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큰 언니가 큰 오빠로 태어났다면 행복했을까
“ 오빠,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오빠처럼 매일 아침 계란 프라이를 먹을 수 있을까? ”
“ 계란 프라이가 그렇게 좋아? ”
“ 오빠 아침밥에는 항상 계란 프라이가 있고, 닭다리, 생선 몸통 맛있는 건 다 먹을 수 있잖아?
새 옷에 새 책, 새 가방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고.
오빠가 남자로 태어나서 그런 거라고 주아 언니가 그러던데.
“ 그건 내가 장남이라 그런 거야. 아들에 맏이라서 ”
“ 오빠, 큰 언니가 오빠 옷 물려 입는 거 알아? 영아 언니가 오빠 바지랑 위에 옷도 물려 입어. ”
“ 뭐? 내 옷을 영아가 입는 다고? 남자 옷을? ”
“ 몰랐어? 오빠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영아 언니는 참는 게 너무 많고,
주아 언니는 욕심이 무지 많고, 나는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아. ”
“ 그러네, 난 모르는 게 많구나. 너는 아는 것도 많네. ”
“ 모르는 게 많으면 편하데. 대전 댁 아줌마가 그랬어.
알 필요 없다고, 알면 머리 아프다고. 근데 그 말도 참 이상해.
모르면 알아야 하잖아? 모르면 배워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
“ 그래. 모르면 알아야 하지.
모르는 게 많다는 건 알 필요가 없었던 거야. 편하게 살았다는 뜻이지. “
“ 내가 보기엔 오빠가 편해 보이지는 않는데. “
“ 왜 내가 편해 보이지 않아? 아줌마 말이라면 난 속 편히 살았던 건데. ”
“ 난 오빠가 불편해 보여. 행복해 보이지 않아. ”
“ 아니야, 난 행복해. 난 행복한 거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난 그런 거 갖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아.
너희들이랑 똑같이 먹고 입고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너희처럼 여자로 태어났다면 나는 영아랑 사이가 좋았을 텐데. ”
“ 오빠랑 큰 언니랑 싸웠어? ”
“ 아니, 어디 영아가 누구랑 싸울 애니?
영아는 화를 내는 애가 아니야. 안으로 삭히는 애지.
그렇게 참으면 언젠가는 크게 터질 텐데 차라리 화도 내고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영아는 내가 미울 거야. 나같아도 그럴 것 같에.
내가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너처럼 누군가에게 물어봤을 거야.
아침마다 혼자 계란 프라이를 먹어야 하는 그 누군가한테.
혼자만 프라이를 먹으니 좋냐고 말이야.
그런데 그 누군가는 프라이를 먹고 싶지 않을 거야.
계란 프라이도 싫고. 생선 몸통도 싫고, 고기도 싫고, 닭다리도 싫고
다 같이 똑같은 밥에 반찬을 먹고 싶을 거야. 그게 제일 맛있을 테니까. “
“ 그럴까? ”
“ 그럼, 내가 여자로, 영아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나도 영아도, 엄마도 그게 우리 모두에게 더 좋았을 거야.
내가 아들로, 영아가 딸로 태어난 건 불행이야. “
8남매 장남 우리 아빠, 10남매 장녀 우리 엄마
장남과 장녀 사이에 태어난 장남 큰 오빠 민중아
오빠가 장남인 건 오빠에게 행운일까? 불행일까?
오빠는 불행이라고 했지만 언니들은 오빠를 부러워했다.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특권까지 누리며 살아왔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빠의 심성이 착하고 유순하다는 것
자신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친척들과 엄마, 아빠의 기대와 사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동생인 영아 언니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심성을 가진 오빠로 인해 그나마 오빠와 영아 언니 사이에서는 얇은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한 번도 오빠와 영아 언니가 싸운 적은 없었다.
엄마가 없을 때 주아 언니가 오빠에게 화나 짜증을 내긴 하지만 오빠는 주아 언니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빠는 자기가 오빠이면서도 영아 언니를 어려워했다.
엄마는 오빠는 아빠 다음이라고, 부모와 같으니 절대 오빠에게 대들면 안 된다고 했다.
영아 언니는 엄마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다.
할머니와 고모들이 또 우리 집에 쳐들어 왔다.
대전 댁 아줌마, 은동이 할머니 모두들 밖으로 피해 버렸다.
