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모르게 마음이 다 식어버렸어

지후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 세희야, 세희야, 세희야 '


세희는 자꾸만 잠이 들었다.

간호사가 흔들어 깨우면 5초가량 힘을 주고, 다시 잠이 들고

내가 어깨를 흔들고 이름을 부르면 다시 깨어나 힘을 줬다.


‘ 출산 과정에서 잠이 든다고? ’


의사나 간호사에게 물어볼 시간도 정신도 없다.

나는 잠든 세희를 깨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희가 힘을 주다가 잠이 들면 울산이의 심박 수가 떨어졌다.


“ 산모, 정신 차리세요.

산모님, 숨 쉬세요. 아기 심장이 안 뛰잖아요. 정신 차려요. ”

“ 산모가 잠이 들면 아이가 내려오다가 산도에서 낄 수가 있어요.

태아의 심박수가 떨어지면 위험해요.

산모가 정신을 잃거나 숨을 참으면 안 돼요.

아빠가 옆에서 계속 산모 이름 부르고 , 말을 시키고, 흔들어 깨우세요. “

“ 세희야, 잠들면 안 된데. 네가 자꾸 잠이 들면

울산이한 테 산소가 안 간데. 그러면 울산이가 위험해져.

세희야. 힘내. “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세희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벌떡 일어나 힘을 준다. 얼굴로 피가 다 몰렸는지 새 빨갛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온 몸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 산모 거의 다 열렸어요. 이제 애기 머리 보이기 시작해요. ”


세희가 다시 잠이 든다. 이건 명백히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울산이의 심박 수가 떨어진다.

간호사가 갑자기 세희의 배에 올라타 배를 골반 쪽으로 아기를 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꾸 세희가 눈을 감자 세희의 뺨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 산모분, 자꾸 이러면 애기 큰일 나요. 아기 죽을 수도 있다고요. 정신 차려요. ”


울산이를 낳기 전날 밤 세희는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출산이 두려워 한 잠도 자지 못했다. 무통주사를 맞았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고통이 멈춘다. 그 순간 피곤했던 몸이 순간적으로 수면 상태에 빠져 들었다.

세희는 자신이 잠이 든다는 것도 모르고

기절하듯이 수면 상태로 빠지고 주변에서 흔들어 깨우면 깨어나 힘을 주고

다시 졸고 깨어나서 힘주고 이런 상태가 반복되고 있었다.

무통주사는 고통은 줄여주지만 수면부족 상태의 출산 중인 산모를 잠이 들게 하기도 한다.

세희가 그런 케이스였다.

차라리 고통을 온전히 견뎌내고 빨리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싶기도 했다.

세희는 깨어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우는 것이 아니라 울부짖음이다.

이 상황을 자기도 견딜 수 없었으리라.

아기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계속 잠이 드는 자신이 싫었으리라.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희가 아파해야 울산이가 나올 수 있다.

죽음과도 같은 과정이 지나가야 새 생명이 태어난다.

세희가 아파야만 울산이 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지만

사람의, 여자의 출산 과정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동물보다 더 길고 고통스럽지 않나 싶다.

모든 것이 문명화되고 기계화되고 과학화되었지만

출산 과정은 원시 그대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이다.

자신이 열 달 동안 품었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그대로 참아내고 받아들이는

여자의 모습이 오히려 신처럼 숭고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아빠는

사람이 사람 속에서 나오는 과정을 보지 않고는

여자의 삶을 ,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낳은 자와 태어난 자, 둘 만의 특별한 경험을 한 서로를

일체감을 느끼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를 남자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들게 다시 세희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절대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같아. ‘


나는 탈진해 잠이 든 세희 옆에서 ' 세희야, 세희야 '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세희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도

세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이 도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세희를 잃는다는 것은

세희와 아이를 바꾼다는 것은

세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세희는 숨을 참고 마지막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산모분, 마지막으로 한 번만 힘을 줍시다. 하나, 둘, 셋 ”


세 번 만에 울산이는 세상 밖으로 마침내 나왔다.

세희는 소리를 내며 한 참을 울다가 잠이 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가위를 주며

울산이와 엄마 사이에 연결된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두가 다치지 않도록 가위로 탯줄을 조심스럽게 잘랐다.

