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도 아직 어린아이라고
언니는 자주 화가 나 있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를 데리고 매일 아침 등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짧은 상고머리를 하고선 말도 더럽게 안 듣는 세상 산만한 여동생, 그 여동생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동네 단짝 친구까지. 두 살 어린 동생들을 1+1 세트로 묶어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매일 아침 등교시켜야 했다.
90년대 초등학생 시절에는 아이들끼리 등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는 원래는 성남의 단남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3학년이 되자마자 전학을 왔다. ‘찻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초등학교로 전학 온 것이다.
찻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이 초등학교는 치명적인 단점 하나가 있었다.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초등학생 걸음으로는 편도 30분은 족히 걸렸으니 말이다.
성남의 가파른 언덕을 등산하는 심정으로 올라야 했고 여러 문방구를 지나가며 먹거리, 놀거리의 유혹을 뿌리쳐야 했다. 어린 나에겐 고문이었다.
언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자기 키만 한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동생들을 챙겨야 했고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등교 전쟁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잠도 많고 게으른데다 산만하기까지한, 그야말로 손이 참 많이 가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달라지진 않았다.) 분명 세월아 네월아 천하태평했을 게 안봐도 비디오다. 언니는 매일 아침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다 지쳐 무서운 얼굴을 하며 뒤로 힐끗 째려보며 소리쳤다.
“너 빨리 안와!”
어린 내 눈에 언니는 왜 그리 화가 나있는지, 뭐가 그리 급한지 몰랐고 (모른체했고) 언니는 등원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애썼다. 아마 언니 몸에서 사리가 몇 개는나왔을 것 같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이 등원시키기가 보통일인가? 그것도 초등학생이 편도 30분 거리의 등굣길을 말이다. 매일 아침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때 언니 나이가 10살이다.
10살이면 어려도 너무 어린 아이다. 언니도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 었다. 생각해보면 언니가 너무 짠하다.
되돌아간다면 언니 말 좀 잘 들으라고 내 머리를 한대 콩 쥐어박고 싶다.
언니 말좀 잘 들으라고. 언니도 아직 어린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