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후프, 줄넘기, 구슬들
거실 바닥에는 놀이터나 야외에 있어야 할 운동기구와 놀이기구가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 새댁, 이렇게 자주 올라오면
나도 스트레스받아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
“ 아주머니 하루 종일 머리가 울려서 너무 힘들어요.
제발 부탁드려요. “
이사를 하자마자 위층에서 나던 소음은 심상치 않았다.
아이가 셋이라는 걸 알고 참고는 있었지만 문제는 출산 후였다.
신생아는 태어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자지만
윗집의 소음은 너무 심해 잠을 자던 딸은 자주 깨서 울어댔고
모유수유를 하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했던 나도 위층의 소음과 진동, 아기 울음소리에
수면을 낮, 밤으로 취하지 못해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소음이 너무 심해서 위층으로 올라가 복도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발원지가 바로 위층인지, 한 층 더 위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
우리 위층이었다.
세 아이들은 술래잡기인지 달리기인지 신나게 거실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 안녕하세요. 아래층인데요. 소음이 너무 심해서요.
제가 얼마 전에 출산을 해서 잠을 자지 못해요. 부탁드릴게요. “
“ 네, 미안해요. 아이들에게 주의 줄게요. ”
그러나 층간소음은 하루를 지나 다시 시작됐다.
다시 올라가 주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차라리 그때 인터폰이나 경비실에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더 예의 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올라가 부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올라갔을 때
더 이상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애들을 밧줄로 묶어놓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고함과
안하무인의 태도에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서 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꿨다.
“ 자주 올라와서 죄송해요.
신생아인 딸이 자주 잠을 깨고,
저도 잠을 자지 못해서 예민해서 그랬네요.
아이들도 나가서 놀지 못해 답답했을 텐데
이거 제가 사과의 의미로 드리는 거예요. “
위층에 선물공세를 펼쳤다.
케이크, 빵, 과자, 베라 아이스크림, 텃밭에서 딴 상추와 토마토 고구마 오이
위층에 조공이란 걸 했고
위층 아이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다.
그제야 소음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나도 딸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수개월 뒤 화장실 위 천장 벽지에 얼룩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커졌다.
실크벽지라 얼룩이 보이면 내부는 곰팡이가 피었다는 것인데
살짝 뜯어보니 곰팡이가 보였다.
관리실에 전화를 해 살펴봐달라고 했다.
직원이 와서 살펴보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서 누수가 된다는 것이다.
아파트 공동구역이 아니니 윗집에서 해결해 주어야 하고
위아래 층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 저 벽지는 어떻게 해? 원래 도배까지 윗집에서 해 주는 건데 ”
“ 윗집 여자 도배해 줄 여자 아니야. 일단 조용히 살자.
도배까지 해 달라고 하면 다시 소음이 시작될 거야. “
“ 그렇겠지. ”
“ 응, 조금 기다렸다가 누수공사가 마무리되고, 그때 상황을 봐서 도배를 해달라고 하자. ”
우리는 다시 시작될 층간소음의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다.
누수가 다시 될지 몰라 전지를 여러 장 사서 천장에 붙였다.
참으로 기묘한 천장의 모습이었다.
“ 누수공사 다 끝났어요. 이제 이상 없을 거예요. ”
“ 네, 감사합니다. ”
윗 집에서 공사가 끝났다는 인터폰이 왔다.
‘ 그래, 이제 다행이다. ’
윗집은 누수 이후 더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우리가 도배를 요구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요란했다.
옆 집은 이사 오기 전인지 인테리어 공사가 한 참이었다.
공사를 하고 있는 사장님께 우리 집 천장을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장님은 천장만이 아닌 거실까지 도배를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실크벽지라 천장과 옆면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언제, 어떻게 윗집에 도배 얘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1층 입구에서 윗집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 안녕하세요. ”
“ 네, 안녕하세요. ”
“ 출근하시나 봐요? ”
“ 네 ”
“ 아주머니,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물은 더 이상 새지 않는 것 같은데
도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누수가 되면서 벽지에 곰팡이가 피어서 벽지를 떼고
그동안 전지를 붙이고 살고 있는데
전지가 계속 떨어져서 제대로 도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
“ 그래요? 어쩌나? 두 달 뒤쯤 우리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
“ 아, 그래요. 원래 누수가 되면 도배까지 해주셔야 해요. ”
저희가 집을 사서 들어올 때 인테리어를 다 해서 실크벽지거든요.
인테리어 업체에 알아보니
실크벽지는 천장과 옆면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부분 도배가 안된다네요.
실크로 도배하면 비용이 많이 들 테니 그냥 합지 도배로 해주세요. “
“ 그래요? ”
“ 제가 사장님께 명함은 받았는데 필요하면 드릴게요.
주변에 알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
윗집에서는 열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인터폰을 해보니 윗집 아주머니가 왜 자기네가 도배를 해줘야 하냐면서 배짱이다.
위층으로 올라갔다.
