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별이 빛나는 밤, 나는 행복했지
세희 이야기
이사 떡을 맞추다.
오래된 복도식 주공 아파트
한 층에는 모두 12가구가 살고 있다.
우리 집은 804호
803호는 매일 아침 이른 출근을 하는 부부와 초등학교 5학년 오빠, 2학년 여자아이
805호는 남편과 전업 주부, 누나 2명 그리고 막내 사내아이 이렇게 5명이 살고 있었다.
이사를 하고 짐 정리를 마치자마자 떡 집에 가서 이사 떡을 맞췄다.
양 옆집과 위아래층 집, 경비 아저씨 사람 수를 계산해야 했다.
“ 사장님, 요새 이사하면 무슨 떡을 맞춰요? 아직도 시루떡을 많이 하나요? ”
“ 요새는 시루떡을 하지 않지. 무난하게 콩설기나 절편을 많이 해요.
“ 인절미가 맛있는 데, 인절미는 잘 안 해요? ”
“ 인절미는 호불호가 갈려요. 그래서 보통 콩설기를 많이 해. 이번에 이사 오나 봐요?
젊은 사람들은 보통 이사 떡 잘 안 돌리는 데. 이웃들이 좋아하겠네. “
“ 네, 이번에 처음으로 집 장만했어요. 첫 집이라 기념으로 돌리려고요.
사장님 이 찰떡은 어때요? 이거 맛있어 보이는 데. “
나는 찹쌀에 밤, 설탕에 절인 각종 콩과 대추, 견과류가 많이 들어간 찰떡을 매우 좋아한다.
끼니마다 밥 대신 먹어도 든든하고 쫄깃함이 일품이다.
“ 영양 찰떡이 좋긴 한데. 값이 세 배야. 받으면 좋긴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요? ”
“ 아니요, 사장님 그럼 이 찰떡으로 주세요. 10집이 4 식구면 40인 분이네요.
그렇게 맞춰 주시고 포장까지 해서 주세요. “
“ 젊은 사람이 인심도 좋네. 아주 잘 살겠어. 대신 내가 맛있게 잘해서 줄 게요. “
“ 내일 퇴근하면서 7시쯤 들릴게요. 잘 부탁드려요. ”
“ 새댁, 이 인절미 가져가서 먹어요. 돈 안 받을게.
젊은 사람이 이사 떡 돌리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내.
내가 다 기분이 좋아. 내 맛있게 잘해놓을 게. “
“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
“ 이번에 이사 왔어요. 아직 애가 없어서 시끄럽지는 않을 건데.
그래도 잘 부탁드려요. 맛있게 드세요. “
맛난 떡을 먹을 이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더군다나 사장님이 인절미랑 쑥떡도 덤으로 주셨다.
집에 와서 먹으니 인절미의 콩고물이 너무나 고소했다.
내일 이사떡도 맛있을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집에서 만들어 주던 인절미
금방 한 찹쌀밥을 대야에 넣고 방망이로 치대면
팔 길이만큼 늘리고 놀려도 끊기지 않는 찰떡이 된다.
늘리다 보면 ‘ 어디까지 늘어나나 보자. ’
하는 심정으로 앉아 있다 일어나며 찰떡과 시합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 세희야, 먹는 거 가지고 장난하는 거 아니야. “ 엄한 듯 말했으나
나의 장난기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거기에 콩가루를 묻히면 얼마나 고소했는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나는 고소한 콩가루가 너무 좋아 밥에도 비벼먹곤 했다.
엄마가 도마에 찰 떡을 올리고 한 입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서 주면
콩가루에 떡을 굴리는 것은 내 몫이었다.
떡을 콩가루에 굴리다 보면 점차 노란 옷을 입는 인절미.
내가 좋아하는 카스텔라를 가루로 만들어 굴리기도 하고
흑임자 가루에 떡을 굴리면 색깔은 비호감이지만 맛은 압권인 흑임자 찰 떡이 된다.
막내였던 나는 떡 보다는 엄마와의 떡 만드는 시간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언니들과 오빠에게 엄마를 뺏기지 않고 나 혼자 엄마를 독점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인절미를 가장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절미를 보면 항상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를 생각하면 인절미의 맛에 침이 돈다.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도 인심이 좋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남색 대문 한옥 집이었다.