“ 금희, 너 우리 동원이가 월급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보내? ”
“ 어머니, 제가 센터에 다니느라 은행에 가질 못했어요.
오늘 오후에 붙이려고 했어요. ”
“ 언니, 우리가 이렇게 오빠 집까지 와서 돈을 가져가야겠어요?
그런 거 하나 야무지게 해결 못해요? 배운 게 없으면 행동이라도 빨라야지. “
“ 야, 니, 살림도 이리 밖에 못하냐? 반찬도 이렇게 많이 해서 먹어?
우리 동생은 사우디, 그 땡볕 더위에서 일하고 있는데
돈을 이렇게 팡팡 쓰면서 사는 거야?
너 혹시 니 친정에 우리 동원이가 보내는 월급 부쳐주는 거 아니지? “
“ 네? 형님, 그런 말씀을 왜 하세요? 동원 씨 월급 통장 수시로 확인하시면서.
제가 매달 월급의 반을 보내드리잖아요.
애들 넷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이 집이랑 어머님 사드린 집 은행
빚까지 갚으려면 얼마나 빠듯한데요.
저도 살림만 하는 게 아니고 밖에 나가서 일해요.
일 하면서 돈 벌어 살림에 보태 쓰고 살아요. “
” 어머, 언니 왜 눈은 치켜뜨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 큰언니한테?
새엄마 밑에서 자라 그런가? 영 싹수가 없네. “
“ 아가씨, 그게 나한테 할 소리예요? 내가 손 위인데 싸가지라니요?
그리고 아가씨도 고등학교 졸업했으면 취업을 해서 용돈이라도 벌어 쓰세요.
나는 초등학교까지 밖에 못 나왔지만, 아가씨는 고등학교까지 오빠가 보내줬잖아요?
그럼 회사 경리라도 일 할 수 있을 텐데.
언제까지 오빠가 아가씨들이랑 도련님 용돈이며 학비, 생활비까지 보내줘야 해요?
우리도 살기 힘들다구요. “
“ 그래, 너 말 잘했다. 이제야 본심이 나오는구나.
네가 그래서 생활비를 늦게 보내는 거였구나.
니 돈도 아니고, 내 아들이 벌어서 보내주는 돈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게 진짜, 네가 요새 아주 덜 맞았지? “
할머니와 고모들은 떼로 달려들어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도 한 성격은 하지만 할머니와 고모들에게는 손도 대지 못했다.
단지 시어머니와 시누라는 이유로 엄마는 힘없이 맞고만 있었다.
“ 언니, 무서워. 할머니랑 고모들 무서워.
오빠, 어떻게 해? 오빠가 좀 나가서 할머니랑 고모들 좀 나가라 그래.
엄마 저러다 맞아 죽겠다. 어떻게 해? 아줌마들을 불러올까? ”
“ 현아야, 이건 아줌마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
“ 우리 엄마 맞는 거 말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다 어디 간 거야?
아줌마랑 할머니 다 어디 간 거야?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엎어져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 안 돼! 안 돼! 우리 엄마 그만 때려. 우리 엄마 그만 때려요!
할머니, 우리 엄마 그만 때려요. 제발 우리 엄마 그만 때려! “
내가 울면서 엄마를 때리지 못하게 하자 할머니와 고모들은 더 이상 엄마를 때리지 않았다.
언니들 오빠 모두 울고 있었다. 오빠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고
언니들은 서럽게 울기만 했다. 엄마도 통곡을 하며 울었다.
아빠 없는 우리 식구들은 할머니와 고모들이 올 때마다 울기만 했다.
오빠가 점점 자라서 고등학생쯤 되자 할머니와 고모들은 엄마보다 큰 오빠를 두려워했다.
아빠가 가장 아끼는 자식은 중아 오빠
할머니와 고모들은 중아 오빠에게 함부로 하면 아빠가 참지 않을 거라는 것
오빠가 아빠에게 한 마디만 하면
할머니와 자기들에게 보내는 돈을 모두 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할머니와 고모들이 욕을 하며 엄마를 때릴 때
큰 오빠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할머니와 고모들을 째려보며 무섭게 말했다.
"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세요.
다시 한번 우리 엄마를 때리거나 욕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라고 고모들이라고 더 이상 참지는 않을 거예요. "
할머니와 고모들은 오빠의 고함 소리에 놀라 대문 밖을 나갔다.