“ 아주머니, 도배 때문에 올라왔어요. ”
“ 잘 왔어요.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도저히 억울해서 ”
“ 네? ”
“ 이십 년도 넘은 오래된 집이라 누수는 흔한 일이고, 왜 우리가 도배를 전체 다 해줘야 해요? ”
“ 네? ”
머리가 멍하다.
“ 아니, 6층 여기 복도 끝 집도 누수로 벽지가 엉망인데
오래된 집이라 다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고 그냥 살아요.
그런데 왜 새댁만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
“ 네? ”
“ 나랑 같이 저 끝집 가서 그 집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와요.
그 집 사람은 위층을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요. ”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더니 그 집으로 가보자고 한다.
“ 아니, 아주머니 그 집 얘기는 하지 마시고요.
저희는 이사를 들어오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다 하고 들어왔어요.
그동안 층간소음 문제도 있고 해서
곰팡이가 핀 벽지는 잘라내고 전지를 붙이고 살았어요.
제가 다 실크벽지로 원상복구를 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싼 합지로 거실이랑 천장 도배만 요구하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억울하세요? 원래는 원상복구 하는 게 맞는 거지만 제가 양보를 했잖아요.
아주머니도 양심이 있다면
저희 집에 와서 저희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보시는 게 먼저 아닌가요?
아주머니도 저희 집에 와서 우리 집 천장이 지금 어떤지 한 번 보세요. “
“ 내가 그 집엘 왜 가요? 싫어요. ”
“ 그러면서 저랑은 옆 집에 가서 보자고 하는 거예요? ”
“ 오래된 집들이 다 그렇지.
이웃 간에 이렇게 야박하게 굴 거예요? “
“ 너무하신 건 아주머니예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저도 알아서 할게요. “
“ 그 집 도배 안 해 준다지? ”
“ 응 ”
“ 그 집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 ”
남편은 분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그냥 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거래했던 부동산으로 다음 날 아침 달려갔다.
사정을 얘기하니 사장님이 방법을 알려주셨다.
“ 내가 윗집이 거래한 부동산을 알려줄 테니
그 부동산을 찾아가.
사정을 다 얘기하고 도배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이사 들어오는 잔금일에 맡춰서
부동산에 찾아오겠다고 해.
중개업자는 하자가 없는 집을 중개해야 하거든.
새댁이 분명 부동산에 와서 다 얘기를 했는데도
그대로 거래를 진행하면 그건 부동산 책임이야.
부동산이 다 알아서 정리를 해 줄 거야. “
“ 네 감사합니다. ”
사장님은 윗집에 거래한 부동산을 알려주셨다.
그 길로 나가 윗집이 거래한 부동산을 찾아갔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부동산 사장님 내외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윗집에 전화를 하는 것 같았고
나는 옆에 가만히 앉아서 어떤 식으로 대화가 되는지 듣고 있었다.
“ 누수가 되면 도배까지 해 주는 게 맞는 거예요.
아랫집이 실크도 아니고 합지로 도배해달라고 하잖아요.
아랫집이 양보를 했으면 그 정도는 해 주는 게 맞는 거지
그것도 못 해준다고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
이런 식이면 잔금에서 도배 비용을 제하고 줘야 해요.
그쪽이 계속 도배 안 해주면 아랫집이 잔금일에 부동산에 와서
새로 들어오는 집주인한테 다 얘기한다고 하잖아요.
무슨 일을 이렇게 해요? 사람이 경우가 있지. “
부동산 사장님은 좋게 말하다 안 되겠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싸움으로 커져갔다.
전화기 너머로 윗집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윗집도 같이 고함을 쳤나 보다.
사장님은 통화를 마치고 윗집 욕을 내 앞에서도 가리지 않고 해댔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
“ 신랑이 호텔에 다니고, 애들은 다 모범생에 자기도 번듯한 직장엘 다닌다고 하더니
완전 상식 이하네. 이런 사람은 처음이야. “
“ 사장님, 저 그동안 층간 소음에 엄청 시달리고
누수랑 도배 때문에 애 먹고살았어요.
그 집 사람들이랑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해서 찾아온 거예요.
불쾌하실 수 도 있지만 사장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이사 들어온 집도 이 일을 알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저도 억울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여기 제 번호 적고 갈 테니 인테리어 업체에 전화 달라고 해주세요.
윗집이랑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
“ 알았어요. ”
문을 닫고 나오는데 부동산 사장님의 윗 집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뒤 인테리어 업체에서 도배를 하러 왔다.
다시 마주친 윗집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분통 터져했다.
“ 새댁, 착하고 순하게 봤는데 어쩜 그래요? ”
“ 아주머니가 너무 경우 없게 나오셨어요. ”
“ 뭐예요? ”
“ 그동안 층간소음 때문에 참고 살은 거예요.
이제 이사 가시니까 더는 우리 윗집이 아니잖아요. ”
아주머니는 기막혀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 후다닥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게 심보를 착하게 써야지.
‘ 내 원수는 남이 갚아준다. ‘라는 말은 허튼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