대문 옆에는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 옆에는 커다란 연탄 광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수돗가와 월세를 살던 세 가구와 우리 집
모두 합쳐 4집이 살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옥상에 올라가면
4개의 키가 큰 기둥과 7-8줄의 빨래 줄이 그 기둥에 묶여 있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나와 언니들은 자주 옥상에서 잠을 자곤 했다.
엄마가 5-6개의 빨래줄에 얇은 이불을 쫙 펼쳐서 널어주면
이불은 지붕이 되어 우리가 옥상 잠을 자도 새벽이슬을 든든하게 막아주었다.
매 여름 새벽마다 새벽이슬은 이불을 적셨고
언니들은 축축하다고 방으로 내려갔지만
나는 혼자 남아 해가 뜰 때까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옥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누워있는 것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리는 지붕 전용 이불을 가지고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요와 이불을 펼치고 베개를 놓는다.
이불 지붕과 돗자리 이불 베개.
그리고 각종 간식거리와 라디오를 얹을 상
그것이 우리의 매일 밤 소박한 피크닉이었다.
그 시절은 옥상에서 여자 아이 3명이 자도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전했다.
도둑이 들어도 물건만 훔쳐갈 뿐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다.
옥상과 옥상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서 밤새 서로의 안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집 열쇠가 없거나 집에 사람이 없으면 옆집에 문을 열어 달라 부탁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우리 집 옥상 계단으로 내려왔다.
우리 동네에는 옥상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시절 나는 이문세가 진행하는 “ 별이 빛나는 밤에” 의 애청자였다.
특히나 일요일에 이경규가 게스트로 나오는 공개 방송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일요일 아침부터 옥상에 여러 개의 콘센트를 연결해 생방을 들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비가 오면
엄마가 이불 위에 커다란 비닐을 덮어주어서
옥상 잠자리가 젖지 않도록 조치해주었다.
덕분에 빗소리와 함께 방송을 들었다.
그 날은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더욱 특별한 밤 이었고
그때 나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박, 복숭아 여름 과일과 간식거리를 잔뜩 준비해놓고 라디오를 들을 준비를 한다.
밤 10시
' 뚜 뚜 뚜 뚜우~~~~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
이문세의 목소리와 별밤의 시그널이 들리면
우리는 참았던 숨을 내쉬고 긴장이 풀린다.
‘ 누가 큰소리로 울어대나? ’ 내기를 하던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도 이문세의 목소리를 이기지는 못했다.
별밤을 듣다 보면 시합을 하던 귀뚜라미를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도 생겼다.
우리가 매일 밤 별밤을 틀어대자
옆 집 오빠들도 의자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빠들도 별밤을 들어야 해서 나는 볼륨을 높이 키워야 했다.
옆 집 오빠들은 공부도 잘하고 친절했다.
네 명의 오빠들은 친할머니와 함께 옆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특히나 맏이인 현진이 오빠가 잘생기고 착했다.
나는 현진이 오빠를 좋아했다.
오빠도 어린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해서 시계 보는 법, 한글 읽기나 쓰기를 가르쳐 주었다.
현진이 오빠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고 했다.
전교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던 현진이 오빠 ,
미술을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던 둘째 경진이 오빠
그리고 두 명의 오빠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무척이나 예뻐했던 현진이 오빠의 얼굴과 목소리, 미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현진이 오빠도 남동생들만 있다가
옆집에 사는 어린 여자 아이인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마치 막내 여동생처럼 잘 보살펴 주었다.
“ 세희야. 시계를 보려면 구구단을 외워야 해.”
“ 구구단? 나 다 외웠는데 ”
그 당시 엄마의 열성적인 교육열로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주산 학원을 다녔고
꽤 높은 급수까지 합격했다.
학원에 오빠와 언니 두 명이 다니고 있으므로 나는 서비스였다.
학원에서 가장 어린 여자아이가
주산 급수 시험에 척척 붙으니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나를 잘 사용했다.
상부상조였다.
“ 그래, 그럼 작은 바늘은 숫자 그대로 읽으면 되고
큰 바늘은 거기다 5를 곱하는 거야. “
“ 어? 시계 보는 거 어렵지 않네. ”
“ 그래? 할 수 있겠어? ”
오빠는 연습장에 시계 그림을 그리며 가르치다 내가 잘 읽자,
계단을 내려가 까만 탁상시계를 직접 가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작은 태엽을 돌려가며 바늘을 움직였다.
내가 정말 시간을 잘 읽는지 확인해 보았다.
