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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Jul 28. 2020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ep- 16

(  나의 친구 이야기 )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  세희야,  지금 통화 가능하니? ”

“  응,  괜찮아.  ”

“  이따 퇴근하면서 우리 집으로 들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

“  신랑은? ”

“  응, 오늘 늦는데. ”

“  알았어. 도착할 때쯤 전화할 게.  ”   

 

지애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이 다녔던 친구이다.

1남 3녀 중 맏딸이라서 그런지 철이 들고 성숙했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차분하고 순하니 친구들을 잘 챙겼다.

공부까지 잘하고 얼굴도 예뻐서 남자애들은 지애를 많이 좋아했다.  

해마다 반장이나 부반장은 항상 지애가 했다.   

 

보통 반장, 부반장 엄마들이 학교에 자주 안 오거나 활동을 안 하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지애 부모님은 일을 하시기도 하고 육성회 활동이나 학교에 자주 찾아오진 못하셔도

선생님들은 지애를 무척 예뻐하셨다.    


지애는 반의 작은 선생님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지애가 쉬는 시간이나 하교 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놀리고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있으면 먼저 챙겨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끔 만들었다.

청소를 깔끔히 잘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솔선수범했다.

지애가 있는 반은 문제가 안 생기고 싸움이나 다툼 없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지애를 자기가 맡은 반에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하셨다.

   

선행상은 매년 지애가 받았고

교무실로 심부를 갈 때마다 선생님들은 지애에게 문제집이나 간식 등을 챙겨주셨다.

지애는 선생님이 주신 간식 등을 챙겨서 동생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속이 잘 여문 아이 었다.


낯설어하고 도움이 필요한 전학생들은 항상 지애가 있는 반으로 배정됐다.

지애는 그 애들의 불안함과 무서움을 없애 주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 같은 아이 었다.    

그러나 지애는 남자 애들이라면 질색을 했다.

화이트 데이에 받은 사탕은 항상 친구들에게 나눠줬으며

남자들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는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지애는 남자 애들을 벌레 보듯이 했다.

나는 그저 지애가 장난꾸러기, 골치 덩어리 남자 애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지애를 좋아해서 가끔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남자아이들이랑 놀면 훨씬 재밌기도 한데

그걸 모르는 지애가 노는 데 있어선 나보다 한 수 아래라고 비웃기도 했다.    


모범생이던 지애가 중학교 때부터 이상해졌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병든 닭 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쉬는 시간에는 완전히 기절을 해버렸고

점심시간에는 양호실에 가서 아예 잠을 자고 오곤 했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잠을 자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고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지애는 다 포기한 사람처럼 무력해 보이기도 했다.    

착하고 순했던 아이였는데 짜증이 많아졌고 갑자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 있으려 했다.

내가 수다를 떨거나 주말에 봤던 개그 프로를 흉내 내면 항상 웃어 주던 지애였는데

웃음을 잃어갔으며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내가 자기 자리로 오는 것도 싫어하고 다가가면 책상에 엎드려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예전의 지애가 아니었다.    


지애가 나를 싫어하나 보다 생각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섞여 있는 나, 혼자 있는 지애

우리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갔다.

가끔 지애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슬픔과 눈물이 찬 눈빛이었고 한 편으로는 부러움이 가득 찬 눈이었다.   

 

‘  이상하다  ’ 생각하면서도 물어보지는 않았다.   

 

또다시 거부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학 선생님이 몸이 안 좋다고 자습을 하라고 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교탁 앞에 앉아 계셨고 아이들은 각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교실 뒤로 걸어가는데

혼자 앉은 지애 옆을 지나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목덜미와 팔, 다리에 새까맣고 보라색 멍들이 보였다.

긴 머리를 풀어 지애는 멍을 숨기고 다녔다.

무슨 일이 지애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 지애야, 무슨 일 있어?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 와. ”

  우리는 친구야.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 언제라도 “    


지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 밤부터 지애는 날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달려오기도 하고, 새벽에 전화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갑자기 들어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없이 울다가 잠이 들곤 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지애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울기만 하다 잠이 들었다.

