영구를 제일 좋아하는 데 ”

“ 맞아. 영구야 영구야가 최고야. ”

“ 그렇지? 심형래는 정말 최고의 코미디언이지. ”


나는 그 순간 숙영이가 나랑 가장 비슷한 웃음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숙영이랑 함께 지내면 항상 웃을 수 있을 거라 직감했지.

그 애가 우리 반 꼴찌였어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공부를 못해 반에서 꼴찌라도

성적이 하위권이라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를 탐탁지 않아해도

번뜩이는 유머와 기발한 재치를 가진 그 아이를 참 좋아했어.

자존심도 버리고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고 싶다 말하고

친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적극적이니?


그 친구는 아직도 엄마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어.

그런 아이는 생전 처음 만났고 여태까지 비슷한 사람도 만나보질 못했어.

지금도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고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한 체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친구야.

숙영이는 키가 170이 넘어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어.

상고머리에 깻잎머리 스타일을 항상 고수하고

계란형 얼굴에 흰 피부 외까풀의 눈을 가진 친구였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꼭 쌍꺼풀 수술을 할 거라고

그 애는 매번 거울을 보며 다짐을 했지.


가끔 재수생 언니의 쌍꺼풀 테이프이나 풀을 가지고 와서

교실 뒤 작은 미용실을 열어

무쌍인 아이들에게 쌍꺼풀을 만들어 주면서 웃고 놀곤 했어.

나중에 왜 그렇게 숙영이가 쌍꺼풀에 집착하는지 알게 됐어.

숙영이 집에 놀러 가서 그 애 언니와 오빠를 보고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더라.

숙영이의 오빠와 언니 둘 다 연예인처럼 모두 인물이 좋았어.

미운 오리 새끼

숙영이는 스스로를 그렇게 느낀 것 같아.

그 아이는 자기가 백조라는 것도 모르면서 지내왔어.


“ 숙영아, 쌍꺼풀 수술 안 해도 너는 매력적이야.

너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

“ 진짜? ”

“ 응, 너희 언니랑 오빠가 과하게 이쁘고 잘 생긴거고

우리는 평범한 거지. 못 생긴 게 아니야. “

“ 그런가? ”

“ 응, 우리도 더 커서 살 빼고, 잘 꾸미면 분명 예뻐질 거야.

숙영아. 그런데 너네 오빠 정말 잘생겼다.

아무래도 내가 커서 너네 오빠한테 시집가야겠다. 이제부터 너를 아가씨라고 부를 게. “

“ 야, 생각도 하지 마. 우리 오빠 성질 정말 더러워. ”


숙영이 언니와 오빠가 못 된 사람이라면 속이라도 편하게 미워라도 할 텐데

모두 숙영이만큼 유쾌한 사람들이었어.

가끔 놀러 가서 언니와 얘기를 나누거나

오빠가 숙영이와 하는 말 들을 옆에서 듣다 보면 알 수 있었지.

특히나 숙영이의 엄마가 개성이 넘치던 분이셨어.

집안 분위기가 원래 그랬던 거야.


반에서 꼴찌인 숙영이를 담임 선생님은 좋아하질 않았어.

그래서 내가 숙영이와 가깝게 지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

숙영이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은근히 돌려 말하셨어.

하지만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어.

숙영이의 매력을 말이야.

숙영이는 공부는 못했지만 정말 기발하고 재기 발랄한 아이였어.

그 애는 숨겨진 원석이었는데

세공의 과정을 거치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될 텐데

공부를 못하면 좋은 아이가 아니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선생님은 숙영이를 알아보지 못한 거야.

만약 담임 선생님이 혜안이 있었다면

잊지 못할 제자 한 명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그랬다면 선생님의 일 년은 훨씬 더 행복했을 거야.

그럴싸한 말과 잘난 체, 아는 척, 세련된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숙영이는 뛰어난 관찰력으로 개인이 가진 독특한 표정과 말투 등 특징을 모사했어.

그 애의 개그가 원시적이고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


좀 웃긴다는 친구들은 다 말로 하는 개그를 하고 좋아했는데

숙영이는 빤했던 개그에서 용감하게 벗어나 새 장르를 열어준 거야.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반 친구들을 웃겼지만

우스운 사람은 아니었어.

모두들 즐겁게 만들어 준 해피바이러스

그게 숙영이의 숨겨진 모습이었지.


숙영이랑 같이 있으면 잠시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 너무나 즐거웠거든

내가 왜 숙영이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어.


그 애는 고유한 그 사람의 표정, 특징, 목소리, 몸짓, 습관 등을 잘 캐치했지만

웃음의 대상을 희화하 하거나 비웃지 않았어.

얕잡아 보거나 깔보며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숙영이의 웃음 코드는 그렇지 않았어.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과장해서 표현해

웃음의 대상이었던 그 아이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모두 같이 웃을 수 있었어.

누구 하나 기분 상하지 않고 반 아이들 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지.

모두가 즐거운 웃음은 개운한 맛이 있어 뒷맛이 껄끄럽고 찜찜하지가 않아.

의도되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라 한 참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도 구수한 맛이 있거든


숙영이는 그런 아이였어.

개운하고 구수한 착한 웃음을 주는 아이

엄마는 그 아이를 참 좋아했어.


졸업을 할 때쯤 숙영이는 상고에 진학하고

나는 인문계를 선택했어.

갈 길이 달라진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숙영이는 깡충한 키에 깻잎머리를 하고 털털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 기억에 남아있어.

여전히 나를 웃게 하고 있지.


숙영이

보고 싶은 아이

내 중학교 학창 시절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던 아이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웃음 짓게 하는 아이


너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너의 시간과 기억을 웃음, 행복으로 채워주는 친구 말이야.

누군가가 너를 떠올리면

웃음 짓게 만들고,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하게 하는

그런 네가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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