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여자,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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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책 『나 여기 있어요(I’m Still Here)』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완전히 스러지기 직전,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나는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을 뜨고 싶다. - 엘자
이 말은 혼수상태에 빠진 엘자의 외침이다. 목소리로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지만,
그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클레리 아비의 프랑스 소설 『나 여기 있어요(I’m Still Here)』는 혼수상태의 주인공 엘자와,
그녀의 병실에 실수로 들어온 남자 티보의 교차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얼음산 등반 사고 이후 20주째 혼수상태에 빠진 엘자.
의료진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에게 연명 장치 제거 일정을 상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엘자는 이미 6주 전부터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대화, 병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의 라디오 소리, 간호사의 발걸음까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감각은 ‘청각’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엘자는 사고 이후 5개월째 혼수상태다. 모두가 그녀를 '끝난 존재'처럼 여길 때,
독자는 오히려 엘자의 또렷한 의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생각하고, 듣고, 느낀다. 단지 움직일 수 없을 뿐이다.
고치를 빌려 사는 번데기, 어쩌면 이게 나을까.
나는 정말 여기서 나가고 싶다.
나도 집주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 엘자
아마 내 말을 듣지도 못할 텐데.
내가 네 팔을 만져도 넌 틀림없이 아무것도 못 느끼겠지.
나 참, 이건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격이네...
그래도 곁에서 말은 해도 되는 것 같으니까 계속 말할게.
하지만 네가 들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어쩌면 그게 더 나은지도. - 티보
이 말은 엘자에게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엘자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애써 배려하며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손과 발이 되어주려 애쓰고, 지나치게 예의 바르며, 때로는 그녀 앞에서 불편해했다. 하지만 티보는 달랐다. 그는 엘자를 ‘어렵지 않게’ 대했다. 마치 그녀가 식물 상태에 있더라도, 그 앞에서 큰 절을 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로 엘자는 느낀다. 그의 말, 숨결, 발걸음 하나하나가 자신을 다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준다. 6주 만에 엘자를 미소 짓게 만든 남자. 그녀는 그에게서 웃고 싶어졌다. 소리 내서 웃다가, 기쁘게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순수한 기쁨의 눈물로.
엘자는 움직일 수 없지만, 더 이상 정지된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감정의 반응을 시작했다. 그리고 티보의 존재가, 그 멈춰 있던 감정에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티보는 동생의 뺑소니 사고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병원을 전전한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엘자의 병실에서 어딘가 모르게 조용하고 편안한 공기에 그는 끌린다.
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처음엔 일방적이다. 그런데 점점 달라진다.
티보는 엘자의 ‘존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엘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병실을 찾는다. 말하고, 잠시 머물고, 떠난다.
누군가에겐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친구 쥘리앵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겨우 일주일 전에 있었던, 그것도 너 혼자만의 일방적인 만남에 완전히 빠져 있어.”] - 쥘리앵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티보도 알고 있었다.
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래도 나는 그 여자가 깨어났으면 좋겠어.”] - 티보
그건 바람이자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엘자에게 닿는다.
엘자는 속으로 외친다.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나 살아 있단 말이야!”] - 엘자
당연히 티보는 그 말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는 네가 깨어났으면 좋겠어.”] - 티보
이 말은 엘자에게 생명의 신호처럼 들린다.
그래서 엘자는 작은 저항처럼, 희망처럼, 맥박 측정기로 ‘삑’ 소리를 낸다.
그녀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지구상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두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소리 없이 깊어진다.
티보는 엘자 앞에서 자신이 감춰둔 아픔을 조금씩 꺼내고,
엘자는 그 앞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한다.
이 소설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시점 전환이다.
엘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보면,
나는 그녀의 몸속에 갇힌 듯한 답답함과 동시에 작은 희망을 느끼게 된다.
티보의 시점에서는, 무너진 일상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감정을 따라가게 된다.
같은 사건이 엘자와 티보의 서로 다른 감각으로 설명되면서,
독자는 감정을 더 정밀하게 조율하게 된다.
마치 양쪽 입장을 들어봐야 진짜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이 교차 시점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다.
'말이 없이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방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혼란스러웠다.
소설 속에서는 당연한 감정선처럼 느껴졌지만, 현실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혼수상태의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정상적’일까?
물론, 티보는 엘자를 '죽은 사람'처럼 대하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를 느끼고, 그녀가 듣고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약간 무섭다’, ‘그거… 네크로필리아 아냐?’ 일 것이다.
물론 엘자는 살아 있고, 티보는 시체에 집착하는 사이코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지닌 위태로운 아름다움은, 현실과는 조금 다른 결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빠져드는 관계.
어쩌면 그게 로맨스 소설의 힘일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엘자가 눈을 뜨고,
환한 빛에 눈이 부셔 감았다가 다시 서서히 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순간, 티보가 그녀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사로 소설은 끝이 난다.
[“너…… 여기 있지?”] - 티보
엘자는 속으로 대답한다.
[“나 여기 있어.”] - 엘자
엘자가 진짜로 깨어난 것일까?
아니면 저 환한 빛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평화로운 끝일까?
작가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다.
이런 열린 결말은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누군가는 명확한 해피엔딩을 원하고, 누군가는 뚜렷한 비극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결말이 좋았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점점 더 ‘해피엔딩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
엘자의 마지막 대답은, 그저 희망적인 독백이 아니라 정말 ‘살아 있음’을 말하는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녀는 진짜로 깨어났고, 그녀의 마음도 깨어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충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 결말은 마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이어지는 이야기 같다.
그래서 더 오래, 깊게 남는다.
『나 여기 있어요』는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이,
가장 강한 목소리로 “나 살아 있어요”라고 외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
소리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날들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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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