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님께 하지 못했던 말.
충남 태안에 위치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20대의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용균의 죽음은 자본에 의한 죽임이고, 이 땅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아래는 2019년 1월 23일에 끄적였던 글입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더 이상 자식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거리에서 팔뚝질을 하시던 김용균의 어머님이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그때 어머니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입니다
마흔이 넘어 어렵게 딸을 낳았습니다. 그 녀석이 이제 다섯 살입니다. 확신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매일 물고 빨아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 녀석을 맡길 곳이 없어서 사무실에 데려갔습니다. 종일 여러 일정을 소화하신 김용균의 어머님과 이모님이 사무실에 들르셨습니다. 천안에서 열리는 촛불에 함께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녀석을 보더니 금세 얼굴이 환해지셨습니다.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이것저것 물어보셨습니다. 김용균의 어머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딸내미에게 김용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오빠가 천사가 되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엄마가 많이 슬퍼하고 있다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모(어머님)를 만나면 꼭 안아주면서 힘내세요라고 말하면 좋겠다고 했고 녀석은 알겠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뭐가 그리 쑥스러웠는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실 회의 테이블 위에는 김용균 버튼이 한 움큼 놓여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오시기 전에 치워야겠다고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어머님은 그 버튼 하나를 들었습니다. 녀석에게 버튼을 보여주며 “여기 있는 오빠가 아줌마 아들이야”라고 했습니다. 순간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눈물을 참느라 어금니를 앙 깨물어야만 했습니다.
흙수저인 딸내미가 나중에 커서 잘 먹고 잘 살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규직으로 살아갈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성실과 노력으로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가난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대다수의 청년들처럼 불안한 미래에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훨씬 클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니까요. 딸내미가 제 곁에 오고 나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들입니다.
여하튼 그 고민의 과정 속에서 김용균의 죽음과 어머님 아버님의 싸움을 마주했습니다. 인간이 이토록 고귀하고 숭고할 수 있음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개인의 욕심과 이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대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동력임을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바람인 저의 딸이 아니 이 땅의 수많은 민중들의 자식들이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