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불태워라

<귀멸의 칼날> 렌고쿠 쿄쥬로

by 스니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렌고쿠 쿄쥬로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출처: 귀멸의 칼날



주변에서 다수의 추천을 받고 <귀멸의 칼날: 무한 열차> 편을 봤다. 작품의 유명세는 익히 알았지만, 이 극장판 한 편을 보고 나자 직감했다. 아, 정주행 하겠구나.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강한 마음을 가진 렌고쿠란 청년이, 어째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토록 뜨겁게 타오르다 사라져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 극장판의 주인공은 본편 주인공인 탄지로가 아닌 렌고쿠다. 그의 첫인상은 영화 도입부에서 연신 '맛있다!'를 우렁차게 외치며 도시락을 먹는 장면 때문에 그저 맑은 눈의 광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극장판을 다 보고 원작까지 섭렵하고 나자, 내게 렌고쿠는 과장 보태어 이 세계관 속 위인처럼 느껴졌다.


귀살대의 리더 계급인 '주(柱)'들 중 하나인 그는 화염의 호흡을 사용하는 염주(炎柱)로 불린다. 작품 속에서 이미 많은 등장인물의 호의와 존경을 살 만큼 선하고 유쾌하며 다정하면서도 강한 남자다. 사람들을 구하고 돕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선을 위해 꾸준히 스스로를 단련해 온 사내이기도 했다.


렌고쿠가 무한 열차에서 전력을 다해 마음도, 생명도 불태운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강하게 태어났으니까.











강자의 의무


렌고쿠의 유년시절은 마냥 유쾌하지 못하다. 강인하고 다정했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거칠고 폭력적인 가장으로 변하였고,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는 병에 걸려 일찍 가족 곁을 떠나기 때문이다. 대대로 귀살대의 주였던 집안에서, 존경받던 '주'인 아버지가 귀살대에 냉소적인 삶에 빠지자, 렌고쿠는 기꺼이 그 뒤를 잇고자 훈련에 임했다.


원래라면 아버지에게 배웠을 화염의 호흡을 독학으로 깨우칠 정도로, 렌고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에겐 돌봐야 할 마음 여린 남동생이 있었고, 가문의 명예를 이어야 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바랐고, 무엇보다 그에겐 의무가 있었다.



출처: 원작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난 렌고쿠에게 그의 어머니는 당부했다.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강하게 태어났으니까, 그 재능과 힘을 오로지 약자를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그녀의 올곧은 가르침은 곧 렌고쿠의 사명이 되었다. 선택받은 강자로서 마땅히 약자를 구하는 데 전심을 다하는 사명. 그 사명은 여러 차례 렌고쿠를 사지로 몰아넣고 한계를 실험하지만, 그는 이겨냈다. 오히려 벼랑으로 몰릴수록 그의 마음은 뜨거운 줄 모르고 불타오르게 된다. 그에게 고난은 그저 의무를 다하도록 만드는 재료에 불과했다.










강한 마음


하지만 손꼽히는 그의 강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한 신체나 재능이 아니다. 어떠한 한계에도 굴복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의지였다.


렌고쿠는 언제나 불리한 상황을 탓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울 수 없게 되자 홀로 수련과 훈련을 하며 화염의 호흡을 깨우쳤고, 본인도 충분히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을 남동생에게 형으로서 아낌없이 주었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시절, 강한 도깨비와 붙게 되자 되려 마음을 더 붙잡고 각성한다. 그는 각성하며 마침내 자기의 이름을 딴 '연옥'이란 기술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귀살대 '주'라는 영광을 쟁취해 낸 강하고 선한 마음은 무한 열차에서 가장 뜨겁게 불타오르고 만다. 연이어 귀살대원이 사라진 그 열차에 파견된 렌고쿠는 함께 파견된 어린 후배들과 맡은 의무를 행한다. 그들의 임무는 열차 속 일반인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과 해를 가한 오니를 해치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한 열차는 그들을 쉬이 임무에 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꿈에 갇히게 되었을 때, 렌고쿠의 무의식은 우리를 그의 과거로 데려간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닌 가장 씁쓸했던 순간으로 말이다. 아버지의 인정과 귀환을 바라며 주가 되었음을 고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였다. 그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나, 렌고쿠는 재빨리 그 씁쓸한 마음마저도 받아들이며 묵묵히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더 상처받은 남동생의 마음을 위하고, 더 주로써 책무를 다하는 방향으로.


