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당신과 멀리 다른 곳에 둥지를 틀다

세희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제삿날 아버지의 확언으로

지후는 부모와의 절연을

이제 우리 둘 만이 가족임을 선언했다.

그의 의식은 아스팔트 고속도로처럼 분명하고 선명했다.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없는 듯

아스팔트 위 스포츠 카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삿날 밤

'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악담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을 하는

부모님과 동생을 남겨두고 우리 둘만의 집으로 돌아갔다.

깜깜한 밤길을 걸으며 그의 한숨이나 후회는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본 그의 눈물은

며칠 전 시어머니와의 모진 통화 후

침대에 누워서가 마지막이었다.

갑자기 그는 일어나 전공 교수님이 써주신 대학원 추천서와 성적 증명서를 한 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것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 수학과 전자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음

대학원 진학 후 역량을 발휘할 것이 기대됨 “


두 줄의 심플한 문장을 그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곤 첫사랑이 보낸 연애편지 마냥 정성스레 봉투에 넣었다.

추억을 담은 그의 상자 안에 다시 담는다.

미안한 듯 그러나 단호한 그의 목소리


“ 세희야, 나 학원 등록했어.

자격증을 따야 해. 필수적인 자격증은 4개. 더 따면 더 좋구.

내일부터 오전에는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후랑 저녁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거야.

경력이 없어서 자격증은 취직할 때 필수야.

얼른 자격증을 따고 취직할게.

취직하더라도 중소기업에 들어갈 거고 아마 박봉일 거야.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네가 고생을 좀 해줘. “

“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일하면 둘이 살기에 충분해.

나중에 내가 공부하고 싶을 때 그때 오빠도 날 밀어줘야 해.

얼른 자격증 따고 취직해서 집도 사고 아이도 낳자.

내가 주말까지 과외를 하면 더 벌 수 있어. 공부에만 집중해. “


지후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수업 후 도서관으로 직행해서 공부를 했다.

학생 때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아쉬워 하긴 했지만

그의 눈빛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하는 그가 나는 좋았다.

부모는 자식이 밥 넘기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다고 했는데

그의 엄마는 아니지만 밤늦게 돌아와서 공부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다시 그가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흐뭇했다.


‘ 내가 일하면 되지. 이제 우리 둘이 속 편하게 살자. ’

전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민 과장님이 소개해준 회사로 이직했다.

정이든 회사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일단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회사는 집 근처여서 출, 퇴근 시간이 절약되고 주말에도 시간이 났다.

나는 평일엔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엔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친구 동생들을 가르쳤고 결혼 전에도 과외를 했었다.

결혼을 하고 과외를 멈추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주말에 하는 과외는 입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대기하기 시작했다.

월급 외에 과외로 발생하는 수입은 짭짤했고 달달했다.



옮긴 회사가 복병이었다.

전처럼 평화롭고 속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고, 사장은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했다.

업무에 실수가 있거나 실적이 떨어지면 정신없이 깨졌다.


' 와장창창 ' 재활용함에 던져져 깨지는 유리처럼

멘털이 깨진 신입 사원들은 티슈를 공중에 날리 듯 사표를 날렸다.


나는 참아야 했다.

지후가 자격증을 따고 취직을 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매달 필요한 생활비와 공과금, 세금, 보험, 지후의 학원비,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사장은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냉정하고 철두철미했다. 인정은 없었으나 비합리적이진 않았다.

그 점이 오히려 더 좋았다.

잘하면 되니까. 부지런히 배우고 늦게까지 혼자 남아 업무를 파악해야 했다.

어차피 지후는 도서관이 끝나는 12시쯤 집에 오니

야근을 해서 시간을 맞췄다.

점점 일을 배우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으며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직장 내 분위기는 초겨울 강위의 살얼음처럼 위태위태 했다.

모두들 살얼음을 깨지 않고 어떻게든 강 건너로 건너야만 했다.

불안함 만큼 예민함이 커져 양보나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프로젝트 실패 시 내 실수가 아닌 동료의 실수를 증명하기 위해

객관적인 증거를 항상 준비해두어야 했다.

정신적인 피로가 쌓여갔다.

살아남으려면 상대를 정확히 찔러야 한다.

차마 그럴 수 없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서라도 찔러야 했다.

지후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이렇게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인 지

옮긴 회사에서 알 수 있었다.


가장의 무거움

일이 힘들 때마다, 정신없이 깨질 때마다

매일 아침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소들이 생각났다.