그 이후로 할머니와 고모들은 다시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고
돈을 부치는 날짜가 늦어지면 전화로 엄마에게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를 대신해 오빠가 엄마를 보호하자 엄마는 그 이후 오빠에게 더 목을 매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오빠가 있어 든든하고 좋았다.
큰 오빠와 큰 언니는 친한 것 같지만, 친하지 않은 것 같고.
안 친한 것 같지만 친한것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였다.
큰 언니에게 오빠는 원망의 대상이지만, 오빠에게 큰 언니는 미안함의 대상이었다.
오빠는 큰 언니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한 번 대차게 치고받고 싸웠다면 나을 텐데.
서로 피하고 말을 하지 않으니 감정을 풀 만한 계기도 없었다.
나는 오빠와 큰 언니가 닮은 듯 닮지 않은 것 같았다.
언니와 오빠는 그걸 알고 있을까?
처음부터 오빠와 언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전에는 말도 하고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둘의 사이가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은 올해 여름 방학식쯤이었다.
큰 언니가 중 3으로 올라가는 올해 봄 3월
인문계 상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물어보는 가정 통지서가 언니의 손에 들려왔다.
엄마는 큰 언니 앞에서 주저함이 없이 상업계 고교 희망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큰 언니는 말없이 통지서만 바라봤다.
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면 다락방으로 올라가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한 적은 없었다.
여름 방학식 언니가 받아온 1학기 성적표의 전교 등수는 3등
언니는 성적표를 엄마에게 내밀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집안일을 계속 돕고, 혼자 알아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제발 인문계 고등학교만 보내달라고 했다.
오빠는 큰 언니만큼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엄마는 언니의 부탁을 들어 줄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언니가 애원을 했을 때도 상고에 진학하라고 했다.
언니 성적이 오빠보다 좋아도 엄마는 언니가 상고에 가야 한다고만 했다.
그 후 티브이, 라디오에서 맏딸 장녀에 관한 드라마나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 채널을 돌리거나 라디오를 껐다.
며칠을 벼르던 어느 날
큰 언니는 저녁밥을 먹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엄마와 담판을 지으려 했다.
“ 엄마, 나 인문계 고등학교만 보내줘. ”
“ 안돼, 상고에 진학해. 고등학교 졸업하고 은행 들어가면 좋은 남편감 만날 수 있어. “
“ 나는 결혼을 말하는 게 아니야.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고 대학에 가고 싶단 말이야. ”
“ 아니야. 상고에 가. ”
“ 왜 내가 대학을 가지 못하냐고? 왜? 왜? 왜?
오빠보다 내가 공부는 더 잘하는데 왜 내가 못 가?
내가 대학을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봐. 내가 딸이라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마.
나도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
그런 이유 말고 다른 이유를 말해줘. 엄마 말이 맞으면 포기할게.
다 포기할 테니까 말해 달라고. 왜? 왜? 왜? 내가 못 가? 왜 못 가냐고?
왜 내가 상고를 가야 하냐고? 나는 갈 거야. 나는 꼭 대학에 갈 거야. “
언니는 엄마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큰 오빠는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언니는 예쁜 얼굴을 잃어버렸어도 울기만 했다.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보다 자신이 상고에 진학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자신이 딸이라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를 말해 달라했다.
엄마는 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 떡도 하지 않고 눈 빛 하나 흔들리지 않으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 상고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라.
너 대학까지 보낼 돈 없다. 대학은 장남인 중아만 보낼 거다.
여자는 취직하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게 최고다.
여자에게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게 결혼이다. 직장이 좋으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 “
오빠는 엄마도 언니도 쳐다보지 못하고, 마룻바닥만 보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언니는 일어서서 나가는 오빠를 째려보다 길길이 날 뛰었다.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차서 울부짖었다.
그런 언니가 낯설었다. 무서웠다. 가여워졌다.
언니는 이제 바닥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울어대고 있었다.
눈물과 절규로는 그동안 쌓여있던 억울함을 쏟아내지 못해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울음이 아니었다.
‘ 큰 언니에겐 결혼이 대학보다 더 중요한 걸까?
오빠에게는 중요한 대학이 왜 큰 언니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
대학은 사람을 가려가며 중요했다 중요해지지 않는 걸까? ‘
나도 이해가 안 갔지만 큰 언니도 그랬나 보다.
