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밭을 매다 아기를 낳지? '
아기가 움직인다.
배 속 아기의 움직임이 느껴져서, 신기해서 순간 멈칫했다.
‘ 이게 태동이라는 건가? 이거구나. 태동이 이 느낌이구나. ’
정말 예민한 사람은 7주나 8주에도 느끼기 시작한다는 데
기다렸던 아이였는지 16주 정도 지나면서
비교적 태동을 빨리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명을 ' 울산이 ' 로 지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서 생긴 아이
설악산이 내려주고 울산 바위가 지켜주는 아이
산처럼 푸르고 울산 바위처럼 모든 것을 감싸주는 아이가 되길 바라며
' 울산이 ' 라는 태명을 지었다.
울산이는 꼬물꼬물 초기엔 몸 크기만큼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해서
달수가 차면서 점차 큼지막하게 움직였다.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오기도 내려가기도 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그 반대로. 어떨 때는 회전하기도 했다.
내 배가 수영장이고, 양수가 물 인양 배 안을 자유롭게 헤엄을 쳤다.
아기가 움직이면 말을 건넸다.
' 오늘은 어디를 가고 있는 거야? '
'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
' 달지? 새콤하니 맛있지? 엄마가 지금 맛있는 딸기를 먹고 있는 데
지금 네가 먹고 있는 이 맛이 딸기 맛이야.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이야. '
' 조금 맵지? 이건 카레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인도 요리야.
향도 독특하고 빵이나 밥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지.
아빠는 짜장을 엄마는 카레를 좋아해. 엄마는 소고기를 넣은 카레를 좋아해. '
밥이나 과일, 간식을 먹을 때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때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있는 양 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점점 배가 처지고, 허리를 눌러 걷거나 서있기가 힘들어지고,
자다가도 다리에 쥐가 났다.
갑자기 일어나지 못해 지후를 흔들어 깨운다.
“ 내 다리, 내 다리, 다리 좀 주물러줘. ”
자다가 ‘ 쥐가 나겠구나. ’ 생각했는데 정말 몇 초도 안 돼서 진짜 쥐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다가 나는 쥐는 정말 눈물을 찔끔 나게 만든다.
막달로 가면서 붓는 증상은 더 심해졌다.
내 신발을 신지 못해 지후의 운동화를 신거나 가까운 지역을 갈 때는 슬리퍼를 신어야 했다.
잠을 잘 때는 천장을 보고 눕는 것이 힘들어져서 옆으로 누워야만 했다.
갈비뼈가 아파왔지만 울산이가 어서 세상에 나오기를
얼굴을 볼 수 있고, 눈 맞춤을 할 수 있기를.
안을 수 있고, 뽀뽀할 수 있고,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기를
그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났다.
초산은 원래 늦다고 하긴 했지만 걱정이 됐다.
' 주수를 너무 넘기면 태변을 먹는다고 하던데. '
점심시간에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원래 공원 주위를 저녁마다 돌긴 했지만
걱정이 깊어지자 주말에 동네 가벼운 산을 올랐다.
' 울산아, 빨리 나오너라.
엄마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제 너를 보고 싶기도 하다.
그날 밤 잠을 자다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아기가 움직임이 덜 해서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깼다.
‘ 어 이상한데.......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냐? ’
겁이 나 자던 지후를 흔들어 깨웠다.
“ 나,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어.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무섭고 불안해서 집에 못 있겠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
얼른 사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마침 정기검진을 해 주던 선생님이 그날 밤 당직이었다.
“ 이슬은? 이슬은 비췄어요? ”
“ 네. 어제부터 비치고, 오늘 아침엔 좀 많이 보였는데
계속 빨리 나오라고 계단도 오르내리고 공원도 돌고
오늘은 동네 산에도 올라갔어요. “
“ 움직이는 건 좋은 데 산에 올라가는 건 하면 안 돼요.
아기가 많이 힘들거든. 막달에는 서서히 산책 정도만 하는 게 좋아요.
너무 힘들면 아기가 배안에서 태변을 눠.
아무래도 유도분만을 하는 게 좋겠네.
오늘 밤에 입원하고 내일 아침부터 촉진제 맞읍시다.
아빠는 수속 밟고, 출산 준비하세요. “
‘ 괜한 욕심을 부려 아기를 힘들게 하는구나.
