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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크랜디아 Aug 18. 2020

너는 '뼛속까지 한국인'이 될 수 있을까?

어쩌다 이민자가 되어버렸습니다만 #1

 

 한국에 살 때였다. 들이는 족족 죽어나가는 식물들 때문에 '플랜트 킬러'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던 내가 유일하게 오랜 기간 죽이지 않고(?) 기른 식물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선인장!  선인장의 본고장에 사는 지금이야 척 보면 무슨 선인장인지 이름까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식물을 그냥 '양팔 선인장'이라고 불렀다.   

 그리로부터 몇 년 뒤, 화분에서 기르던 바로 그 양팔 선인장이, 그것도 집채만 한 크기로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동네에 나는 살고 있다. 해밀을 낳기 두 달 전 이사한 집에는 심지어 창문 너머 손 내밀면 닿을법한 거리에 내 키 두배만 한 선인장이 우뚝 솟아있다. 선인장이라고는 화분에 심어진 애완 선인장(?) 밖에 모르던 보통의 한국사람에게는 여전히, 종종 생경한 풍경이다.


우리 집 애완(?) 선인장이다. 원래 이름은 양팔 선인장이 아니라 사구아로(saguaro) 선인장이라 한다.

 

 한국과의 물리적인 거리만큼 창 밖 풍경도 한국과는 멀디 먼 이국적인 동네에 살고 있지만, 겨울이 되면 단감을 사다가 창문에 졸 로리 늘어뜨려놓고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나, 혹시나 추울까 한껏 치켜 올라간 내복 배바지를 아이에게 입히는 일 같은 것은 한국에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겨울에 귤 한 박스 사서 베란다에 내놓고 뜨뜻한 바닥에 배 깔고 누워 손이 샛노래질 때까지 까먹는 것, 여름에는 손끝에 총총총 곱게 빻은 봉숭아로 예쁘게 물을 들이는 것, 가을에는 어느 시장 골목 안의 동네 횟집에 앉아 집 나간 며느리 타령을 하며 전어를 먹는 것, 봄에는 사람에 치여 내 발로 걸어가는지, 뒷사람에 밀려 가는지 몰라도 어쨌든 여의도에 나가 벚꽃구경 한 번 해야만 하는 것 같은 것 말이다.


 외국이라고는 중년이 다 되어서 패키지여행 다녀온 것이 전부인 부모님 아래, 토종 한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에 오기까지 30여 년을 한국에서 살아왔다. 또래 친구들처럼 대학생 때부터 배낭여행을 하며 외국에 나가 한 달씩 살아보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두발제한에 통탄하며  밤마다 별을 보며 하교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했으며, 대학에서는 술잔을 돌리며 술을 배웠다. 좀 더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초등학생 때는 학교만 끝나면 놀이터 철봉에서 어지러울 때까지 돌았고, 중학생 때는 여름이면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계곡에 놀러 가기도 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친구 엄마의 요리 솜씨에 감탄을, 우리 엄마의 것에 개탄을 하기도 했다. 물론 급식 정착 이후로는 영양사 선생님이 그 감탄과 개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너에게 선인장은, 나에게 은행나무 같은 느낌일까?

 

이렇게 한국에서의 삶과 문화들이 30년 넘는 세월 동안 내 안에 쌓이고 쌓여 '한국인'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남의 땅에서 4년 반을 살아내며 빵만 먹고도 살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내가 실은 밥순이, 김치순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매일매일 발견하고 있는,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이제는 나를 어디에 옮겨 심어놔도 내가 가진 한국인으로서 고유의 정체성은 변치 않을 것만 같은데, 문득 집채만 한 선인장을 가로수로 둔 이 곳에서 태어나 자라게 될 해밀은 어떨까 싶었다.

해밀과 함께 하고 싶은, 내가 자라며 경험했던 수많은 것들 중 많은 부분을 아마 공유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문득 서운해진다.


 앨범을 펼쳐 지난 사진들을, 지난 추억들을 음미하고 있었다. 사진 속 해밀은 배냇머리가 빠진 자리에 삐죽삐죽 제멋대로 난 머리카락들 덕분에 더벅머리를 하고, 한국에서 할머니가 보내준 보들보들한 순면 내복을 한껏 추켜올려 배바지로 입은 채로 창문틀에서 홍시가 되길 기다리는 감들을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창문 너머에는 우리 집 애완 선인장이 우뚝 솟아 있었다. 사진 속 해밀의 촌티 폴폴 배바지를, 익살스러운 특유의 표정을 키득거리며 보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에는 슬퍼진다'는 어느 어르신의 말이 참으로 사실이구나 싶어 그 꼬리를 댕강 잘라버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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