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왜? 왜 네가 미미인형을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나? 왜? ”
“ 어?........ 어....... ”
모르고 있는 듯했다. 경화는 분명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경화의 할아버지가 이 미미 인형을 사주셨는데.......
할아버지가 약국 문을 닫고 집에서만 계실 때였다.
할아버지는 가끔 집에 혼자 계실 때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경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아프셔도 아침마다 동네 마실을 다녀오셔야 했다.
동네 가게마다 들리셔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 어쩜 이리 곱냐? ” 찬사를 한 번쯤은 들어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경화 아저씨는 택시를 운전하러 가시고
경화 아줌마는 시장에 가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혼자 마당에 나와 화분에 있는 꽃을 보고 계셨다.
“ 할아버지 뭐하세요? ” 옥상에서 식물에게 물을 주다 경화 할아버지를 보았다.
“ 현아구나, 현아 꽃에 물 주니? ”
옥상 위에 내가 심어놓은 봉숭아랑 분꽃 강낭콩 접시꽃
식물 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가
밤새 꽃들이 무사한지 살펴보는 것이 기상 후 첫 일이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세차게 오면
그 소리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우산을 쓰고 플래시를 켜고
식물들을 살피러 옥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한 밤중 올라가지 못하는 날은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는 날
전설의 고향은 매주 화요일 10시에 방영되는 데
11시쯤 전설의 고향이 끝나면 그 시간부터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나는 옥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한 여름 옥상에 인기척이 들리면 올라갈 수 있지만
화요일 밤 11시면
빨래가 옥상에 걸려있지 않는 이상 옥상으로 절대 올라가지 않았다.
입에 피가 뭍은 구미호나 내 다리 귀신이 나온 밤이면
온 동네 옥상에는 사람도 없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수요일 아침
전날 밤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고
밤새 비가 내린 후라
마당에 흙냄새와 물 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와 놀라 잠을 깼다.
내 식물들의 안전을 확인하러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 이럴 수가?....... ’
내 식물들 모두 허리가 꺾이었다.
밤 새 대나무처럼 대차게 내린 비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불어대던 바람 때문에
식물들이 반으로 꺾여,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봉숭아
한 여름이면 내 열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발갛게 물 드리는 봉숭아, 내 매니큐어
봉숭아가 모두 죽어버렸다.
여름 동안 적어도 세 번을 물을 들여야 해서
언니들이랑 엄마, 안나, 안나 아줌마랑 모두 물을 들이려고 열 그루도 넘게 잘 키웠는데......
모두 다 죽어버렸다.
‘ 내일 아침 일어나 나무 젓가락이랑 실로 묶어주려고 했는데....... ’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어제 묶어줘야 했다.
강낭콩만 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눈물을 훔치고 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
“ 할아버지 꽃 보고 계신 거예요? ”
“ 응, 현아 나왔구나. ”
“ 네, 할아버지 제 꽃 들이 다 죽었어요.
밤새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다 죽어버렸어요. “
“ 현아, 속상해서 어떡하니? ”
“ 다시 심을 거예요. 이따 엄마 오시면 꽃 집에 씨앗 사러 갈 거예요. ”
“ 현아야.
할아버지랑 꽃 집에 씨앗 사러 갈까? 할아버지가 요새 누워만 있었더니 답답하다. “
“ 네, 할아버지 걸어 다니셔도 돼요?
엄마가 할아버지 누워있으셔야 한다고 했는 데...... “
“ 아니야, 요새 많이 좋아졌어.
계속 누워만 있어서 밖에 좀 나가고 싶어. “
“ 네, 할아버지 같이 나가요. ”
나는 경화 할아버지랑 샬롬 꽃집으로 갔다.
샬롬 꽃집은 모녀가 하는 꽃집인데
샬롬 교회에서 아줌마는 권사, 언니는 초등부 성가대 선생님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잡고
왼손으로 내 어깨를 감쌌다.