어련히 알아서 잘 나올까? 미련한 엄마 같으니라고 ‘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기저귀랑 출산과 입원 준비물을 챙겨 오라고 지후를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 삭삭삭 내 음모를 면도했다.
수치심이니 뭐니 그런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 관장을 할 거예요.
관장액 들어가고 3분 동안 변을 누면 안 돼요. 꾹 참고 그다음 변을 눠야 해요. “
선생님이 튜브를 꼽고 관장액을 넣기 시작한다.
‘ 내 인생에서 별 걸 다해보네.
아기를 낳으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참 많구나.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창피해도 참자. 저 선생님 직업인데 뭘. ‘
“ 절대 관장 액 넣고 바로 변 보시면 안 돼요.
그러면 출산하다가 변이 같이 나오기도 해요. 꼭 참으셔야 해요. “
간호사 선생님이 신신당부를 하셨다.
‘ 선생님, 저 진짜 잘 참아요. 어릴 때부터 잘 참는다고 칭찬받았어요.
참기의 달인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주책인가 싶어 생각만 했다.
1분도 되지 않아. 배 속이 천둥 치기 시작한다.
' 꾸욱 꾸욱 꾸룩~~~ ' 내 장이 이토록 격렬히 움직 인적은 없었다.
‘ 3분? 말도 안 돼. 3분을 어떻게 참아?
내가 나를 아는 데 이 강도는 1분도 견디지 못해. ‘
다행이었다. 내 입원실에는 화장실이 있어서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열 걸음이면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1인실이라 아무도 없다.
화장실로 향하는 열 걸음 내내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다.
달리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급하면 달리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무용수가 춤을 추듯, 외줄 타기를 하듯, 괴상한 춤을 추면서 변기로 향했다.
지후를 집으로 보낸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이 꼴을 어찌 보여? 이건 수치야, 수치.
이걸 보였다가는 평생 놀려먹을 것이 분명하다.
지후가 지금 들어와서 보면 내가 지금 춤추는 줄 알겠다. ‘
' 후다닥 ' 간신히 화장실 문은 열었으나 변기에 앉기까지 1초도 모자랄 것 같다.
화장실 문과 변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빠른 걸음으로 세발자국이면 될 것 같은 데 네 발자국을 걸어내기는.
‘ 참아보자. 안 돼, 안 돼. 내 인생에서
이런 치욕적인 경험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해도 내가 보잖아.
하지 말자. 절대 안 돼, 참자. 참자. 참아내야 한다. ‘
간신히 해결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1분도 채 되지 않아. 배속이 또 요동친다.
‘ 자야지. 내일 아침에 아기를 보려면, 힘을 주려면 자야 한다.
억지로라도 자야 한다. ‘
‘ 이런, 이게 뭐야? 또 이러는 거야? 아니, 한 번이 아니라고
도대체 몇 번을 가야 하는 거야? 또 다시 춤을 춰야 하는 거야? ’
지후가 오기 전까지, 춤을 추는 내 동작이, 이 모든 과정들이 모두 끝나야 한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나 혼자 있을 때 속전속결로 해결해 버리자.
‘ 와라. 와라. 한꺼번에 다 와라. ’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당황스러움은 덜했고, 두 번째는 그 다지 강렬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 이래서 경험이 무섭구나. 책에서만 봤지.
면도나 관장이나 아무도 내게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았는데.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춤을 추는 내 모습을 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을 ‘
입원실에 거울은 없었지만
창가 쪽 큰 통창 문으로 나는 내가 춤추며 걸어가는 모습을 다 봤다. 웃음이 나왔다.
' 이게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출산 과정이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야? '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배가 아프면서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계속 웃었다.
그렇게 화장실을 3번 다녀왔다. 진이 빠졌다. 기진맥진
자아를 붕괴시키려면, 수치심을 느끼게 하려면 관장이라는 방법도 꽤 쓸모가 있겠구나 싶었다.
' 내가 인간인가? 동물인가? '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고 있을 무렵
지후가 출산 준비물이 든 가방을 들고 입원실로 들어왔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 당연하지. 내가 모든 흔적을 아픈 배를 붙잡고 얼마나 치워댔는데.