가장들은 매일 아침 도축장으로 끌려가듯 출근을 한다.

새끼들과 식구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고 그렇게 수십여년을 출근한다.

주택 자금 대출

관리비 생활비 보험금 핸드폰 요금 세금과 공과금 그리고 절대 줄일 수 없는 교육비

매달 정기적으로 지출해야 할 돈은 아이처럼 자라는 데

해마다 연봉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정도로만 올라간다.

학원 보낼 돈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가르쳐야 하는 데, 그럴 돈이 없는 부모 마음은 피눈물이 난다.

맛있는 음식, 멋진 여행, 브랜드 옷, 명품 가방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즐기지 못하는 것보다

자식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주지 못하는 것

교육비가 없어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부모 마음이 더 쓰라리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나와 지후만 있어 단출할 때 집 장만을 마쳐야 한다.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지후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반년도 되지 않아 자격증을 모두 따버렸다.

대학시절 공대 선배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 이 년씩 노량진 학원으로 다녔는데

그는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필요한 모든 자격증을 따냈다.

그가 기특하면서도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실소도 나왔다.

내가 일, 이년 죽자 살자 해야 할 공부를 그는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우리는 너무나 기뻐 축하 케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지후는 직업 사이트에 이력서와 각종 서류를 올렸다.

며칠이 안 돼서 면접을 보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기대했다. 그가 곧 취직해서 내가 곧 편해지리라고

하지만 면접을 본 회사는 인력회사였고 대기업에 직원을 파견하는

아웃소싱 이른바 파견 직원이었다.

나는 아웃소싱이라는 형태의 파견 직원을 잘 알지 못했다.

지후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했다.

지후는 나이가 많아 대기업에는 응시가 불가능했다.

근무하는 곳은 대기업이었지만 계약직 직원도 아닌 파견직 직원이었다.

연봉은 이천 사백이 겨우 되었다.

세금을 떼면 백칠십에서 팔십 정도였다.

실망은 했지만 드러내지는 못했다.


‘ 우리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둘이서 힘들어도 잘 이겨내자고 ‘ 지켜야 한다. 우리의 약속을


“ 괜찮아.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야. ” 서로를 위로했고

“ 걱정하지 마.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니까. ”


지후의 자신 있는 목소리와 표정은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알고 있었고 믿었다. 그의 힘을, 능력을


‘ 이것보다 더 힘들었어도 잘 살았어.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


나는 나를 위로했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은, 약속들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지켜질 것이다. 전처럼, 모든 것들이 다.

나이 든 신입사원 지후는 첫 직장이 신기한 듯했고 재미있어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직장 내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적응도 빨랐다.

그가 행복한 신입사원으로 회사를 다니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직장 내에 현명한 멘토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지후도 그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김명훈 팀장님. 팀장님은 지후를 눈여겨보았다.

처음엔 지후가 거슬렸다. 나이가 많은 것도, 그의 스펙도

그는 지후가 곧 사표를 쓰고, 스스로 나가 떨어질 것을 예상했다.

나이가 들어 첫 직장 생활 적응에 업무 파악도 힘든데

지후는 일을 배우는 속도도 업무의 정확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가 만들어낸 업무 폼은 회사 내 정식 폼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국가고시에 계속 응시하고 합격증을 받아

회사 내 축하금과 격려금을 연이어 받아냈다.

직원 중에도 그런 전례는 없었으므로 회사 내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팀장은 지후를 불러

회사 내에서 본사 계약직 직원을 뽑으니 이력서를 내라고 했다.

대학 졸업장과 따놓은 자격증과 팀장의 추천서가 있으면

합격이라고. 자리가 났으니 지원하라고 했다.

지후는 얼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고 응시했다.

팀장은 지후가 현재 근무하는 인력 회사에 우수한 인재이니 이렇게 두면 안 된다고

회사에 불이익이 가지 않고 차질이 없도록 처리하겠다고 했다.

기업에 파견 간 계약직 직원은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이 간다.

팀장은 지후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사표를 내야 하는 지후로 인해 파견 회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든 것을 손보았다.

그는 멘토이자 은인이었다.

서류 심사를 거쳐 합격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이주가 걸렸다.

나는 합격을 확신했으나 그는 불안한 듯했다.

계약직 직원으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나는 당연한 듯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 아니? 그럼 떨어질 줄 알았어? 당연히 합격이지. ”


우리는 별다른 축하 의식은 벌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갈비 집에서 갈비를 뜯고 맥주 두 어병을 나눠 마셨다.