나는 할아버지가 넘어지지 않도록 할아버지 허리를 감쌌다.
할아버지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했다.
꽃집에 가서 봉숭아, 분꽃, 나팔꽃, 접시꽃 씨앗을 집었다.
“ 현아야, 씨앗은 보관만 잘하면 오래 보관해도 되니까
내년에 심을 것이랑 네가 키워보고 싶은 꽃들이랑 다 사. 할아버지 돈 많아.
내 년에도 내 후년에도 꽃 들 잘 키워서 우리 집 마당에도 옮겨 주구. “
“ 네........”
갑자기 내 년이란 말을 들으니 슬퍼졌다.
‘ 내 년에도 할아버지가 계시려나? ’
코끝이 따끔해지려는 것을 얼른 비볐다.
꽃집에 들렀다 집에 오는 길에 시장 코너 영실업 장난감 가게가 보였다.
숨이 턱 막히고, 두 눈이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커졌다.
미미인형. 바비인형. 그리고 유일한 남자 인형 토토
내가 미미인형을 처음 본 것은 경화네 집에서였다.
미미인형
경화가 갖고 있는 미미인형.
미미인형은 최고급 마론 인형이라
피부가 백인처럼 핑크색에 무게감도 묵직했다.
게다가 무릎, 팔꿈치, 손목, 발목 관절이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잘 꺾였다.
금발 머리에 머리카락도 많고 머릿결도 좋았다.
내가 너무나 갖고 싶은 마론 인형이었다.
최신형에 세트까지 오만 원도 넘는다고 했다.
차마 엄마한테 사달라고 말은 못 하고
티브이로만 장난감 가게에서만 보던 인형이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워 큰 언니가 플라스틱 딱딱한 인형을 사다주었다.
그래도 나는 플라스틱 내 인형이 좋았다.
경화가 선교원에서 돌아오면
경화는 미미랑 바비인형을 가지고
나는 이름도 없는 딱딱한 플라스틱 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우리들은 주로 인형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했는 데
경화는 할머니가 사다준 인형 옷이 삼십 벌은 넘는 듯했다.
칠면조 할머니 마냥
인형 옷도 화려해서 온갖 종류의 드레스가 열 벌도 넘었다.
거기에 원피스, 미니스커트, 투피스. 바지, 반바지
종류별 신발에 가방에 머리핀
정말 다양한 소품들
옷만 갈아 입히고 놀아도 두 시간도 넘게 놀 수 있었다.
내 플라스틱 인형은 옷이 딱 한 벌
그것도 몇 번 입혔다 벗기니 올이 다 풀려
간신히 드레스의 형태만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잘 가지고 놀았고
경화 비위만 잘 맞춰주면
나는 경화의 바비인형으로 놀 수 있었다.
가끔 경화의 심사가 틀어지면
바비 인형은 절대 내주지 않고, 토토 인형을 내주었다.
토토 인형은 바비와 미미인형의 남자 친구인데
토토 인형을 가지고 놀면
나는 바비와 미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 친구 역을 해야 했다.
목소리도 남자처럼 내야 하고, 행동도 남자처럼 해야 해서
나는 토토가 정말 싫었다.
유리창에 진열된 것은
최신형 미미인형이었다.
거기다 인형 화장대, 의자, 큰 옷장, 드레스 세 벌, 구두, 운동화, 가방, 빗
정말 모든 것이 갖춰진 디럭스 급 최신형.
나는 꽃 씨앗을 들고
유리창에 진열된 커다란 종이 상자 속 미미인형을 보느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 현아야, 현아 저 인형 없지? ”
“ 네........”
며칠 전 목욕을 하다 내 플라스틱 인형은 사망했다.
그나마 군데군데 남아있던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관절마다 물이 다 들어가서 간신히 물은 뺐지만
냄새도 나고 얼굴에 그려진 눈도 잉크가 빠져버려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이 되어버렸다.
