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타인처럼 지나가다

영자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 지금쯤 아기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무사히 잘 낳을 수 있을까? ’ 애가 타고, 궁금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지후가 태어났던 그 날 한 낮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낮잠을 자다 갑자기 배가 터질 것 같이

수 만개의 바늘이 내 배를 구석구석

빈 곳을 매어내듯 샅샅이 찔러대는 고통으로

나는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댈 기운도 여력도 없었다.

꼼작 없이 방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겠구나 싶었다.

그 날 따라 앞, 뒤, 옆집은 모두 비어있었다.

산 달이 돼서는 엄마를 부르던가 내가 엄마 곁으로 갔어야 했는데

남편 밥이 걱정돼서 며칠을 미루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나를 도와줄 이 하나도 없었고,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듯싶었다.

‘ 산파 할머니에게 걸어갈 수 있을까? 아니다. 너무 멀다. ‘

게다가 가는 길에 아이라도 나오면

아이도 죽고 나도 죽는다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또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살려야 한다. 나는 죽더라도 아이는 살려야 한다.

내 뱃속의 아이는 꼭 살리고 죽더라도 죽자 '


얼른 반짇고리에서 가위를 꺼냈다.

미리 준비해둔 기저귀 감을 꺼낸다.

탯줄을 묶으려고, 꼬아두었던 명주실을 꺼낸다.

두꺼운 요를 바닥에 깐다.


이제 부엌으로 가야 한다.

벽을 붙들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숨을 참으며 걸어간다. 기어간다.

배가 터져 버릴 것 같다.

배가 터져 아기가 쏟아져 내 릴 것 같다.

불을 지피고, 솥에 물을 올린다.

가위를 끓는 물에 담가 펄펄 끓인다.

끓는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이 진통보다 덜 아플 것 같다,


‘ 차라리 손을 담가 버리면 그 고통으로 산통을 덜 느끼려나? ’


손을 담가버리고 싶을 만큼 아프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가위를 건지고, 따듯한 물을 대야에 담아 방으로 가져간다.

바지를 벗고 팬티를 내린다.


‘ 정신 차려야 해. 내가 정신을 놓아버리면 아기가 죽어.

나는 죽더라도 아이는 살리고 그러고 죽자. ‘


비명을 지를 힘도 아껴야 했다. 아기를 밀어내는 데 써야 한다.

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는다.

‘ 엄마, 엄마, 엄마

나를 도와줘. 제발 나를 도와줘.

내가 혼절하지 않게, 기절하지 않게,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나를 도와줘.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내가 견딜 수 있게, 아이만 나올 수 있게

그땐 내가 죽어도 괜찮아. ‘

목욕탕의 열탕에서 나온 듯 온몸과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배를 잡고 일어났다. 걸었다. 기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아기가 나오도록 용을 쓴다. 진통이 막바지로 향한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문다. 비린 냄새가 난다. 따듯하고 핏 맛이 난다.

이제 곧 나올 것 같다. 밑의 살이 찢어지는 느낌이 난다.

아기 머리가 나오고 있으리라.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를 확인하려 해도 볼 수가 없다.

엎드려서 나아야 한다.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동물이 새끼를 낳듯이 엎드려 기는 자세를 취한다.

그래야 아이가 이불 위로 떨어질 수 있다.

두꺼운 요는 아이의 머리를 보호해 줄 수 있다.

머리만이라도 내 손으로 받을 수 있다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마지막 비명이어야 한다.


' 아아아악~~~~ ' 잡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느라 배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으로 아이의 머리를 잡지 못했다.

' 악악악 ' 뜨거운 열 덩어리가 내 몸을 통과하고 용암이 내 몸을 흘러내린 것 같다.

이제야 시원해졌다. ‘ 내 아기, 내 새끼 ’ 무사했다. 내 새끼는 무사했다.

내 손으로 아기에게 붙어 있는 탯줄을 자르고 명주실로 묶는다.

내게 붙어있는 탯줄은 내 엄지 발가락에 묶어

탯줄이 자궁안으로 들어가버리지 않도록

아기집이 밖으로 나오도록 조치를 한다.

아직 식지 않은 미지근한 물로 피를 닦아낸다.