알코올에 약한 나였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 거봐, 내가 말한 대로 다 됐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

“ 세희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 그래,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나한테 잘해. ”

우리는 이제 부부를 넘어서 동지가 되었다.

사랑보다 끈끈한 전우애가 생겼다.

지후가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아

다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이번엔 중소기업의 경력직 사원이었다.

지후는 업계에서 점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또 이직을 권유했다.

대기업 계약직보다는 중소기업이지만 정식사원이며 연봉도 높여 갈 수 있다.

게다가 복지와 처우 모든 것이 좋다.

정년 보장에 앞으로 회사의 높은 성장 가능성

지후가 옮겨야 할 이유를 나열했다

이번에도 지후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가 ' yes ' 를 하고 다시 이직했다.

지후는 2년 동안 두 번의 이직을 했으며

처음에 계약한 연봉보다 세 배가량 몸값을 높였다.

팀장님은 지후를 계속 앞으로 끌어주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 취업을 해서 계속 근무했다면

그 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었지만

힘든 길을 돌고 돌아 어렵게 간 그에게는 큰 금액이었고 만족할 수 있었다.

지후는 무쇠처럼 단단해졌고 겸손해졌으며 작은 일에도 감사했고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아 모두에게 친절했다.

옮겨간 회사는 그를 임원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지후를 격려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흙탕물 속에서도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보석이므로 빛을 반드시 낼 것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알았다.

그의 가치를, 총명함과 성실함을

지후는 항상 기본에 충실해 왔고 성실했다.

시험 날짜가 정해지면 그는 데이트 중단을 선언했다.

중앙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거나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밥을 먹을 때만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높은 학점을 받아 사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 듯이 연애하고, 여행을 가고

우리는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더욱 믿었는지 모른다.

원석이지만 가공을 하면 보석이 된다.

보석은 반드시 빛을 낼 것이고 가치를 드러낸다.

그를 알아볼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기뻐하는 그에게 나는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 자, 축하 선물이야. ”

“ 이게 뭐야? ”

“ 아파트 계약서 ”


나는 회사 근처 급매로 나온 작은 아파트를 지후와 상의도 없이 계약해버렸다.

자주 들락거리던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

“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해. 동도 좋고, 층수도 좋아. “

내가 출근을 하며 항상 노려보던 24평 아파트를 드디어 사버렸다.


‘ 내가 언젠가 저것의 주인이 되리라. ’


나의 다짐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지후가 반대하지 못하도록 가계약금 오백은 이미 송금해버렸다.


“ 잘했어, 잘했어. 정말 잘한 거야.

이렇게 집 장만하고 평수 늘려서 계속 살림살이를 늘려가야 해.

남자들은 원래 심장이 약해서 다 뜯어말려. 그래도 남편 말 들으면 안 돼.

집은 여자 뜻대로 해야 해. “


사장님은 축하한다며 복비도 이십만 원 깎아주셨다.


“ 현재 전세금에 주택 자금 대출을 받자.

적금을 탄 것과 둘의 연봉을 합치면 5년이면 충분히 갚을 수 있어. “

“ 너 이렇게 큰 일을 나랑 상의도 안 하고 한 거야? ”

지후는 벌컥 큰소리로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낸 것은 본 적이 없다.

나도 지지 않았다.

“ 급매로 2천이나 싸게 나왔어.

아이도 낳아야 하고, 내 집에서 맘 편히 살고 싶어. “

“ 아무리 그래도 말은 하고 나랑 의논도 해야지?

니 맘대로 이렇게 일을 벌이면 어떻게 해? “

“ 이제 오빠 연봉도 많이 올라갔고

대출금이 많긴 하지만 유치원 들어가기 전까진 아끼고 살 수 있어.

집은 일단 사놔야 해.

나 믿고, 어려워지면 내가 다시 주말 과외할 테니까

이번엔 나를 믿고 따라줘. 이미 계약금 오백 보냈어. “


지후는 화를 내다가도 어이없어하다가 이내 체념한 듯했다.

“ 너 참 간도 크다. 어떻게 이억도 넘는 집을 이렇게 계약해버리니?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있고, 너무 부담스러운데.

겁도 없다. 겁도 없어. " 나는 그에게 미소를 날려 보냈다.

" 계약금 오백을 날릴 수도 없고, 그래, 이왕 일 벌인 거 한 번 해보자. “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첫 집을 마련했다. 드디어 진짜 우리 집이 생겼다.

나는 이제 우리 집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지후와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할 것이다.

나와 그는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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