할아버지가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더니 커다란 종이 상자를 들고 나오신다.
“ 현아야, 이거 가져라. 현아 니 거다.
경화랑 놀 때 이거 가지고 놀아.
경화나 할머니한테 내가 사줬다고 말하지 말고
이거 현아랑 할아버지랑 비밀이다. 알았지? “
“ 정말요? 와~~~ 감사합니다. ”
나는 신이 나서 할아버지 허리를 더 꼭 감쌌다.
할아버지도 좋으신 지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셨다.
남들은 뭉툭하다고 주먹코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코도 날렵하고 잘생겨 보였다.
그 날부터 나는 미미인형과 모든 것을 같이 했다.
잠도 내 옆에서 같이 자고, 목욕도 같이 하고, 어디든 같이 다녔다.
진주 한복집에 가서 남은 자투리 천을 얻어와
미미인형의 옷을 손수 만들었다.
언니와 인형 옷을 몇 번 만들어 본 터라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나날이 옷 만드는 실력은 늘어갔고
문방구나 장난감 가게에서 팔지는 않지만 독특한 나만의 인형 옷들을 만들어 갔다.
엄마가 틀어주는 구연동화나 전래 동화를 듣고
하루 종일 미미인형 옷을 만들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도 몰랐다.
내가 일주일도 넘게 집 밖으로 나오지 않자.
경화가 궁금해서 우리 집으로 왔다.
인형 놀이를 할 상대가 없어 심심한 것이다.
경화 동생 선화는 토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미미 친구 바비 역할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구연동화 테이프 덕에
역할 놀이며 남자 목소리를 잘 내었다.
놀이 상대가 없으니 심심한 것이 분명했다.
“ 현아야, 놀자. ”
“ 어, 경화 왔네. 그래 들어와. ”
“ 현아야, 이거 뭐야? 와 이거 티브이에서 선전하는 건데.
이거 진짜 비싼 건데. 드레스 진짜 이쁘다. “
“ 응...... 이쁘지? ”
“ 이거 어디서 났어? ”
“ 어.... 이거 선물 받았어. ”
“ 뭐 하는 거야? 뭐 만들어? ”
“ 응, 인형 옷. 너도 만들래? ”
“ 아니, 싫어, 귀찮아. 우리 집 가서 인형 놀이하자.
너 인형 생겼으니까 이제 니 인형 가지고 놀자. 우리 집으로 가자. “
“ 그래, 가자. ”
나는 미미인형을 들고 각종 드레스와 소품들을 넣은 천가방
화장대, 옷장, 의자 등을 넣은 운동화 상자를 들고
자랑스럽게 경화네 집으로 갔다.
경화 할아버지는 마루에 누워 햇빛을 쐬고 계셨다.
그리고 경화와 내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셨다.
순간순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할아버지는 입가에 미소가 걸리셨다.
따듯한 저녁노을처럼 할아버지 얼굴에 연주황색 웃음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인형 놀이가 지겨워질 무렵
할아버지는 롯데 슈퍼로 가서 쭈쭈바를 사 먹으라고
백 원씩 주셨다.
롯데 슈퍼에 가서 쭈쭈바를 사 먹고, 뽀빠이를 사고 경화네 집에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고 계셨다.
“ 안녕히 계세요. ”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는 미미인형과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내가 본 경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날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 왜? 왜? 니 미미인형 하고 우리 할아버지랑 무슨 상관인데?
너 그 인형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
“ 어, 그게 너네 할아버지가 사주셨는 데.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
“ 왜 우리 할아버지가 너한테 인형을 사줘? 왜? 왜? 왜?
그 인형 가져와. 내 꺼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으니까 그거 내 꺼야. “
“ 아니야, 그거 내 꺼야. 할아버지가 나 가지라고 하셨어. ”
“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줬으니까 내 꺼야.