나는 토닥토닥 지애를 토닥이다가 잠이 들었다.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한참 동안 우는 지애를 옆에 두고 나는 잠이 들곤 했다.

언젠가는 잠이 든 내 얼굴을  울먹이며 만지는 지애를 보기도 했다.   

 

“ 왜?” 하는 나의 물음에 지애는 “ 아니, 그냥......”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밤을 함께 잤다.

지애 부모님은 아침에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셨다.

내 방에서 자는 날이면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집으로 돌아가 여동생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등교를 시켰다.


부모님이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지애는 내 방에 오지 않았다.

고등학생인 큰 오빠도 있었지만 모범생은 아닌 듯했고 동생들을 챙기지 않는 것 같았다.

부모님도 지애에게만 여동생들을 챙기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았다.     

지애에게 왜 지난밤에 그렇게 울었는지 이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지애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지애야,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서 같은 대학교 다니면 좋을 텐데.......

   꼭 상고를 가야 해?  “

“  나는 빨리 취업할 거야.  그래서 얼른 독립하고 동생들을 데리고 나올 거야.

   부모님이 대학을 보내주실 만큼 넉넉하지도 않고

   착한 남자를 만나 빨리 결혼할 거야.  내 동생들도 내가 데리고 있어야지.  “   

 

지애는 중학교 졸업 후 상고로 진학을 했고

인문 계고를 진학한 나와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도 지애는 항상 받지 않았고, 지애의 부모님도 나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지애는 더 이상 내 방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갔다.     



   


지애를 다시 만난 것은 신혼집이 있는 대방동 에서였다.

마트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니 지애였다.

지애도 나를 알아봤다.

요란한 기색 없이 인사를 하고 마트 옆 벤치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회사에 취업해 남편과 결혼을 했다고 했다.

갓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서른 살 남편이랑 결혼했다고

나이차가 나긴 하지만 아빠처럼 푸근하고 좋다고 했다.

헤어진 시간을 건너뛰고 우리는 다시 중학생이 되었다,   

 

지후가 없는 주말이나 저녁에 지애의 집으로 가 저녁을 먹기도 했고

지애가 우리 동네로 놀러 오기도 했다.

수다를 떨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고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지애가 있어서 나는 동네에 정을 붙이기 쉬웠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둘이 같이 장을 보고 공원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  너 중학교 때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 한참을 울고 가곤 했잖아. 기억나?

   새벽에 오기도 하고 한밤중에 오기도 하고

   너 그때 밤길에 혼자 오려면 무섭지 않았어?

   난 무서워서 못 왔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그렇게 말없이 울기만 했어?

   한 번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궁금했어.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지 하고 그냥 말았는데

   그래도 가끔 생각나더라.  네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지금은 혹시 말해 줄 수 있어?  “    


“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을 했어. 거기서 남편을 만났어.

   남편은 너무 착하고 순진하고 나밖에 모르는 남자야.

   지금도 그렇고 너무 좋은 남자야. “   


“  너,  나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 항상 일 나가셨던 것 기억해? ”

“  응,  항상 바쁘셨잖아. ”

“  나는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어.  동생들이 너무 어렸으니까

   내 바로 밑에 동생은 세 살 차이 막내는 6살 차이

   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세 살 많았어.

   너 우리 오빠 기억나니? “    


“  기억나지.  너네 오빠 잘 생겨서 인기 많았잖아.

   친구들이랑 학교 선배 언니들한테도 그랬고

   네 동생들도 이쁘고  너네 부모님도 인물이 좋으셨잖아. “  

  

“  그렇지, 다들 인물이 좋았어.

   오빠는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어.

   부모님은 대학 진학을 원하셨지만 대학 진학은 싫다고 했어.

   성적도 안됐고 그래서 공고로 진학을 시켰지.    

   공부도 안 하고 매일 친구들하고 놀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우리 집은 오빠랑 친구들 놀이터였어.


