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해주고픈 가지가지 이야기 #1
그녀의 탄생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자식이 태어남과 동시에 나를 둘러싼 온 우주가 변화하고 나는 새로운 인격체로 다시 태어났다는 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변했고, 현재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임신기간 중 한 번도 제대로 된 태교일기를 쓴 적이 없었다. 타고난 게으름 탓도 있었지만, 이 작고 벌건 생명체가 새벽의 정적을 깨는 울을을 터트리며 내 가슴 위에 얹어져 심장과 심장을 맞대던 그 날,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그 날 이전에는 일기로 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나와 나와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게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말해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그 중 즐겨하는 것 중 하나는 매일 저녁 달라지는 노을을 함께 보는 것이다. 가끔은 산책을 하다 잠시 멈춰서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창문 앞에 나란히 붙어서서 감상하기도 한다. 하늘 아래 같은 노을은 없다지만, 그래도 오늘의 노을을 놓쳤다면 내일도, 모레도 기회는 있다. 해는 매일 지니까.
하지만 어떤 순간들은 그 순간을 잡아놓지 않으면 영영 날아가 버린다. 그 것이 풍경이나 어떤 대상이라면, 그 향기와 감촉과 분위기까지 담을 순 없겠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나마 붙잡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이 '생각'이라면?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들이 넘쳐남과 동시에 아직은 맘마, 엄마 기껏해야 나가자 정도나 알아듣는 딸에게 지금을 살고 있는 엄마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졌다. 물론 십 수년이 지나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가 되서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엄마로서 십 수년을 살아온 '중년의 나'의 생각이 아니라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자유롭고 패기 넘치는 '청년시절의 나'로서 들려줄 수 있는 말들을 그녀에게 도란도란 남겨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 남기기 작업은 시작되었다.
먼 훗날 그녀가 이 글을 읽을만큼 충분히 자랐을때 지금 남기는 이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곳에 담길 이야기들은 나와 같은 '인간'이자 '여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딸에게 해주고픈 말들이지만, 실은 여전히 흔들리고,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며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흩뿌려진 이야기들을 보며 그저 '우리 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엄마이기 이전의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충분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