내 꺼 내놔. 내 꺼야. 내 거꺼. “
“ 아니야, 내 꺼야. 분명히 할아버지가 내 꺼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내 꺼야. ”
지지 않으려고 뺏기지 않으려고 나도 악을 썼다.
갑자기 “ 휙~ ” 경화가 내 머리를 잡아채고 발로 내 배를 차기 시작했다.
질 수 없다. 절대 내 인형을 뺏길 수 없다.
나도 경화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댔다.
“ 악~~~ ”
“ 네가 먼저 놔. ”
“ 싫어 , 네가 먼저 놔. ”
서로 놓지 않고 머리채를 흔든다.
비명이 난무하며 발이 공중에서 허둥댄다.
경화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있고, 덩치도 좋은 데 질 싸움이 아니다.
그러니 경화가 내 머리채를 잡고 시작한 것이다.
한 번도 말싸움이나 몸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더군다나 미미인형은 절대 뺏길 수 없다.
할아버지가 주신 인형이니까.
마지막 선물이니까
경화가 내 머리채를 잡던 손을 놓았다.
어차피 질 싸움이니 자기편이 필요했다.
경화의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도 손을 놓았다,
눈물이 나왔지만 절대 울지 않았다.
울면 진 거다. 그러면 인형을 뺏길 수도 있다.
경화가 서럽게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경화 울음소리에 놀라 마침 마실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경화 할머니가 양산을 집어던지고 뛰어오셨다.
“ 할머니, 할머니
현아 인형 가져와. 저 인형 가져와.
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사 준거야. “
경화 할머니가 나를 노려보신다.
“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저 사주신 거예요. 저 가지라고 했어요. ”
“ 할머니 가져와. 현아 인형 가져와. 내 꺼야. 내 꺼. 내 인형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 주셨으니 그것도 내 꺼야. ”
“ 아니야. 내 꺼야. 내 인형이야. ”
경화 할머니가 순간 내 팔을 잡으셨다.
“ 현아, 너 경화 머리채 잡았지? 경화 배도 찼지? ”
“ 경화가 먼저 내 머리채 잡고 흔들었어요. 배도 차고 ”
“ 네가 우리 경화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
할머니가 갑자기 내 머리채를 잡았다.
갑자기 경화가 쏜 살같이 우리 집으로 튀어 들어간다.
‘ 안 돼, 인형이다. 인형. 내 미미 인형을 가지러 우리 집으로 간다.
대문을 닫고 나왔어야 했는 데...... ’
“ 할머니 놔주세요. 이 손 놔주세요.
다시는 경화 안 때릴게요. 제발 놔주세요. “
“ 네가 뭔데 우리 경화를 때려? ”
“ 할머니, 제가 잘 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
“ 경화 할아버지가 사주셨으면 그것도 경화꺼지. 그냥 가져다주면 될 일이지.
왜 이렇게 경화를 괴롭혀. “
“ 아니에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 꺼라고 하셨어요. 제 인형이에요. ”
어느새 경화의 손에는 내 미미인형과 옷들이 들어있는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 경화야. 그거 내 꺼야. 그거 내 꺼야. 제발 돌려줘. ”
“ 아니야, 이거 니 꺼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가 사주셨으니 이것도 내 꺼야. “
경화가 방 안으로 들어가 큰 검정 가위를 들고 나온다.
“ 싹둑싹둑 ”
미미의 머리카락이 탐스러운 금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긴 생머리가 까까머리가 되었다.
미미 옷이 잘려 나간다. 모든 옷이 다 찢겼다.
드레스도 치마도 바지도 내가 직접 만들어진 내 옷들도 걸레조각이 되었다.
검정 유성 사인펜으로 미미의 얼굴이 새까맣게 칠해졌다.
의자며 가방 운동화 구두
작은 소품, 모든 것들이 경화의 발에 밟혔다.
“ 악..... 앙~ 엄마, 엄마...... ”
나는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던 경화 엄마가 놀라서 쳐다보신다.