   엄마 아빠가 집에 항상 없었고

   내가 오빠랑 동생들 어떤 날은 오빠 친구들 밥까지 챙겨야 했어.    

   우리 집 방이 두 개였잖아.

   안 방 하고 작은 방

   안방에서 부모님이랑 막내가 자고

   작은방에서 오빠랑 나 동생 이렇게 셋이 잤어.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잠을 자기에도 불편하니까 엄마 가운데 커튼을 달아줘서

   방은 하나였지만 공간은 분리시켜줬어.

   낮에는 방이 하나였지만 밤에는 커튼을 쳐서 동생과 내가 오른쪽에 오빠는 왼쪽에 그렇게 잠을 잤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면 내 팬티가 내려져 있는 거야. 벗겨져 있기도 하고


   어느 날 밤이었어.

   잠을 자고 있는데 슬그머니 커튼이 치워지면서 오빠가 내 옆으로 오는 거야.

   그러더니 내 팬티를 내리는 거야.

   물론 뭐 성폭행 뭐 이런 건 없었어.

   그냥 팬티를 내리고 여자의 성기가 궁금했는지 한참을 보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라고.    


   그날 밤 나는 떨려서 한 숨도 자지 못했어.

   이빨까지 떨려서 그 소리에 다시 오빠가 일어날까 봐 무서웠지.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 떨렸어. 다음 날 그 다음날 밤까지

   밤마다 내 옆에 와서는 팬티를 벗기는 거야.

   그리곤 다시 유심히 보고,  손으로 거기를 만지다 자기 자리로 돌아갔어.   

 

   엄마한테는 말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허리띠를 사달라고 했어.  풀기 힘든 허리띠를 골랐지.

   그리고 몸에 딱 맞는 청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매고 잠을 잤어.

   그날 밤 그 새끼가 내 옆으로 와서

   한 참을 보는 것 같더니 옆에 있는 내 동생한테 가는 거야.

   그리고 팬티를 내리는 것 같더라고.

   그 이상은 아무 짓도 못하더라.  내가 눈치챘단 걸 안 거지.    


   다음 날은 내가 허리띠를 사서 동생에게 바지를 입히고 허리띠를 채워서 잤어.

   잠옷을 입고 자겠다는 동생을 억지로 바지를 입혀서 같이 잤지.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우리는 방이 두 개뿐이었으니까 오빠랑 한 방에서 잠을 자야 했어.

   부모님한테 방을 나눠달라고 말하면 속상하실 것 같아서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밤마다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나와 동생을 지키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팬티 위에 속바지, 잠옷 바지, 그 위에 청바지, 그리고 벨트

   이렇게 입고 잤어.  동생도 그렇게 입히고 재웠지.

   그게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자다가 다리에 피가 안 통해서 쥐가 나기도 했고 아침이면 다리가 퉁퉁 붓기도 했어.

   그래도 차라리 부은 다리가 나았어.  

   다시는 나도 내 동생도 그런 일을 겪게 놔둘 수는 없었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없었어.


   나는 착각을 하고 말았던 거야.

   그 며칠들이 그냥 꿈이었다고 말이야.

   우리 오빠가 그랬을 리 없다고,  잠을 자면서 헛것을 본 거라고

   우리는 다시 편안한 잠옷을 입고 잤어.  다만 나는 전보다 잠을 깊이 자지는 못했지.

   그런데 아니었어.  꿈이 아니었던 거야.    


   부모님이 철야 근무를 하시는 날이었어.  집에 우리들만 있었지.

   우리 방에는 막내 동생까지 모두 함께 자고 있었어.

   잠을 자다가 나는 밑이 너무 따갑고 아파서 잠이 깼어.

   눈을 떠보니 내 얼굴 위에 그 새끼가 보였어,

   팬티와 바지 잠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어.


   내 옆에 동생들이 두 명이나 있는 데도........ 그 새끼는 발정 난 개새끼였어.    