이제 울산이와 세희와 분리되어 독립된 하나의 사람이 되었다.

‘ 울산아, 울산아 만나서 반가워.

정말 힘들게 엄마 뱃속에서 나왔구나.

너도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생했다.

엄마를 조금 덜 힘들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는 너를 잃고 엄마를 잃을까 봐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났어.

나랑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


‘ 이제 나는 울산이와 세희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

울산이는 아기 바구니에 옮겨져 신생아실로 이동하고 세희는 입원실로 옮겨갔다.

세희의 얼굴은 실핏줄이 터져 벌겋고, 퉁퉁 부어 있었다.

입술을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마저 부어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 산모, 소변 줄 꼽을 테니 따끔해도 참아요. ”

“ 자연분만하면 금방 걸어 다닌다는 데 소변 줄까지 꼽아야 해요? ”

“ 네, 산모 분만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속 골반이 작고 산도도 좁았어요.

밑이 다 부어서 소변 안 나올 거예요.

항문의 살도 다 밀려 나와서 나중에 치질 수술도 해야 할 거예요.

진통제랑 영앙제 계속 들어갈 거니까 깨우지 말고 계속 재우세요.

이럴 때는 밥 보다 자는 게 더 나아요. “

나는 세희 옆에 앉아 계속 세희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내가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세희는 계속 잠만 잤다.

끙끙끙 앓는 소리만 내며, 밥도 먹지 않고 잠을 잤다.

세희가 눈을 뜨는 시간은 울산이가 젖을 먹으러 오는 시간이었다.

모유 수유를 원했던 터라 울산이는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입원실로 왔고

졸면서도 세희는 울산이에게 젖을 먹였다.

힘들어도 신생아 때부터 해야 한다고

내 등에 기대어 울산이를 안고 젖을 먹였다.

세희는 앉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고 했다.

아이가 나오기 위해 회음부 절개를 했는 데 꿰맨 부위가 너무 따갑다고 하는 것이다.


“ 선생님, 밑이 너무 따가워요. 잘못 꼬매 졌는지 너무 아파서 앉지를 못하겠어요.

아기 낳을 때 보다 더 아파요. “

“ 생살을 째고 다시 꿰매었으니 당연히 아프죠. ”

의사는 세희의 회음부 부위를 살펴보았다.

“ 꿰맨 부위의 이상은 없는 데, 감염도 없고, 얼음찜질하고, 참는 수밖에 없어요. “


세희는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있었다.

차라리 계속 누워있으면 좋으련만 울산이에게 젖을 먹이려면 앉아야만 했다.


“ 세희야, 이, 삼일만 분유 먹이고 그다음부터 젖 먹이자.

너 좀 자야 하는 데 울산이 젖 먹이느라 잠을 길게 못 자잖아.

게다가 젖 먹이려면 앉아야 하는 데

이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 먹이면 너 허리 망가져. “

“ 안돼. 한번 분유 먹기 시작하면 젖 안 먹는데.

힘들어도 먹여야 해. 그래야 완모 할 수 있어. 내가 힘들어서 못 일어나면

오빠가 나 일으켜서 상의 벗기고 어떻게든 울산이 젖 먹여야 해. “


세희는 울산이를 낳고 긴 잠을 자지 못했다.

울산이가 젖을 찾으면 신생아실 선생님은 울산이를 데리고

세희에게 젖을 먹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두 시간 세 시간에 한번씩 엄마를 찾는 울산이의 허기는 세희에게 깊은 잠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잠이 든 상태로 젖을 먹이기도 했다.


‘ 모성이란 게 엄마라는 게 대단하긴 하다.

분명 남자라면 이렇게 까지 견뎌내지는 못할 것이다. ‘


나는 세희를, 엄마를, 여자를 여자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출산 소식에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 모두 병원으로 왔다.

막내딸의 출산, 막내의 출산 , 이모의 첫 출산

모두들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 강 서방, 사돈들은? ”

“ 네, 아까 낮에 왔다 가셨어요. ”

“ 첫 딸이라고 많이 섭섭해하셨겠다. ”

“ 아니에요, 좋아하셨어요. 요새 딸이라고 싫어하고 그런 게 어딨어요? ”

“ 그래 둘째는 아들 꼭 낳아. 장남인데 아들 하나는 낳아야지.

