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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13. 2021

엄마의 두 번째 삭발

엄마의 투병 일기 - 200801


최근 한 달여간의 하늘은 엄마를 닮아 있다. 축 처진 하늘의 시커먼 구름이 그랬다.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진 엄마의 몸과 마음은 도무지 회복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파란 하늘이 있긴 했었나 할 정도로 연일 내리는 비가 징글맞았다. 그래도 쏟아지는 비와 낮게 드리워진 먹구름과 축축한 습기를 버텨낼 수 있는 건 조금만 참으면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그리고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올해 초 정기검진에서 엄마의 암세포가 아주 약간 커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항암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자신의 상태가 말기임을 알게 되었고 강아지 구충제 펜벨다졸을 드시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강아지 구충제가 암세포를 죽인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암세포가 언제 어떻게 엄마를 옥죄어올지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구충제 몇  개를 어렵게 구해놓은 터였다. 구충제의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만일 먹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입증되지도 않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하는 투혼을 발휘했음에도 최근 암세포가 급격하게 커졌다는 결과를 들어야만 했다. 더 이상의 항암은 의미가 없다던 주치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다시 해보자고 했다. 엄마의 얼굴에서는 항암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희망과 항암의 부작용(고통)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게 1년 만에 다시 항암을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났다. 이번 항암의 고통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울렁거림과 구토가 엄마를 괴롭혔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증세가 그래서 끊임없이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1년 전의 항암처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가 거의 제로까지 떨어져서 무균실에서 감옥 신세를 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항암주사를 맞은 지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퇴원 후 엄마는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가실 때만 잠깐 일어나셨을 뿐 종일 누워만 계셨고 잠만 주무셨다. 밥 맛과 입 맛이 전혀 없는 엄마의 또 다른 고통 중의 하나는 음식을 삼키는 것이었다. 먹어야만 그래서 기운을 차려야만 다음번 항암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엄마는 진작부터 음식을 삼키는 모든 행동을 중단했을 것이다. 식탁까지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발걸음처럼 두려움으로 무거웠다. 모든 근육에 힘이 빠진 듯 젓가락질이 안돼서 포크를 꺼내야만 했다. 화장실에서 넘어지고 침대에서 떨어져 엑스레이를 찍었다.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항암 치료를 계속해야만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 엄마와 함께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1년 전 항암치료를 모두 마친후부터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다시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초기로 잔디를 깎을 때처럼 엄마의 머리카락도 가지런히 깎여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머리를 깎는 동안 파마를 한 다른 아주머니와 미용사는 당뇨엔 여주가 좋네 뭐가 좋네 하면서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평소 같았으면 끼어들기 좋아하고 오지랖 넓은 엄마는 이때다 하면서 그들의 수다에 끼어들었을 테지만 앉아있을 힘조차 없는 엄마는 내 뒷모습만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는 엄마의 머리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했다. 머리도 살이 빠진 건지 1년 전보다 더 작아진 듯했다. 투명하게 머리를 깎은 엄마는 다시 두건을 쓰기 시작했고 마치 뭔가를 결의한 것처럼 누룽지 백숙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일주일 후에 있을 2차 항암에서 퇴짜를 맞으면 안 된다며 먹고 힘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 비장했던 결의와는 다르게 엄마는 작은 닭다리 하나와 누룽지죽 조금을 겨우 드셨을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매일매일 무너져내리는 몸뚱이 때문에 느끼는 절망 속에서도 순간순간 되든 안되든 비장한 결의와 각오를 다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곧 장마가 끝나고 파란 하늘이 열릴 거라는 희망처럼 엄마도 툭툭 털고 기운을 차릴 거라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주일 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온 엄마와 함께... 딸내미가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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