너는 몰라야 한다.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자야 돼. 내일 아기 낳으려면 힘주려면 자야 해. ’
억지로 잠을 청하지만 겁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
지후는 내 속도 모르고 간이침대에서 자기 시작한다. 코를 곤다.
‘ 저 코를 비틀어 버리고 싶다. ’
‘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왜 이토록 인정이 없어졌을까? ‘
깊은 잠을 자는 지후가 부럽기도 하면서도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화장실 갔다 오느라 얼마나 진이 빠졌는데, 지금 얼마나 무서운데.
일어났다. 앉았다. 화장실에 다녀왔다.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낸다.
그래도 잔다. 그래도 잘 잔다. 정말 잘 잔다.
‘ 아~ 진짜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저 간이침대를 슬쩍 차 볼까? ’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냥 내 자리에 누웠다. 스르르르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든다.
“ 산모 분, 무통 맞으시겠어요? ”
“ 네? 그게 뭐예요? ”
“ 출산할 때 통증을 경감시키는 진통제예요. 맞으시겠어요? “
“ 아, 아니요. 안 맞을래요. 그냥 참을래요.
그거 아기에게 안 좋은 거죠? 싫어요, 참을래요.”
“ 산모 분, 일단 그냥 허리에 꽂아 놓을게요. 진통 시작하면 이거 맞고 싶어도 못 놔요.
진통제 안 들어가도 되니까 일단 꼽아놓죠. 다들 처음엔 그러시다가 놔달라고 해요. “
“ 네, 알았어요. 일단 놔주세요. ”
‘ 어림없지. 내가 얼마나 모성이 강한 여잔데. 참을성은 얼마나 좋고.
혹시 아기한테 안 좋을지 모르니까 맞지 말자.
남들 다 두 세 명씩 낳기도 하고, 예전에는 밭에서 일하다가도 낳기도 한 다는데.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내가 무통을? 에이 그럴 리 없어.
나는 참을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어. ‘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모두들 출근하는 9시가 넘자
드디어 촉진제를 넣기 시작했다.
‘ 와 신기하네..... ' 진짜 촉진제를 넣으니 산통이 오기 시작했다.
두 시간에 한 번, 한 시간에 한 번, 삼십 분에 한 번
점점 산통 시간의 간격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수시로 들어와 내진을 한다.
인턴 선생님들도 내진하는 것을 보고 있다.
맨 정신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내 상황이 급하니
창피고 뭐고 없다. 어차피 다시 얼굴 안 볼 사인데
“ 아휴, 산모 진짜 잘 참내. 자궁이 40프로 정도 열렸어.
소리도 하나 안 지르고 진짜 잘 참내. “
내 담당 선생님은 내가 진짜 잘 참는다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 산모는 없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 당연하지. 그럼 내가 어떤 여잔데.
내가 얼마나 참을성이, 인내심이 강한 여잔데, 모성이 강한 여잔데
교양 없이 소리를 질러? 그럴 일은 없지. ‘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자궁이 60프로 열리면서
산통이 20분, 10분 간격으로 좁혀오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한마디로 고통의 쓰나미가 내 배를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시간을 줄여가며 다시 밀려오기 시작한다.
규칙적인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예견된 고통은, 규칙적인 고통은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든다.
이런 통증은 처음이다. 이 쓰나미급 고통이 밀려올 것이 두렵다. 너무 무섭다.
세상에 이런 공포는 다시없었다.
‘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고통을 참아내지?
어떻게 이런 고통을 24시간이나 견디지?
어떤 산모는 이, 삼일씩 진통을 한다는 데, 이걸 참아낸다고?
어떻게 애를 한 번도 아니고, 몇 명씩 낳지?
어떻게 밭에서 김을 매다 아이를 낳지?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야.
이런 고통이 인간에게 온다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나 같은 거야.
죽을 것 같아. 죽겠어. 나 죽을 것 같아.
이러다 정말 죽겠어. '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해 ' 엉엉엉 ' 울었다.
창피하지도 않고 소리 내어 울었다.
너무 아파서 옆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을 손을 잡았다.
아까 ' 산모분, 무통 맞으시겠어요? '
나에게 무통 주사를 맞을 것을 강력하게 권하던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엉엉엉 울면서 , 간호사 선생님 손을 꽉 잡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 죽을 것 같아요. 무통 놔주세요. 빨리 놔주세요.
너무 아파요. 살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