부모님이 말은 안 해도 기다리고 계실 거야. “

“ 네, 알겠습니다. ”


세희는 친정 식구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 오빠, 오시든 안 오시든 전화는 드려. 알려는 드려야지. ”

“ 그래, 알았어. 너는? 너 불편하지 않겠어? ”

“ 나는 괜찮아. 그리고 병원에 있을 때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첫 손주니까 보고 싶지 않을까? “

“ 알았어, 얼른 자. ”

전화를 건다. 낯익은 뒷자리 번호


“ 여보세요, 엄마. 세희가 아이를 낳았어요. 사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예요.

보고 싶으시면 병원에 있을 때 오세요. 퇴원하면 친정으로 몸조리를 하러 가요. ”

“ 아기는? 은서는 괜찮니? ”

“ 네, 둘 다 건강해요.

“ 그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이쪽에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갈게. ”

“ 그러세요. ”


노크를 하고 엄마와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어색한 분위기가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 고생했구나. ”

“ 네, 오셨어요. 아기는 신생아실에 있으니 제 이름 대면 보여 줄 거예요. ”
“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

“ 아니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

“ 그래, 아기 보고 가마. 몸조리 잘해라. ”


부모님은 수고했다며 누워있는 세희 옆에 봉투를 두고 가셨다.

얼마 되지 않는다며 울산이 유모차를 사 줄 정도의 돈이라고 서둘러 나가셨다.


“ 제가 아직 잘 걷지 못해서요. 안녕히 가세요. ” 세희가 자리에서 앉아 말을 건넨다.

“ 그래, 얼른 회복하거라. ” 아버지는 서둘러 나가시고

엄마는 세희에게 무언가를 말할 듯 주저하다 아버지를 따라 나가셨다.


부모님들은 신생아실에 가서 내 이름을 대고 울산이의 얼굴을 보셨다.

울산이를 보고 웃으셨다. 세희를 쏙 빼닮았다고 하셨다.

나는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엄마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 세희야, 두 분 가셨어. 섭섭하지? ”

“ 아니, 그래도 알려는 드렸으니까. 울산이 보고 뭐라고 하 셔? “

“ 너 많이 닮았데 ”

“ 에이 오빠를 닮았어야 했는데. 원래 며느리가 미우면 손주도 밉다고 했어.

게다가 나까지 닮았으니. 오빠도 아들이 아니어서 섭섭해? "

“ 아니, 그런 게 어딨어? 잘 키우면 되지.

난 더 이상 아기 안 낳을 거야. 너 애 낳는 거 보니까 더는 낳자는 말 못 하겠더라,

그리고 난 하나만 낳고 키워서 울산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줄 거야.

대학원도 유학도 가고 싶다고 하면 다 해 줄 거야.

애가 하나면 다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데. 둘은 힘들 것 같아.

못 해주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울산이 하나만 낳고 더 이상 낳지는 말자.

울산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고 살자. “

“ 그래, 생각해 보자. ”

내 마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나는 울산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대학원이든 유학이든 울산이가 해 달라는 것은 다 해줄 것이다.

해주고 싶은 데 돈이 없어 해 줄 수 없다면 그 마음이 너무나 아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데 할 수 없는 울산이의 마음도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 세희야, 나는 아까 네가 죽을 것 같아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울산이 한테는 미안한데 울산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안 났어.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겁이 나고, 무섭고, 네가 불쌍하고. “

“ 그랬어, 그럼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 그렇지? 이번이 아주 좋은 경험이었네. “

“ 울산이가 태어난 걸 보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 아빠들은 아기 낳는 걸 꼭 봐야 할 것 같아.

여자가 이렇게 힘들게 출산하는 걸 봐야 하는데. “

“ 아주 좋네, 오빠 저녁 먹고 와. 나는 좀 자고 있을 게. ”

“ 그래, 다녀올게.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 없어. 얼른 갔다 와, 그리고 집에 들러서 좀 씻고, 푹 쉬고, 그러고 와. ”

“ 알았어. ”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와 담배를 피웠다.

이제 더 이상 담배는 피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담배이다.

폐 속 깊이 연기를 들이마신다.

울산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니 어쩌면 다시는 피지 못하리라.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 번호다.


