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해주고픈 가지가지 이야기# 2
사실 우린, 네가 아들인 줄 알았어.
흔히들 호랑이 태몽을 꾸면 아들일 거라고 하잖아. 머릿속엔 우리 아들 이렇게 저렇게 키워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었지.
그런데 네가 딸이란 걸 안 순간, 3초간 정말 멍해졌어.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번뜩 든 생각이 뭐였는지 아니?
내가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아들이 아닌,
딸이 살게 될 삶이라 생각하니
백 배쯤 더 멋진 거야!
네가 목을 가누기만 하면 널 둘러업고 하이킹을 가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해 줄 거야. 물만 보면 언제든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게끔 수영도 함께 하자. 나중에는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스킨스쿠버도 할 수 있겠지. 네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내 자전거 뒤에 자그마한 전용좌석을 하나 만들어서 태워줄게.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오토바이도 탈 수 있단다.
널 만나기 전 엄마가 홀로 여행했던 조금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곳들에도 함께 갈 거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네가 '혼자' 여행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야.
세계 어느 곳이든 네가 살고 싶은 곳, 일 하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라. 그곳이 한국이든 어디든! 어떤 인종이든 어떤 지위를 가진 사람이든 개의치 않고 나만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사랑하길. 물론 결혼은 언제나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란다.
언제나 가장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느끼고, 몸을 움직여야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음을 깨닫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삶의 위치와 방향을 타인이 아닌 나의 의지로 정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 삶을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들이 '여자'로서 '딸'로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이라면 얼마나 더 멋질까?
그래서 엄마는 네가 딸이라서 참 좋아.
* 이 글을 작가의 서랍에 고이 담아두었던 때가 벌써 거의 2년 전이네요. 2년 만에 발행을 위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정말로 목을 가누고 얼마 안 된 5개월 즈음부터 아이를 들쳐업고 하이킹을 함께 했더라고요. 아직 수영이라고 할만한 실력은 없는, 구명조끼 벗으면 맥주병 꼬맹이지만 물을 아주 좋아하고, 자전거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스킨 스쿠버나 불편한 나라로의 여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모든 순간들이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영글어서, 그 안의 빛이 은은히 새어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참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이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