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한 때는 우리라 생각했었지

지후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 오빠, 먹어봐. 진짜 맛있지? ”

“ 이사 떡이야? 시루떡이 아니네? ”

“ 응, 시루떡보다 찰떡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이걸로 했어.

비싸긴 한데 그래도 큰 마음먹고 했어.

기왕이면 좋은 거, 맛있는 거 먹으면 좋잖아. 다들 고맙다고 하시고 좋아했어.

이사 떡 먹는 거 정말 오랜만이래.

아랫집 할머니는 떡 받으시고 좋아하시더니 아까 찹쌀이랑 열무김치도 갖다 주셨어.

너무 고맙다고 기분이 너무 좋다고, 내 손도 막 잡더라.

근데 나 막 눈물이 나올라고 했어. 너무 좋아하시고 고맙다고 하니까.

왜 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할머니랑 나랑 눈물이 그렁그렁 했어. 다행이야. 눈물이 떨어지지는 않았거든.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두 분 이서 사신대. 손주들 키워주시면서

아들 내외는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들 보러 오기가 힘들데.

정이 많이 그리웠던 것 같아. 나를 보니 아들이랑 며느리가 생각났나?

아이들이 불쌍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럽더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랑은 다르다는 데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고, 좀 부럽기도 하고 “


“ 부모가 주는 사랑이랑은 다르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무리 좋은 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좋지 않을까?

“ 그렇지, 아무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도, 부모만큼은 아니겠지, 아이들이 짠하네.

어린 아기들이랑 떨어져서 살면서 일해야 하는 부모 마음이 참 아프겠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런 자식이랑 손주들 보는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

“ 힘드시겠다. 나이 들어서 아이들 키우기 힘든데. "

우울해하는 세희가 보기 싫어 얼른 말을 돌린다.

“ 세희야. 우리도 아파트 살면서 이사 떡 받은 기억은 없는데. 잘했어. 참 맛있다.

회사는 어때? 다닐 만해? 사장이 엄청 까다롭다며? ”

“ 응, 힘은 드는 데. 그래도 괜찮아.

깨지면서 배우는 거지. 집 이랑도 가깝고

조금만 더 배우고 나면 나중에 내 것 작게 차리든 동업을 하던 할 수 있을 것 같아.

민 과장님도 부지런히 배우고, 나중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사이즈 작은 회사를 차리자고

꾹 참고 다니라고 했어. “


“ 그래, 일단 좀 참고 다녀봐. 옮긴 회사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지. ”

“ 오빠는 어때? 괜찮아?

회사를 자꾸 옮기니까 사람들하고 정도 못 들고 좀 그렇겠다.

“ 응, 그렇긴 해도 옮긴 회사가 나아.

나중을 생각해도 그렇고, 이제 여기서 3년 이상은 다녀야 해.

더 이직하면 업계에서 소문이 안 좋게도 날 수 있고, 일단 다니고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그때 이직해도 되고.

세희야, 우리 여행 좀 다녀오자.

짐 정리도 다 됐고, 우리 한 동안 여행도 못 다녔잖아.

서로 고생했으니까 가서 좀 쉬고 오자. 날짜 맞춰서 다녀오자. “

“ 그래, 날짜 맞춰 보자. ”


첫 집을 장만하고 우리는 불필요한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장만한 집에 있는 것이 마냥 좋고 편했다.

퇴근 후 호프집에서의 맥주 한잔도, 영화관에서 개봉작을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쇼핑도 삼가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모든 것을 집에서 하기 시작했다.


“ 오빠가 뒤에 앉아. 내가 앞에 앉아야 할 걸. “

“ 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앞에 앉아야 하는 데. ”

“ 그러니까, 내가 몸무게 더 나갈 것 같은데 ”

“ 어? 뭐라고? 네가 더 나간다고? 나보다? ”

“ 나 요새 살이 8킬로나 쪘어.

매일 야근하면서 야식 먹고 앉아만 있었더니. 장난 아니야. “

“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네가 나보다 더 나가면 어떡하니?

그래도 같은 몸무게는 돼야 하는 거 아니야? ”

“ 몸무게 가지고 남녀 차별하지 말자.

여자가 더 나갈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고정관념은 버리자.

오빠가 너무 말랐어.

나는 앉아 있으면 살이 찌는 데 어떻게 오빠는 더 빠지지?

나 고 3 때는 70킬로 넘었어.

