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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크랜디아 Aug 09. 2020

차선으로 살아도, 괜찮아

딸에게 해주고픈 가지가지 이야기#3

"최선을 다 했니?"


 나는 이 말이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져.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영혼까지 갈아 넣고 나서야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할 수 있는 것만 같거든.

'최선'이란 내가 가진 100을 모두 쓰면서 매달리는 것이고, '차선'이란 80 정도만 쓰면서 최고의 결과치를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잘하는 정도에서 즐기고 만족하는 것 아닐까?

최선을 다한다는 말속에는 1등, 최고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그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치열한 경쟁이 뒤따라.


 돌이켜보면 엄마는 흔히들 얘기하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별로 힘들지 않게 보냈었던 것 같아.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때도, 임용시험을 볼 때도, 초짜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그다지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었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나의 삶의 모토였던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는 상관없다."라는 마인드셋 덕분이었다고, 꽤 오랫동안 믿고 살았단다.


 그런데 아니었어. 진짜 그 당시의 내가 그 모든 순간에 진짜"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야. 닿지 못하면 괴로웠을 테고, 갖지 못하면 안달 났을 거야. 실은 내가 가진 전부를 쏟아붓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곳에 눈 돌릴 20 정도의 에너지를 남겨놓고 사는 '차선'의 길을 가고 있었더라.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게 공부는 '꼭 이 산의 정상에 깃발을 꼽겠다!'가 아니라 정상 올라가기 전 잠시 쉬어가는 좋은 풍경이 보이는 마당바위에 자리 잡고 앉아 경치 구경하는 걸로도 만족하는 그런 느낌이었어.  정복자의 마음을 내려놓고 남은 에너지로는 고등학생 시절 내내 학교 신문부 활동에 열심이었지.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새벽처럼 일어나 등교하고 야자(야간 자율학습이라는 이제는 듣도 보도 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산이란다.)를 마치고 밤 1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쳇바퀴 같은 수험생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 하지만 다른 한 켠에는  매주 동아리 친구들과 모여서 아이디 회의를 하고, 대안학교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산청에 위치한 간디학교에서 직접 2박 3일을 살아보고, 동문 인터뷰를 위해 평소 좋아하던 소설가 오정희 선배님을 섭외하고 직접 만나 얘기 나누고... 그런 설레고 꿈같았던 순간들도 엄마의 고등학교 생활에 동시에 존재했어. 지금 생각해도 마음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하는 순간들이야.


 아마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희 취업이란 어렵고 힘든 인생의 큰 마디 중의 하나일 테지. 엄마도 그랬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초반 시절을 떠올리면, 음... 다람쥐 쳇바퀴라는 식상 하지만 적확한 표현을 다시 한번 빌려와야겠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할당된 분량의 공부를 마치기 위해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책을 보고, 다음 날도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비슷한 시간에 잠을 청하는 그런 생활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  그때로 다시 추억 회로를 돌려보면,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전 겨울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떠났던 이집트 배낭여행이 반짝하고 수면 위로 떠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손꼽히는 홍해에서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웠고, 그 뒤로 스쿠버다이빙은 엄마의 20대를 꽉 채운 인생 취미가 되었어. 더불어 오랜 시간 가져왔던 물 공포를 이겨낸 자랑스러움도 그 추억 안에서 유영하고 있어. 참, 바쁜 수험생이었지만 놀랍게도! 시간을 쪼개서 연애도 했어. 꽃피는 봄에, 구름 한 점 없는 청량한 날에도 독서실에만 처박혀있긴 너무 눈부신 젊음이잖니.



  남들이 말하길, 있는 능력과 에너지를 다 쥐어짜 내 올인해야 한다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진짜 최선을 다했으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면,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좀 더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실상은 단 한 번도 내가 가진 100 모두를 쓰지 못한 나는 누군가의 눈에는 한량이고, 열정이 부족한 인간이지만 그래서, 단 한 번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 않았어.


 차선으로 살지 않았더라며 지금의 내 인생이 조금 더 삐까번쩍해졌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껏 해온 수많은 도전과 행복한 경험들은 그에 비례해 훨씬 적어졌겠지. 내가 가진 100 중에 80만 썼기에 나머지 20을 가지고 삶이 주는 다양한 선물에 눈을 돌리고 뛰어들 수 있었어. 

 늘 내 안의 또 다른 빛을 밝힐 수 있는 잉여 에너지를 남기는 삶을 사는 것,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설레지 않니? 나의 인생 모토는 더 이상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는 상관없다"가 아니야.


우리는 모두

"차선으로 살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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