   내 입을 틀어막고 팔, 다리를 제 몸으로 누르고

   내 몸 안으로 그 새끼 몸을 찔러서 밀어 넣었어.

   아랫배가 찢어지듯이 아팠어.  그렇게 배가 아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난 화장실에 그려진 이상한 그림과 야한 낙서들을 믿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날 밤 나는 그 이상한 그림과 낙서 같은 여자가 돼 버린 거야.


   소리도 지르지 못했어.  옆에 동생들이 있었으니까

   동생들이 놀랐을까 봐, 볼까 봐, 수치스럽고, 두렵기까지 했어.

   너무 힘이 세고 무거워서 아프기까지 했어.

   팔, 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만 같았어.    

   내가 반항을 하면 날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내가 당하지 않으면 동생이 당할 수도 있다 생각했고

   차라리 어린 동생보다 내가 당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

   더 이상은 날 아프지 않게 하기만, 어서 끝나기만 기다렸어.    


   그 새끼가 제 자리로 돌아가고 학교에 갈 때까지 눈도 뜨지 못했어.

   소리도 내지 못했어.  아무 일도 없는 척했지.

   동생이 흔들어 깨워도 자는 척 만 했어.

   그 새끼가 확실히 없어진 걸 알고 그 제서야 일어났어.

   눈알이 터진 것처럼 울었어.  울어도 울어도 그치지 않았지.

   온몸이 천근만근이었어.  배가 쑤시듯이 아프고, 수백개의 바늘에 찔린 듯 따갑고, 하혈을 하고

   동생들을 먹이고 씻기고 나서 나도 샤워를 하고 학교에 갔지.

   그날은 종일 양호실에 누워만 있었어.   


   하교를 하고 집에 있는데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그 새끼가 나를 뒷마당으로 끌고 갔어.

   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배를 걷어차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어, 목도 졸랐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그 새끼가 나를 건드린 게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기만 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만 봤어.


   특히나 내가 엄마랑 아빠랑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짐승처럼 나를 감시했지.

   나는 그 눈빛이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나는 그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다시 내 동생이나 나를 건드리진 않았지만

   그 새끼가 있는 방에서 내가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었겠어?


   너무나 화가 나는 건 억울한 건

   그 새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활하는 거야.    

   막내 동생이랑 장난도 치고,  자상한 오빠 노릇도 하고,

   그런 오빠를 막내 동생은 좋아하기도 했어.

   단지 나한테만 말도 걸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어.

   이따금씩 가끔 날 무섭게 노려보기만 했어.

   엄마 아빠도 둘이 싸우고,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 만한 거야.


   나도 그걸 부모님한테 말할 생각을 못했어.

   이미 끝나버렸다.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  엄마가 알면 슬퍼할 것 같아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잠이 들면 안 돼야 했어.

   밤새 두려움과 공포에 온 몸이 떨렸지.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어.  제발 밤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어.


   그 새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 때까지

   매일 밤마다 허리띠를 하고 동생에게 허리띠를 채우고 잠을 잤어.


   그렇게 해도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하루 종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몽롱했어. 공부도 하지 못했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겪지 않고 싶었으니까

   동생을 껴안고 자기도 했어. 우리 둘이 한 몸이면 건드리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잠을 자다가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첫째 동생을 안방에 업고 가서 눕힌 뒤  

   나는 너네 집으로 달려갔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네 옆에 누워야 나는 편안히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어.

   잠깐이라도 네 옆에 누워야 잠을 잘 수가 있었어.

   우리 집에서 그 방에서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어느 날 밤 내가 동생에게 허리띠를 채우고, 나도 허리띠를 하고 잠을 자려는데

   그 새끼가 나를 보고 비웃고 있더라고

   내가 허리띠를 하는 모습이 웃겨 보였나 봐


   소리 내서 막 웃더라고  “ 병신, 병신, 병신 ” 이러면서 말이야.    


   세희야,

   나 그때 참아왔던 억울함이 설움이 분노가 한꺼번에 다 터져 버렸나 봐.