매일 앉아서 공부만 하고 밥 먹으니까 일 년에 5킬로씩 찌더라.

공부하면서 살이 빠지는 애들은 뭐지?

난 그런 일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참 신기해.

40킬로였던 게 내 인생에서 언제더라? “

“ 세희야, 건강을 위해서라도 빼야겠다. 나는 상관없는 데

우리 이제 아이도 가져야 하잖아. 그러니까 빼야 해.

임신성 당뇨가 올 수도 있고. “

“ 알았어. 운동하고 저녁 안 먹으면 금방 빠질 거야. ”

“ 내가 너 연애 때부터 맨날 살 잘 빠진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말만 하지 말고 보여줘 봐. 얼마나 살이 잘 빠지는지 “

“ 알았어. 빼야지. 나도 계단 오를 때마다 너무 힘들어. ”


쓰레기를 버리거나 분리수거를 하러 가면서 우리는 가끔 놀이터에 들러 시소를 타기도 했고

세희가 그네를 타면 저 멀리 밀어주기도 했다.

세희는 눈을 감고 그네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눈을 감으면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밤에 슈퍼에 갔다 들어가는 길에

정자에 벌러덩 드러누워 세희가 좋아하는 별과 달을 함께 보다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았다.


세희는 얼른 돈을 모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고

절약 모드로 전환했다.

세희의 회사 근처로 우리는 새 집을 장만했다.

원래는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하려고 했으나 직장도 가깝고 서울로 집을 장만하는 게 좋을 거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충고로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덜컥 집 계약을 하고 나에게 통보하였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겁이 났다.


‘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나? ’

걱정이 앞섰지만 세희는 다 알아서 할 터이니 두고 보라고 했다.

말린다고 해서 들을 아이도 아니고

이미 계약금은 보낸 상태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전세금에 만기로 탄 적금, 비교적 싼 대출 이자면 금방 갚을 것이다.

우리 둘이서 더 부지런히 일하면 되는 거지.

매일 답답하고 좁은 독서실에서만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새롭고 재미있었다.

중, 고등학생을 가르치다 성인들과 일을 하니 대화도 통했다.

수학과 물리에 대해 얘기하지 않게 되어

야구와 부부 생활, 친구, 내 집 장만 , 보너스 , 성과급

어른들의 얘기를 나누니 이제 살 만할 것 같았다.

‘ 대학원이나 취직을 해서 다녔다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다녔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이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가지지 못했으므로 현재의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긴 삶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잘 된 일 일지도 모른다. '


현우도 장가가서 아내와 함께 살 집을 장만한 것이나 다름없고

부모님의 노후도 다 마련했다.


이제 세희와 나만 부지런히 일해서 대출금도 갚고, 아이도 낳고 살아가면 된다.

우리 둘이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지금까지도 잘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옆에 세희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 전까지 나는 어린아이였다.

세희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서서히 남자가 되어갔고

마침내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했다.

외롭기는 했지만 그건 누구나 다 감당해야 할 몫이다.

세희가 있어서 외로움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고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힘이 희망이 생겼다.



“ 오빠, 여기서부터는 내가 운전할게. 옆에서 좀 자라. 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내가 조심해서 할 게. 걱정하지 말고 자. “


춘천부터는 세희가 운전을 했다.

이제는 제법 운전 실력이 늘어서 운전대를 맡기고 옆에서 자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세희는 강원도를 좋아한다.

강원도는 산과 바다가 있어 한꺼번에 두 곳을 모두 갈 수 있어서,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했다.

세희는 강릉을 양양을 그중 설악산을 좋아한다.

그리고 해변이 넓은 바다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바닷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큰 바다는 탁 트여서 좋고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은 한적해서 좋아했다.

여름철에는 바다에 자주 갔다.

하조대나 작은 해수욕장 바다 앞 해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한 없이 바다를 보기도 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듣기도 했으며 하루 종일 책을 보기도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서 한참을 앉아 수다 떨기 좋아했다.

매년 단풍철이 되면 울산 바위가 보이는 숙소를 미리 예약해서

발코니 문을 열어 놓고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울산 바위만 바라보기도 했다.

먹을 것을 사서 숙소에서 먹으며 울산 바위만 바라봤다.


“ 오빠, 나는 말이지. 저 울산 바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꼭 부처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야구 글러브 같기도 한 저 바위를 보고 있으면

저 바위를 눕혀놓고 그 위에 뒹굴뒹굴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고 싶어.