할머니가 내 머리채를 슬그머니 놓았다.
“ 아줌마, 경화가 경화가 내 인형을 다 망가뜨렸어요.
할아버지가 사 주신 인형인데 경화랑 사이좋게 잘 가지고 놀라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인형인데.....
다 망가져 버렸어요. ”
“ 경화야. 아이고 너 진짜 왜 이러니? 어쩌려고 그래?
내가 속상해서 못 살겠어.
어머니, 어머니도 제발 좀 그만 하세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동네 창피해서 이사라도 가야지.
현아야, 울지 마 아줌마가 미안하다. 아줌마가 미안해.
아줌마가 경화 혼 내줄게.
경화, 너 이 계집애 너 이리 와. “
“ 할머니, 할머니 엄마가 나 때리려고 그래. ”
경화가 요리조리 숨다 할머니한테 달려간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내 미미인형을 다시 집어 들었다.
“ 이제 그거 가지고 놀면 되겠네. ”
경화는 웃으며 인형을 집어 드는 나를 보고 말했다.
인형을 집어 들고 경화에게로 걸어갔다.
놀란 경화가 뒷걸음질 치다 할머니 뒤로 숨는다.
경화를 향해 내가 쏘아 부치며 말했다.
“ 너는 이제 내 친구 아니야.
앞으로 절대 너랑 놀지 않을 거야.
너랑 다시는 놀지 않을 거야.
나한테 아는 체하지 마. 너랑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니까. “
“ 저저저...... 어른이 있는 데도........
너 한 번만 더 우리 경화 괴롭혀봐. 가만히 안 둘 거야. ”
할머니가 말했다.
집으로 가다 할머니를 휙 돌아본다.
“ 아휴 아휴 아휴~~~~ 내가 못 살아. ”
“ 찰싹찰싹 ” 경화 아줌마가 경화 등짝을 후두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 왜 우리 경화를 때려? 왜 때려? 우리 경화를 ”
할머니가 아줌마에게 소리를 지른다.
“ 엄마랑 할아버지는 나보다 현아를 더 좋아해.
맨날 현아만 착하다고 하고, 현아 닮으라고 하고
나만 미워해. 엄마도 할아버지도 다 미워. 다 싫어.
할아버지 보러 앞으로 안 갈꺼야. "
경화의 커다란 울음소리도 들린다.
대문을 닫고
수돗가로 가서 미미인형 얼굴을 닦는다.
비누로 빨래 비누로 퐁퐁으로
때수건으로 수세미로 아무리 닦아도 까만 얼굴은 다시는 하얘지지 않았다.
미미의 큰 눈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모든 것이 담긴 신발 상자에 미미인형을 넣고 뚜껑을 덮었다.
까만 미미인형 얼굴처럼
경화를 향한 나의 마음도 까매졌다.
“ 경화랑 사이좋게 놀아라. ”
할아버지가 하셨던 마지막 부탁도 이제 소용없다.
할아버지와 했던 마지막 약속은 이제 지키지 않을 거니까
경화 할머니를 봐도 인사하지 않았다.
할머니 양산만 보여도 , 사각사각 한복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도
먼 길을 돌아가거나 모퉁이에 숨어버렸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
경화다
‘ 네가 우나? 내가 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이제부터 전쟁이다. ‘
경화가 선교원 가방과 모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똑같은 선교원 모자와 가방을 메고 동주도 경화 옆에서 걸어오고 있다.
경화가 동주의 손을 슬며시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경화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동주는 무표정하다.
분명 경화가 김동주를 좋아하는 것이다.
동주
김동주
파란 대문 집에 사는 남자아이
내게서 미미인형을 뺏어간 것처럼
나에게서 할아버지를 빼앗아 간 것처럼
경화에게서 김동주를 뺏어 올 것이다.
‘ 경화, 네가 우는 모습을 반드시 볼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