   난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어.

   동생도 놀라고 난 안방으로 달려가서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지.

   오빠가 나한테 한 짓을

   엄마도 아빠도 아무 말도 못 하셨어.    


   아빠는 오빠한테 달려가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리셨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망이로 때리기 시작했지.

   야구 방망이로 죽지 않을 만큼 때렸어.

   엄마가 가서 울면서 아빠를 말리셨어.

   엄마도 울고 아빠도 울고 그 새끼도 울고 나도 울었지.   

   그런데 말이야 세희야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꿈이었을 거래.  오빠가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을 거래.  내가 잠결에 꿈을 꾼 거래.

   그 새끼한테 물어보더라고

   정말 나를 건드렸냐고?    

   그 새끼가 내가 자기를 무시해서 때린 적은 있었지만 나를 건드린 적은 없다고

   아마 내가 꿈을 꾼 거 같다고 그러더라.


   그제야 아빠가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멈췄어.

   나는 아니라고 울고불고

   분명히 내 팬티도 벗기고 나를 성폭행했다고

   배도 아프고 밑도 찢어질 듯이 아팠다고

   다음날 피도 많이 나서 양호실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고 얘기했는데

   아니었을 거라고, 분명히 꿈이었을 거라고, 꿈이 맞다고 엄마가 소리를 질렀어.    


   그러더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런 얘기하면 너도 시집 못 가고 오빠도 결혼 못한다고

   창피해서 이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이사 가야 한다고 하셨어.


   나는 시키는 대로 했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 날 이후로 나는 웃을 수가 없었어.

   내 안에서는 웃음이 사라졌지.    


   친척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우리 집에 오면  

   모두 웃으면서 tv도 보고,  얘기도 하고,  음식들도 먹었어.  

   나는 혼자 방에만 있었어. 그 새끼를 보면 구역질이 났으니까

   

   엄마, 아빠는 그 새끼를 선택한 거야.  나를 버렸지.

     

   나는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갔어.  멍하니 하루 종일 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기도 했어.

   하루 종일 기운이 빠져서 누워있기도 했어.

   고등학교 때는 증상이 심해져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

   상담 치료로는 안 돼서 일 년 휴학하고 병원에 수시로 입원했어.

   취업하려면  정신과 진료 기록과 입원 기록이 없어야 한다고

   엄마 이름으로 나를 병원에 입원시켰어.   

 

   세희야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면 약을 주는 데

   그 약을 먹으면 혀가 꼬이고 발음이 안 돼,  침도 흐르고 머리가 멍해서 생각도 못해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렇게 나는 네 번을 입원했어.    


   아빠가 그 새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넣어버렸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누구도 그 일은 입에 담지 않았어.    


   치료를 마친 뒤 복학을 하고 졸업한 뒤

   취업을 해서 나는 어서 집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했어.   

   그 새끼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엄마,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거야.

   나이도 나보다 열 살이나 많지만 나를 많이 좋아해 주고 착한 사람이라 결혼한 거야,    

   내 결혼식에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어.

   부모님도 그 새끼도 오지 말라고 했어.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지 않아.

   여동생들만 내 결혼식에 왔어.

   동생들 보는 것도 사실은 마음이 불편해.    


   그날 밤 바로 밑에 동생은 내가 그 새끼한테 당하는 걸 봤을까? 보지 못 했을까?

   물어보지도 않았지.  나도 그 애도

   그 방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싶어.   

 

   세희야

   나는 아직도 그 새끼를 죽이고 싶어.  그 새끼는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데.

   간간히 여동생들한테 소식만 들어.


   그 새끼는 나한테 용서를 빌지도 않았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어.


   나는 지금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악몽을 꾸기도 하고 아직도 억울하고 분해.   

 

   왜 나만 잠을 자지 못해야 하니?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왜 내가 힘들어야 하니?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그 새끼가 죽어야 나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그 새끼랑 나랑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는 없는 거야.   


     

   그 새끼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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