기저귀 감으로 내 아들을 감싸 장만해 둔 속싸개와 겉싸개로 단단히 여민다.


아기는 ' 응애응애 응애 '세차게 울었다. 옷을 풀러 젖을 물린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힘차게 빨아댄다.

‘ 언제부터였을까? ’ 아기가 젖을 빨다 잠이 들었을 때 나는 정신을 놓고 까무라 쳤다.

온몸과 마음이 긴장이 풀리자 모래성이 허물어 버리듯 내 몸이 흘러내렸다.

종수 엄마가 아기 우는 소리에 놀라

머리에 이던 광주리를 집어던지고 방으로 들어와 나와 아기를 발견했다.

탄광으로 종수를 보내 남편을 데리고 왔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꼬박 자고 다음날이 돼서야 깨어났다.


그 날만 생각하면 지후를 낳던 그날이 떠오르면

아직도 몸서리 쳐지고,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나는 그렇게 지후를 집에서 혼자 낳았다.

은서는 나처럼 그렇게 아이를 낳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 만약 은서와 내가 사이가 좋았다면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왕래는 하고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냈다면

힘들어하는 그 애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 줄 수 있었을 텐데.

땀에 흠뻑 젖었을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었을 텐데. '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놓쳐 버렸다.

‘ 태어난 손주는 지후를 닮았을까? 은서를 닮았을까?

지후가 전화를 할 리는 없을 테고.

은서가 전화를 하라고 해야 전화가 올 것 같은데

은서가 지후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려나?

지후야, 지후야, 내 아들 지후야, 이제는 멀어져 버린 내 아들 지후야. ‘


눈물이 흐른다.

지후, 손주가 보고 싶어 눈물이 흐른다.

지후가 멀어진 그 날 이후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밤새 얕은 잠에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몽롱하다.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마음이 아픈 것보다 낫다.


‘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어쩌면 그 사람들보다는 나은 거야. ‘


스스로를 위로하고,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을 한다.

마당에 계절마다 수확이 다른 과일나무를 심고

밭에 배추 무 감자 고구마 깻잎 땅콩 상추 각종 채소들을 심고 수확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도록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일을 한다.

몸을 고되게 해서 밤에 잠을 자도록 만든다.


차라리 봄이 여름이 낫다.

다가오는 겨울은 두렵기까지 하다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온종일 생각만 해야 하니까

온통 후회와 그리움만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울 테니까


과일이 달고 맛있어도

김치가 잘 익고 감칠맛이 나도

된장과 고추장 간장이 맛있어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더 서글프다.

정작 내가 먹이고 싶은 사람은

먹으러 오지도, 먹이지도 못한다.

남편의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

한백에 내려와 알게 된 이웃들

가끔씩 강원도로 놀러 오면 방문하는 친척들

그들만이 내려와 먹고 쉬고 경치를 즐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먹이고 싶고, 바리바리 싸주고 싶은 이들은 따로 있는 데

그 사람들만 내 집에 온다.

내가 보고 싶은 이들은 내 집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잠을 자고,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들은 따로 있는 데

그 아이들은 나와 남편을 거부하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버렸다.

그 아이들이 그러리라고는나와 남편을 버리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후에게 모진 말들을 내뱉고는

내가 이렇게 잔인한 말로 지후에게 상처를 주리라고는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돈에 집착하리라고는

아들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했었더라도

지후는 내 옆에 있어 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상처를 주고, 모진 말을 퍼 부 어데도

죽일 듯이 쏘아보고, 비난을 해대도 내 아들 지후는 내 옆에 있어 주리라.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눈만 껌벅껌벅 움직일 수 있을 지라도

지후는 내 옆에서 나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엄마와 아들이니까

내 속에서 나온 내 자식이니까

나를 버릴 일을 없을 테니까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지후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지후가 마음이 떠난 것을

그래서 더 극악스럽게 굴었다.

겁을 주면 공포심을 느끼게 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내 옆을 떠나지 못하리라.

그렇게라도 지후를 잡고 싶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후는 가버렸다. 모든 것을 버려 버리고 가버렸다.

‘ 죽을 때까지 보지 않으면 어쩌나?

