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입니다, 양키 군과 하얀 지팡이 걸

단순한 사랑 이야기 너머로, 편견과 차별을 마주한 이들의 성장이 감동을

by SoInk
[크기변환]양키군과 흰지팡이걸.JPG

시력이 흐릿하게 보이는 ‘약시’를 가진 고등학생 시라와테 유키코. 빛과 색 정도만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을 뿐, 작은 글자나 형태를 분명히 보기 어려운 그녀는 흰 지팡이와 점자 블록에 의지해 학교에 다닌다. 익숙한 편의점 진열대의 구조를 미리 기억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유키코는 그 장애를 단점으로만 여기지 않는 밝고 유쾌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평소처럼 걷던 점자 블록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지각을 할 수도 있는 촉박한 상황에서 유키코는 조심스럽게 길을 비켜달라고 요청하지만, 상대가 갑자기 그녀의 지팡이를 잡으려 하자 본능적으로 발차기를 날린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동네에서 유명한 문제아, 쿠로카와 모리오. 모리오의 친구들이 “그 얼굴에 난 상처를 모르냐”며 유키코에게 따져 묻자, 유키코는 자신 때문에 얼굴을 다치게 한 줄 알고 다급히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확인한다. 그리고 그 순간, 모리오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날 이후 모리오는 유키코의 등하굣길을 따라다니며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점자 블록, 흰 지팡이, 약시의 특성 등을 스스로 찾아 공부하고, 그녀의 불편함을 배려하며 다가간다. 유키코는 처음엔 그의 고백을 장난으로 여기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와 행동들에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크기변환]Anx5xiOWZUNbJWZ5SJTveE4r4Fu.jpg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리오가 유키코에게 “당신은 평범하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양키’ 이미지의 모리오는 자신을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낀다. 반면, 흰 지팡이를 들고 걷는 유키코는 오히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껴왔다. 그런 유키코에게 ‘평범하다’는 모리오의 말은 그 어떤 공감보다 강력한 위로가 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특별하거나 결핍된 존재로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모리오는 유키코에게 어울릴 것 같은 빨간 구두를 선물하고, 유키코는 처음으로 혼자 쇼핑에 도전하며 그 구두에 어울리는 옷을 스스로 골라낸다. 이 장면은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키: 흔희 양아치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에서 사용하는 양키는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옷차림도 단정하지 않고 망나니스러운 사람을 비웃는 말로 건달, 깡패, 날라리에 가깝다.




[크기변환]c4lqh8OVuEt2KVHp5UbpDWFmy2C.jpg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시각장애인, 외모 편견,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담백하고 섬세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유키코가 시력을 잃은 후, 그녀를 걱정한 언니 이즈미가 자신의 일까지 뒤로 미루며 유키코를 과잉보호하던 갈등 장면이다. 이 장면은 장애인과 그 가족 사이에 실제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넌 평범하지 않으니까”라며 제지할 때, 그 무력감은 당사자를 두 번 상처 입히게 된다. 유키코는 언니에게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분명히 말하며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간다. 싸우고, 이해하고, 화해하며 두 사람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흐름은 모리오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양키 이미지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취업에서 번번이 좌절하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력서를 제출하며 꾸준히 도전한다. 그렇게 자립을 시작하는 모리오의 모습을 보며, 유키코 역시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낸다. 결국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는 물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한 도전에도 성공한다.


이 드라마는 “장애가 있어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울하게 그리지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포장하지도 않고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전해준다. 또한, 드라마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더 큰 이야기로 시야를 확장한다. 쿠로카와 모리오는 얼굴의 흉터 때문에 편견에 시달리고, 그를 짝사랑하는 친구 시시오는 동성 간의 사랑을 조용히 숨긴 채 살고 있다. 작품은 이들의 감정을 무겁지 않게, 하지만 절대 가볍지도 않게 다룬다. 그들의 마음이 소외되지 않도록, 캐릭터 하나하나의 서사에 존중이 담겨 있다.




ceAKNyQZZrz7CaCKnzW9MPV3Pcw.jpg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차이’를 품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고,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사랑입니다, 양키 군과 하얀 지팡이 걸》은 그 소중한 진리를 부드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전해준다.




*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어요.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8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30년 만의 메시지 - 기묘한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