바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무 걱정이 없어진다.

나쁜 일은 저 바위가 다 막아 줄 것 같아.

크고 힘이 센 남자의 억센 손 같은 저 바위가 나를 푸근하게 안아주고 보호해 줄 것 같아.

난 꼭 한 해에 두 번은 울산 바위를 봐야 해. 그럼 저 바위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확신이 들어. “

나는 친구랑 있는 것보다

오빠랑 있는 게 더 편하고 재미있는 데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데.

직장 사람들이랑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면

남편보다 친구들이랑 있는 게 더 좋다는 데.

그게 다행인 건가? 아님 불행인 건가?

오빠는 어때? 오빠도 나랑 있는 게 친구들이랑 있는 것보다 더 좋아? “

“ 그렇지. 너랑 있는 게 더 편하지. ”

“ 아니, 편한 거 말고, 더 좋냐고? ”

“ 그럼, 좋지. 그 말이 그 말이야. ”

“ 그래, 그럼 이렇게 우리 사이좋게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

싸울 때도 있겠지만 잘못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빨리 사과하자. “

“ 그래, 그러자. 계속 사이좋게 지내자. ”


우리는 그 날 아이처럼 약속을 했다.

사이좋게 잘 살기로.

싸우지 말고, 잘못을 한 사람이 고집 피우지 말고 빨리 사과하고,

반대편은 약 올리지 말고 빨리 용서하자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약속을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이 약속을

세희는 몇 번이고 말하고, 또 말하고, 내 다짐을 받아냈다.


“ 말로는 쉽지? 근데 이거 진짜 어려운 거야. 이것만 잘해도 잘 살 수 있어.

이것만 지키면 되는 거야. “


‘ 그래 가장 기본적인 게 가장 중요한 거지. 맞아. 세희 네 말이 맞아. ’


그날 밤 우리는 피임을 하지 않았다.

계획을 한 건 아니지만, 아이를 갖자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하늘이 우리에게 아이를 내려 주실 것 같았다.

만약 아이가 생기면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잘 기르자고 약속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세희는 한 달여가 지난 아침.

보라색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주었다.


“ 이거 봐. 이제 우리는 부모가 되는 거야. ”

“ 고마워, 세희야. 우리 잘 키우자. “


세희가 무리하지 않고 회사 일을 해야 하는 데 나는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이번만은 절대 아이를 잃어서는 안 된다.


“ 세희야, 회사를 좀 쉬면 안 될까?

휴직계를 내면 안 돼? 아니면 그만둬도 되고.

너 그동안 많이 힘들었잖아. 이젠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 “


“ 안 돼, 아직은. 무리하지 않고 일하고 있고

내가 너무 힘들면 알아서 잘할게.

걱정하지 마. 나도 이 아이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


알아서 잘할 세희이지만 겁이 났다.

사 개월 가량 심했던 입덧은 이제 잦아들었다.

세희도 이제 살만한 지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빠졌던 살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자고, 편안히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마음이 놓인 나는 이제야 일을 편히 할 수 있었다.



퇴근 무렵

스마트 폰 벨이 울리며 화면에 익숙한 글씨가 뜬다.

' 엄마 ' 이 년만의 전화였다.

간간히 오던 전화였지만

나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본가에 가지 않았다.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나에게 전화를 하지도 않았고 현우도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서로에게 남이 돼 버린 것이다.

엄마만 가끔 전화를 하다 거의 이년이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 지후야, 잘 지내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

내일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보자. 은서랑 같이 보자. “

“ 응, 잘 지냈어. 내일? 알았어. ”


안부를 묻기만 하다 얼굴을 보자고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집에 와서 세희에게 물어보니 세희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시간이 더 흘러 편안히 볼 수 있을 때 그때 보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엄마를 보러 나갔다.

이년 만에 본 엄마는 많이 나이 들어 있었다.

흰머리를 염색하지도 않았고, 피부는 탄력을 잃었고, 주름이 늘었고 깊어졌다.

생기 있어 보이지 않았다.


“ 은서는? ”

“ 요새 회사일로 바빠서 못 왔어. ”

“ 그래, 그렇구나.......”

“ 잘 지내세요? 아빠도? 현우도? ”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나를 쳐다보았다.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지 한 때 ' 우리 '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지.

' 우리 ' 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지.


나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만 내려다보다

엄마를 보았다.

순간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운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겁이나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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