죽을 때 지후 얼굴을 보고 죽으면 어쩌나? ‘


이제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지후 마음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굳어있었다. 지후의 마음은

아기가 나올 무렵 나는 볼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서울로 올라왔다.

전화가 왔다. 지후였다.


' 세희가 아이를 낳았어요. 보고 싶으면 한번 오세요. '


몹시도 기뻤다. 오랜만에 지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태어난 손주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내 아들을 보는 것이 우선이고, 더 보고 싶다.

내 아들 지후를 한번 만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다.


‘ 이제는 아빠가 되었구나. 기특하구나. ’

말하면서 한번 지후의 어깨를 만져보고도 싶고

축하한다 말하며 지후와 눈을 마주치고도 싶었다.

지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잘 살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 아들 지후가 보고 싶다.

내 아들 지후를 만져보고 싶다.

내 아들 지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내 아들 지후의 곁에 있어보고 싶다.

은서가 누워있는 병실에 들어갔을 때

은서는 조금이나마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그 아이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엄마 맘을 더 잘 이해하니까

은서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 조금은 나를. 내 맘을 이해할 것이라 기대하고 기뻐했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핑계 삼아 안부를 묻는 연락이라도 하고

아이가 커가며 생기는 일들에 얼굴이라도 가끔 볼 수 있겠다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은서보다 온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하는 은서보다

냉기가 가득한 지후. 얼어붙어 버린 지후는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 아직도 나를, 남편을 싫어하는구나. ’

싫어한다기보다 무감각해하고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알아야만 했다.

무안하고 민망해서 서둘러 병원을 나가버렸다.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와 기운

한 때는 서로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고 편안했는데

이제는 일 분이라도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어색해 자리를 피해버린다.

‘ 어떻게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을까? 나와 지후는 ’

다시 한번 지후를 보고 싶어, 내 아들 얼굴이 보고 싶어

병원 근처에서 기다리니 지후를 오라고 했다.

‘ 내가 다시 부탁하면, 사정하면 분명히 올 거야. ’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후회한다고 말해야지.

다시 잘 지내고 싶다고 말해야지.

용서해 달라고 말해야지. ‘ 수십 번을 생각하고, 대뇌였다.

‘ 그러면 되겠지. 다시 나를 받아주겠지.

엄마인 나를 다시 안아주겠지.

나와 둘이면. 은서도 없고 남편도 없으면

우리 둘만 있으면. 나를 다시 거부하지 않겠지.

세상에 둘도 없던 우리 둘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몹시도 아끼고 챙겼으니까

서로에게 위로가 돼 주고, 나보다 더 서로를 아끼던 사이였으니까

예전일 다 잊어버리고, 그 새 용서했냐고

마음 약하다고, 줏대 없다고

비웃을 사람 없으니, 체면 차릴 필요도 없으니

우리 둘만 있으면 지후는 그럴 것이다. 나를 용서할 것이다. ‘


기대하고, 기대하고, 그렇게 기대하며 지후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바닥이 흠뻑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제는 미움도 원망도 후회도 그리움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모든 것이 황망히 사라져 버렸다고

어떤 것도 먼지 한 톨 남겨져 있지 않아서

이런 마음에 본인도 당황스럽다고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얼음 칼날 같은 말을 내게 뱉으며 그렇게 나를 떠났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후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던 내 입을 찢어 버리고 싶고

지후를 노려보았던 내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순하디 순하고 착했던 지후를 다시 찾고 싶었다.


다시 모든 것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되돌려 지워버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다 던져버리고

한 번만이라도 내 아들 지후를 안아보고 싶고

얼굴을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다.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내 아들을 찾고 싶다.

내 아들이니까 내 첫아이니까

내 모든 것이었으니까


한 참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이 후회되고 있을 때

얇은 희망 한 줄이라도 잡고 싶었다.

끝끝내 지후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를 기다리던 나를

한번 보고는 멈칫하더니

잠깐 나를 보고 주저하나 싶은 듯하더니

모르는 척, 보지 않은 척, 남 인척 나를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제 지후에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지후야, 내 아들 지후야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니?

나를 용서해 줄 수 없는 거니?


지후야, 지후야, 지후야

내 아들 지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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