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영자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서울을 떠나다.


독서실에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가더니

학생들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치아들이 듬성듬성 빠진 잇몸처럼 휑하다.

탈모가 진행되어 훤히 보이는 두피처럼 허전하다.

애가 탄다는 말처럼 내 속이 타들어간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속이 쩍쩍 갈라진다.

갈라진 틈 사이는 점점 벌어져가며 깊어진다.

이제 더 이상 식물은 자랄 수 없는 불모지처럼 독서실은 황폐해져 갔다.

월말이 될수록 내 한숨은 깊어진다.

정산을 하다가 오류가 없는지, 시력이 나빠졌는지 두 눈을 비벼본다.

지후가 그만둔 시간에 비례하여 학생들은 점점 더 빠져나갔다.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학원으로 쌩하니 돌아가는 학생들처럼 가게를 빠져나간다.

귀신이 나오는 폐교도 아닌데 아이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나 하루, 이틀 뜨내기 손님들이 전부이다.


한 달 이용료를 반값도 아니고 1/3 가격으로 낮추었는데도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다.

그 전엔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웃던 아이들이었는데

눈이라도 마주치면 병이라도 걸릴 듯

나를 피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눈 길 조차 주지 않는 다.


‘ 당연한 것이 아닌가? ’


주변에 새로 오픈 한 독서실의 숫자는 뚝배기에 가득 차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처럼 보글보글 넘쳐댔다.

게다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맛도 좋았다.
명퇴를 하거나 마땅히 할 것이 없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독서실을 쉽게 차린다.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꾸미고, 가격을 동네 최저가로 낮추고 일 년을 버틴다.

그러면 한 달, 한 달을 간신히 버티는 영세한 독서실들은 두, 세 달이면 나자빠진다.

우리처럼 가게 주인도 버티기 힘들다.

매달 내야 할 전기세와 관리비, 직원들 월급 등 고정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한 놈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가게들은 맥없이 폐업을 하게 마련이다.


태양은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강렬한 햇빛은 죽음을 재촉하게 한다.

길고 가늘게 붙어있는 숨 줄을 태우고 말라죽게 만든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프랜차이즈 독서실들은 동네 독서실들을 고사 시켰다.

동네의 독서실들을

체급이 작고 체력이 바닥인 순서대로 ko 시키기 시작했다.


지후가 가게 카운터에 마을 입구 장승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을 때

은서가 장승 옆 솟대처럼 나란히 앉아 있을 때

학생들은 먹이를 주면 몰려드는 연못 안의 잉어들처럼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입을 벌리고 빠끔 거리면서

자기를 들어가게 해달라고 숨도 쉬지 않고 빠끔거렸다.

우리 독서실은 규모는 작았어도

경쟁 독서실들이 몰래 염탐을 올 정도로 입소문이 자자했고, 시샘을 받았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다가도 막히는 게 있으면

지후에게 찾아가 물었고

전문 수학 학원의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사실은

집에 있는 금 부처처럼 금 두꺼비처럼 자기만 알고 남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소문을 내기 좋아하고 ,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이들은 소문을 내기 시작했으며

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삽시간에 소문은 퍼져나가

엄마들은 웃돈을 얹어주고 우리 가게 이용권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구입했다.

몇 달여를 기다려야 하는 대기도 감사히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사거리와 역 앞의 가게를 사서 규모를 키우고 재산을 불려 나갔다.

밤이 되면 돈을 세는 것이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 돈을 세는 기계도 구입했다.

게다가 은서가 퇴근을 일찍 하거나 주말에 지후가 근무하게 되면

부부가 나란히 앉아 지후는 수학과 물리 화학을

은서는 영어를 학생들에게 공짜로 알려주었다.

둘이서 나란히 앉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면

기름기가 진득한 고기를 배불리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하고 허기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뷔페에서 몇 접시를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

은서는 아이들과 친하고 예뻐했고

아이들은 “ 언니, 누나 ” 하면서 살붙이처럼 잘 따랐다.

제 돈을 주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여름철이면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는 따끈한 붕어빵을 자주 사다 주곤 했다.

나이 어린 새댁이 50대의 아줌마처럼 통도 크고, 부끄러움도 없는지

몇 개의 김치 통에 떡볶이를 잔뜩 만들어 실어 와서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어서 먹으라고 배가 든든해야 공부한다고

자기 새끼도 아닌데 자꾸만 먹으라고 학생들 입에 떡볶이를 떠먹이곤 했다.

쫌스럽지가 않아 좋았다.

통이 크고, 인정이 많고, 거침이 없어 좋았다.

남들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 은서가 좋았으면서도 되려 미웠다.

곱상한 색시처럼 야리야리하고 예쁘지는 않았지만

지후에게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처럼 은서는 지후 옆에 있었다.

지후는 나무 옆에서 비도 피하고 햇빛을 피할 수 있다.

뿌리가 깊어 흔들리지 않고 고사하지 않는 나무처럼 지후 옆을 지킬 아이라는 것을

수개월이 지나 나는 알아차렸다.


‘ 저 아이는 지후 옆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후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 다 나의 곁에 항상 있을 것이다. ‘

땅이 지후라면 은서는 나무이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도 그 자리 그대로이다.


나의 오만함이, 두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실수였다.


은서는 나무가 아니었다.