렌고쿠의 진정한 무의식을 볼 수 있는 장면은 바로 핵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핵은 뜨겁게 이글거리는 황무지에 있었다. 한없이 삭막하고 뜨겁지만, 그만큼 화창하고 환한 곳에. 마치 렌고쿠의 지난 삶과 그 삶 속에서도 묵묵히 일궈낸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평생을 가꿔온 이타적인 그 내면을 말이다.


렌고쿠는 알고 있었다. 삶을 지탱하는 건 강한 신체가 아닌 강한 마음임을. 이번 세대 귀살대원들 중 상현 도깨비와 싸운 첫 '주'가 되었을 때, 렌고쿠는 확연한 힘의 차이를 느꼈음에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전투 센스와 상황 파악 능력이 뛰어난 렌고쿠는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도깨비가 되지 않아."


도깨비가 되라며 유혹과 감탄을 하는 적인 아카자에게 렌고쿠는 확실히 선을 긋는다. 아무리 그의 강한 신체가 회복하기 힘든 부상을 입어도, 아카자는 렌고쿠의 가장 큰 무기이자 동기인 그의 마음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렌고쿠는 알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인간의 마음임을. 그 어떤 도깨비도 그의 마음만큼은 이기지 못했다.










한계를 뛰어넘어


"노쇠하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노쇠하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더없이 사랑스럽고 숭고한 거다. 강함이라는 건 비단 육체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탄지로를 조롱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혐오하는 아카자에게 렌고쿠는 되려 신체적 강함만이 강한 것이 아니라며 반박한다. 렌고쿠는 인간의 유한함을 사랑했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한 남자다운 마음가짐이었다.


렌고쿠의 단편적인 과거만 봐도 그가 삶과 인간을 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올곧고 선한지 알 수 있다. 유약하고 재능 없는 남동생을 성심 다해 지켜주고 응원해 준 것, 알게 모르게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아도 상냥하고 발랄한 미츠리를 훌륭한 제자로 대하고 존중한 것, 혈귀인 네즈코를 '귀살대원'으로써 반대했으나, 끝내 네즈코를 귀살대원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 등. 이렇듯 그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남을 위할 수 있는 숭고한 마음이었다.


인간은 나약하다.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좌절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렌고쿠가 본인보다 약한 사람들을 지킬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지막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탄지로를 위로한 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가능성을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무를 지키기 위해 렌고쿠는 한계의 끝에서 한번 더 강해졌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육체를 압도한 뜨거운 마음과 함께.









마지막 웃음


"난 나의 책무를 다할 것이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죽게 놔두지 않아!"


렌고쿠는 끝내 본인의 책무를 완수했다. 실제로 렌고쿠를 제외하고 무한 열차를 탑승했던 승객들 중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몸과 마음을 모조리 불태운 그의 생명이었다. 한평생 주가 되기 위해, 주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살아온 그는 삶의 끝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출처: 원작


"어머니. 제가 잘한 건가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한 건가요?"


환상처럼 마주한 어머니에게 묻는 마지막 말마저 그는귀살대원 그 자체였다. 비로소 어머니의 다정한 대답을 듣고서야 활짝 웃으며 20살의 어린 청년 렌고쿠 쿄쥬로로 돌아갈 만큼, 그는 한평생 그에게 부여된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강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약자들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으로부터 죽음 앞에서야 해방된 것이었다.


렌고쿠는 이 극장판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그의 강인하고 따뜻한 마음을 이어받은 귀살대원들이 끝까지 그들의 책무를 다하게 된다. 아무리 상현에 비하면 나약한 육체 때문에 한계를 경험하더라도, 그 한계를 기어코 뛰어넘고 마음을 불태우며, 그들에게 허락된 유한함을 향해 달려간다. 렌고쿠가 보여준 그 불타는 마음은 그들에게 그가 남긴 가장 큰 위로이자 응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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