“ 진짜네? 우리 세희 정말 잘 보네.
세희야, 뭐 먹고 싶어? 오빠가 세희 시계 잘 보니까 맛있는 거 사주께. 가자. “
오빠와 나는 각자의 계단으로 내려가 대문 앞에서 만났다.
“ 오빠 , 나 아이스크림 사줘. “
“ 그래 가자. ”
오빠는 내 손을 잡고 롯데 슈퍼로 갔다.
아이스크림 냉동고의 문을 위로 밀어 올리고, 고개를 냉동고 안으로 ' 쑤우~욱 ' 밀어 넣는다.
잘못하면 냉동고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깊숙이 들어있으면
온몸의 반을 냉동고 안으로 밀어 넣더라도 반드시 잡았다.
나는 먹는 것에는 어릴 때부터 집요했다.
‘ 이런 횡재는 정말 오랜만이다. ’
내 돈으로 살 때는 50원짜리 깐돌이
가끔 많이 먹고 싶고, 돈이 있을 때는 쌍쌍바.
그런데 지금은 오빠가 사준다.
양잿물도 마시게 한다는 공! 짜!
나는 그 당시에 너무나 먹고 싶었으나 차마 비싸서 선뜻 집지 못했던
월드콘을 집었다.
‘ 깐돌이 6개를 먹을 수 있지만
롯데 슈퍼에 오빠가 나를 여섯 번 데리고 오지 않을 테니까.
한 번에 큰 걸 잡자. ‘
어린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나 보다.
“ 오빠 이거. ” 내가 월드콘을 잡자
오빠의 얼굴이 순간 정지된다. 그리고 당황한 듯 웃다 결연한 마음으로 말한다.
“ 그래, 잘했으니까 사 줄게. ”
분명 오빠는 150원짜리 부라보 콘이면 충분하리라 예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부라보 콘의 두 배 가격인 월드콘을 잡아냈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유머 일번지의 히어로 심형래 아저씨가 선전했던 월드콘
나는 월드콘을 오빠는 깐돌이를 먹으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옥상으로 가서
이번에는 초침까지 도전해 그날 시곗바늘 세 개를 모두 읽는 데 성공했다.
오빠는 그렇게 나에게 시계 보는 법,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린 내가 배우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도 고등학생 오빠가 나를 그리 이뻐하고 챙기자
김치, 밑반찬, 고추장이나 된장 등을 챙겨서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구끼리 여행을 가거나 외출, 외식을 하면 오빠들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빠들도 선뜻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서울 구경을 했으니
서로에게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막내 오빠가 대학을 입학할 때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어린 나는 식구들과 우리 집에 월세로 세 들어 살던 3 가구.
앞 집, 뒷집, 옆집 모든 동네의 어른들의 관심 속에 자라났다.
그 당시엔 동네 아이들의 이름은 어른들이 모두 알고 아이 이름을 부르곤 했으니까
내가 골목길이나 가게 앞을 지나가면
“ 세희, 학교 가니? 학원 가니? 빨리 가라. 지각이다. 어디 아프니? ”
지금은 괜한 참견이나 주책이라 여겨지는 어른들의 관심을 받고 자라났다.
어릴 적 우리 이웃들은
집집마다 대소사를 다 알고, 축하하고, 위로해주곤 했다.
나는 종종 엄마가 해주신 김치나 요리, 반찬 등을
집집마다 날라 주곤 했다.
엄마가 이웃에게 보낸 반찬 접시에는 과일이나 반찬 등이 담겨 되돌아오곤 했다.
나는 우리 동네 최초의 어린 택배 기사였다.
그렇게 20여 년을 한 동네에서 자랐고
이사떡은 이사를 가면 반드시 해야 할 첫인사였으며
이웃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한 마중물이라고 엄마에게 배웠다.
퇴근을 하며 떡을 찾아왔다.
따근따근한 떡 특유의 묵직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살짝 남은 자투리 떡을 맛본다. 너무나 달고 맛있다.
“ 딩동 ~ 딩동 ~ ” 초인종을 누른다.
“ 안녕하세요. 804호로 이사 왔어요. 며칠 전에 이사하느라 많이 시끄러웠어요.
이제야 정리가 끝났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맛있게 드세요. “
새 이웃의 환한 웃음을 받으며 으쓱해져 나는 다음 집으로 향했다.
‘ 느낌이 좋아.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