엄마의 말은 언니에게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오빠는 학원에 다니고, 부족하다 싶으면 과외까지 시켰으며
오빠가 읽어야 한다는 책이 있으면 전집이나 세트로 책장을 다 채워주었다.
수십만 원, 수백만 원 나가는 영어 어학기에 고급 책상, 의자, 스탠드
오빠가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과 수시로 만나 상담을 했다.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오빠가 일류대학을 갈 수 있는지?
오빠에게 모자란 것은 무엇인지?
노심초사 오빠만 바라보던 엄마였고, 언니는 그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자신은 다락방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오빠가 보던 책과 문제집을 풀면 서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을 눌러댄 것이 습관이 되어
언니는 오빠와의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도 몰랐다.
언니가 그렇게 화를 내거나 엄마의 말을 거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혼자서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를 언니는 항상 안쓰럽게 생각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자신이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자신은 자식이 아닌 엄마를 도와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살았다.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두 동생
오빠는 장남이라 당연하고, 두 동생은 어려서 당연하고
오빠는 장남이라 안 되고, 두 동생은 어려서 안 되고
가족 모두를 생각해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고, 침묵하던 언니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사과하고 용서를 빌던 언니
누려야 할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먼저 포기하던 언니
일요일 오후
엄마는 교회에 갔고, 오빠는 학원에 가 있고, 작은 언니는 놀러 나갔다.
언니는 집에서 큰 오빠, 큰 언니, 작은 언니, 나의 것 모두 네 켤레의 실내화를 빨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언니는 한결같이 수돗가에 앉아 실내화 네 켤레를 빨았다.
나는 큰 언니 옆에 앉아 있다 큰 언니가 실내화를 솔로 슥슥~ 문질러 때를 빼서 건네주면
수돗물에 여러 번 헹궈서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언니가 마지막 헹굼을 하고, 실내화 물기를 빼 옥상으로 올라가
해가 나는 곳에 실내화를 비스듬히 세워 두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고 그렇게 언니는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했다.
오빠는, 주아는 왜 안 하냐고? 엄마에게 따지지 않았다.
큰 언니는 그저 조용히 소처럼 일만 했다. 그래야 엄마가 쉴 수 있고 집안이 고요했다.
소처럼 커다란 쟁기를 어깨에 걸치고, 큰 언니는 집을 끌어갔다.
우리 집의 평화는 그렇게 큰 언니의 희생을 매일매일 받아먹으며 지켜졌다.
저녁을 먹고 나면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 후
언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숙제와 공부를 했다.
나는 그 옆에서 같이 책을 읽기도 하고, 색칠공부도 하고, 공부도 했다.
초저녁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하다 어느새 스탠드를 켜고 공부해야 하는 밤이 되면
나는 다락을 내려와 잠이 들었고, 언니는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잠이 들었다.
언니는 새벽과 같이 일어나 오빠의 점심, 저녁, 언니들의 점심까지 네 개의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을 보자기에 묶어 마루에 놓으면 각자 자신의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가져갔다.
도시락을 엄마가 쌌는지? 큰 언니가 쌌는지?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테이블에는 네 개의 도시락이 쌓여 있었고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면 그뿐이었다.
그렇게 큰 언니는 매일 새벽 누가 싼 지 궁금해하지 않는 네 개의 도시락을 쌌다.
큰 언니가 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어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 언니가 포기해야 집안이 조용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언니의 희생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왔다.
큰 언니는 사막의 선인장
누구의 보살핌이나 애정 없이 자라났다.
황량한 사막에서 자라고 모든 것을 다 주다 보니
부드럽고 연한 새 싹을 틔울 수도
빨갛고 예쁜 꽃을 피울 수도
달고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었다.
언니의 몸은 따가운 가시로 뒤덮여
스스로를 찔렀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했다.
열흘이 넘게 언니는 밥을 먹지 않고, 물도 먹지 않았다. 다락방에서 꿈쩍도 안 했다.
언니의 입술은 타들어가고, 힘에 부쳐하는 것을 보면서도
엄마는 끝까지 언니의 상고 진학을 고집했다.
언니는 엄마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굴복했다.
언니와 엄마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언니는 독립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취업하고 독립해 집을 나가기를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나가길 바라고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