원하는 곳이 어디든 움직일 수 있고,

삶의 터전을 옮겨 다시 뿌리를 내리는 들풀 씨앗 같은 아이였다.

때를 기다렸다 부는 바람을 타고 움직여

새로운 곳에 정착해 군락을 만들어버리는 민들레 홀씨 같은 아이였다.

땅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적합한 땅을 찾아 바람을 타고 이동했다.

바람같이 가벼운 아이였다. 질기고 강인한 아이였다.

지후를 움직여 함께 떠나게 할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지후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후가 나를 그렇게 잘라내 버릴 줄은

우리를 오려 내리는 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없을 것 같았다.


지후와 은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버렸다.

남아있는 것들에 미련이나 욕심은 없는 것처럼 훨훨 날아가 버렸다.

겨울이 되어 본능처럼 이동을 하는 철새처럼 주저함이 없이 날아가 버렸다.

나는 지후를 은서를 얕보았던 것이다.


남아있는 현우를 믿어보았지만

현우는 아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공고를 졸업한 이후 멈추어 버린 그 상태 그대로였다.

분명 지후가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기댈 수 없는 아들이었다.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빨랐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그저 출,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고

시간이 지나 월급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매달 내야 할 아파트 관리비며 공과금 각종 세금 보험 통신비

내야 할 돈은

배고픈 새끼 새 마냥 입을 쩍쩍 벌리고 새빨간 혀를 보이고 있는 데

돈이 나올 구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손을 놓고 있었다.


지후에게 전화를 했다.


“ 지후야, 다시 돌아와서 독서실을 같이 운영하는 게 어떠니? “

“ 아니,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지금 생활이 행복하고 만족해. “

“ 가게가 많이 힘들어, 매달 적자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네가 알다시피 현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히 지후에게 설명했다.

지후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지후는 가게를 정리하라고 했다.

더 이상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가능성이 없고 경쟁력이 없으니

차라리 가게 두 곳에서 나오는 월세로 아끼며 생활을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현우는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은 다시 돌아갈 뜻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지후를 움직이려면 은서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사정을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나에게 사과해야 다시 돌아오겠다는 은서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차라리 가게를 접는 한 이 있어도 은서에게 사과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개월이 지나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우리 가게도 폐업을 했다.

독서실 물건들과 비품들은 모두 중고거래로 싸게 처분하거나 폐기처분해버렸다.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

싼값에 월세를 냈다. 그 돈이면 세 식구 살아갈 수는 있다.

현우는 어차피 실업 급여가 나온다며 돈이 나올 때까지 놀겠다고 했다.

남편은 여기저기 알아보는 눈치였다.

월세가 나온다고 해도 매달 고정비에 생활비 용돈을 대는 것은 팍팍하였다.

나도 일거리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다.

남편은 지인이 하는 작은 회사에서 자리가 있다고 출근을 했다.

나가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남편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 빈혈, 이명이었다.

철분 수치도 너무 낮고, 각종 검사를 해도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 일거라며, 마음을 편하게 가질 것을 권했다.

초보 의사도 할 수 있는 고 함량 비타민과 철분약을 처방했다.

남편은 그대로 집에 돌아왔지만 어지럼증과 빈혈 이명 증상은 여전했다.

남편은 지후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지후의 마지막 인사를 용서할 수 없는 듯했다.

자기는 부모가 없는 고아라고 생각할 테니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떠나겠다는 지후를

남편은 여전히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아파트를 팔고 한백에 내려가자고 했다.

그 돈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여생을 보내자고

남은 삶을 거기서 보내자고 했다. 이제 서울에서의 삶은 지겹다고

현우는 빌라에서 살게 하고 두 가게에서 나오는 월세면 둘이 살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 대방동의 아파트는 지후에게 주기로 했는데. '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한백에서 땅을 다지고 집을 짓는 동안

현우는 실업 급여로 시간을 보내며 쉬다가 역 앞에 있는 가게를 자기가 쓰겠다고 했다.

형은 대학도 나왔지만 자기는 공고밖에 졸업을 하지 못했다고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회사에 들어갈 능력도 없으니 친구들과 동업을 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을 빌릴 여력이 없으니 옆 앞에 있는 가게를 사무실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이제 남은 자식은 현우뿐이라며 현우에게 가게를 쓰게 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한백에 땅과 집

사거리 가게에서 나오는 월세가 다였다.

이제는 지후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다.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우리가 죽어야만 지후가 가 질 수 있게 되었다.

은서의 말이 예언인지 그렇게 될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는지

그대로 되어 버렸다.


한백에 내려가기 전 지후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서울에 내려 올 일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지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지후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지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 각오하고 있었어. 이렇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한백에 가서 편안히 잘 사세요.

현우도 정신 차리고 좋은 여자 만나겠지.

내가 두 분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그때 찾아 갈게요.

은서가 아이를 가졌어.

아이를 키우면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중에 편안히 얼굴 볼 수 있을 때 그때 봐요. “


‘ 나중에 다 네 것이니 부모를 믿고 기다리라. ’ 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지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다.

나는 용서를 구할 염치도 없었다.

지후도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야 했다.

지후와 은서 그리고 태어날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죄를 지어 야반도주하듯 그렇게 서울을 떠났다.

' 언제쯤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예전처럼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마주 보고 웃으며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


차를 타고 한백으로 향하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울을 빨리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내 아들 지후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아이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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