“ 지후야, 엄마 병원 근처 공원인데 좀 볼까?

아버지는 친구들 보러 나가셨어. 나 할 말이 있는 데. “

“ 네, 그러세요. ”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긴장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덤덤하다.

그런 내가 낯설고 조금은 서럽다.

정작 공원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숙제를 하느라 아무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시소 옆 벤치에 앉아 계셨다.


“ 지후야, 여기야. ”

“ 잘 지내고 계세요? 현우도 아버지도 모두? ”

“ 그렇지, 다들 그렇지. 너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이사를 갔더구나.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


지후야, 은서가 퇴원을 하면 집에 돌아오면

아기 데리고 한번 내려오지 않을래?

아버지가 몹시 기다리는 눈치야. 별말씀은 없으시지만 너나 은서 모두 기다리는 거야.

한백에서는 모두들 성공했다고, 근사한 집에 서울 집에 가게도 두 개나 있고

월세 받으면서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려고 고향에 내려온 우리를

모두들 성공했다고 부러워하지만,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아.

현우도 잘 내려오지 않고, 너도 그렇고.

기쁘지가 않다. 다른 집들은 자식들 손주들 모두들 오지만

우리는 큰 집에 아버지랑 나랑 우리 둘 밖에 없구나.

너무 쓸쓸하고 허전해.

지후야

자주는 아니어도 일 년에 이렇게 한번이라도 얼굴 보고

가끔은 통화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니?

이제 현우 몫은 다 줬으니 나머지는 이제 다 내 몫이야.

우리를 믿고 기다리면 안 되겠어? “


“ 엄마, 아기가 태어나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어.

그 이유 하나야. 다른 이유는 없어.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다 현우를 준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아.

엄마랑 아버지는 정말 왜 내가, 세희가 화가 났는지,

두 분을 보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아.

엄마도 아빠도 한 번도 나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어.

나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어. 현우도 그렇고

엄마랑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돈을 쥐고 있으면

나나 세희가 그 돈을 받기 위해서

복종할 거라고, 두 분이 시키는 일들은 무엇이든 할 거라고

돈을 쥐고 있는 부모의 힘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나보다 돈이 훨씬 더 우선이고 중요했던 거야.

나는 그게 참을 수가 없어. 아직도 그래.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얘기하지 마.

나는 엄마 아버지를 보는 게 불편해. 그냥 그 이유야. “

“ 지후야,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제발 지후야, 얼굴을 보는 게 힘들면

일 년에 한 번 만이라도 전화라도 하고 지내자. “

“ 아무래도 괜히 전화한 거 같아.

나랑 세희, 아기는 잘 지낼 테니, 두 분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먼저 갈게요. 조심히 잘 내려가세요. “


벤치에 앉아있는 엄마를 두고 나는 먼저 일어났다.

저녁은 먹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세탁기의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환기를 하고

퇴원하고 세희와 울산이가 돌아올 집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따듯한 물에 샴푸를 하고 샤워를 한다.

울산이와 세희가 기다리고 있을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한다.


‘ 이제 우리 셋이야.

울산아, 아빠는 세상에서 부자 아빠는 되지 못하더라도

울산이가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건강하게만 자라면 돼. ‘


빨래를 널고, 정리를 마치고, 베란다와 창문을 닫는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다.

세희가 좋아하는 전복죽, 딸기 요플레를 사 간다.

세희가 좋아하니 울산이도 좋아하겠지.

사거리를 지나 병원으로 향한다.

공원을 지나가는 내 발걸음이 멈춘다.

어둠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 엄마, 엄마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


엄마는 그 자리 그 벤치에 한참을 앉아 계신 것 같았다.

얼이 빠진 사람처럼 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보는 것도 모르고

할 말은 있었으나 하지 못해, 할 수 없어, 허무한 사람처럼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깐 울컥했으나 금세 진정되었다. 안쓰러운 마음도 이내 차가워졌다.


‘ 내가, 내 마음이 모두 식어버렸구나.

나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모든 게 다 사라져 버렸어.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

엄마를 보지 않은 듯 다시 걸어 나간다. 공원을 지나쳐 산부인과로 향한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울산이 와 세희가 보고 싶다.

서둘러 모든 것을 잊으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 울산아, 세희야

내가 간다. 너희에게 내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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